장-다니엘 폴레 Jean-Daniel Pollet (1936-2004), <지중해(Méditerranée)>, 그리고 텔 켈 Tel Quel 1960-1983 그룹 _앤드류 리치 Andrew Ritchey


리처드 라우드가 고안한 “레프트 뱅크 시네마(Left Bank Cinema)”라는 용어는, 지적이고 미학적인 세 명의 전후 프랑스 영화 감독 그룹(아녜스 바르다, 알랭 레네, 그리고 크리스 마커)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분류의 결과에 대한 비판을 환기시키도록 의도되었다. 레프트 뱅크에 대해 쓴 라우드의 1962년 에세이가 “분류는 무엇도 증명하지 않으며 무엇이 분류되는지 우리에게 더 알려줄 때에만 가치 있다”1 라는 주장으로 시작하는 데에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레프트 뱅크 그룹과 누벨 바그를 구분하는 것이 과연 논쟁중인 영화와 영화 감독들에 대해 무언가를 “우리에게 더 알려” 주는지 질문해야 하는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범주화라는 목표에 의해 유예된 다른 질문들은 무엇인가? 어느 영화, 어느 영화 감독이 양쪽 범주 중 어느 것에도 깔끔하게 맞아 들어가지 않아 영화사에서 벗어났는가? 분류에 대한 질문을 괄호 친다면, 보다 폭넓은 주제를 비롯해 전후 프랑스 영화 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는 논의 위에 그 시기의 영화들을 둘 수 있다.  

 

결정적으로 외면당한 가장 적절한 예는 장-다니엘 폴레의 <지중해(Méditerranée)>일 것이다. 이 실험 단편 영화는 프랑스의 바깥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의 영화 이론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 영화 비평가들에게 이 영화가 중요했던 이유는 누보 로망의 실험적 글쓰기의 실천이 영화 매체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 소설가이자 문학 이론가 필리프 솔레르스가 보이스-오버 코멘터리를 씀으로써 폴레와 협업을 했는데, 이 때문에 <지중해>는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직전부터 직후까지 혁명적인 영화 실천의 주요한 예시가 되었다. 이 때는 전위적인 잡지 『텔 켈』과 관련된 문학 이론가들이 영화 이론의 영역으로 처음 들어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던 때였다. 텔 켈 그룹의 핵심 멤버들 - 솔레르스를 포함해 줄리아 크리스테바, 마르셀린 플레네, 장-루이 보드리 - 모두 <지중해>에 대해서 논하는 글과 인터뷰를 발표했고, 크리스티앙 메츠의 영화 기호학이 지배하던 프랑스 영화 이론에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프랑스 내외의 수많은 영화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텔 켈 그룹은 영화적 의미의 철저한 분류학(거대 통합체; la grande syntagmatique)에 대한 메츠의 야망으로부터 영화 이론이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대신 크레스테바가 기호분석(sémanalyse)이라고 지칭한, 혹은 “의미화 수행”의 연구라고 할 수 있는 의미화 과정에 대한 이론적 분석으로 향하게 했다.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함께 엮으면서, 텔 켈 그룹은 영화적 장치에 내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고안했다. 『텔 켈』의 계속해서 진화하는 문학 이론과 공명하는 영화 이론2을 말이다. <지중해>는 텔 켈 그룹이 영화 이론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제공했다. 솔레르스, 크리스테바, 그리고 그의 동료들은 영화의 수수께끼 같은 요소들을 현대 문학 비평의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크 데리다의 저작에서 글쓰기(écriture)라는 개념을 빌려오고 또 변형시키면서, 텔 켈 그룹은 영화적 글쓰기로서의 <지중해>가 그것의 비서사적, 반표현적, 그리고 급진적인 연속적 형식을 통해 현실에 대한 시네마토그래프적 인상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면서 영화적 재현을 해체한다고 주장한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이후, 텔 켈의 비평가들은 글쓰기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사회적 변형을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와 <지중해> 위에 포개었다. 이 영화의 형식적 실험의 미덕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영화의 모델이 되었다.  


영화학자 실비아 하비와 D.N. 로도윅은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속에서 일어난 현대 영화 이론에 있어서 텔 켈 그룹의 기여가 중요했음을 보여주었다. 텔 켈의 핵심적 개념의 모순과 한계 또한 드러내면서 말이다. 로도윅이 영화 이론 안에서 “정치적 모더니즘의 담론”이라고 부른 것은 알튀세르 마르크스주의와 모더니스트 미학의 불안정한 결합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것들 자기 자신이 가진 가정의 무게에 속박된 담론이었다. 1968년과 1972년 사이 프랑스 영화 이론 안의 정치적 모더니즘의 흥망성쇠는 <지중해>를 둘러싼 이론적 담론을 통해 추적될 수 있다. 유사 마르크스주의 잡지 『시네띠끄Cinéthique』의 지면에서, 텔 켈 그룹의 멤버들은 영화 장치와 영화 관객의 심리적 기여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에 폴레의 영화를 얽어 넣었다.3 <지중해>는 영화적 재현을 해체하는 "이론적인 영화"로서, 영화 관객성에 내재한 이데올로기에 대해 "과학적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여겨졌다.4 이제는 정전이 된, 영화 이론에 대한 보드리의 개입, 즉 1970년 『시네띠끄』 7-8호를 통해 처음 발표되었던 「기본적 영화 장치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영화가 “초월적 주체”에 의한, 그리고 “초월적 주체”에 대한 조직화된 재현으로서의 세계를 관객에게 제공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그것이 부르주아 이상주의의 도구라고 비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드리는 이 주장을 발전시킨 후에, <지중해>에 대한 대담한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지중해>는 "우리가 밝혀내려고 시도한 “초월적인 반영"을 모범적이고 효과적으로 해체한다". 이론적인 영화의 한 사례로서의 <지중해>는 단순히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관객성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영화 장치를 체계적으로 해체하는 것이었다. 폴레의 영화는 영화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공모한다는 법칙의 예외로 묘사되었다.  

 

1972년,  『시네띠끄』를 비롯한 여러 지면에서 밝혔던 <지중해>의 정치적 효능에 대한 주장은 보드리가 그의 책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다시 출판했을 때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의 효과 L’effet cinéma』(1978)에서 그는 혁명적 효과의 예로서 <지중해>를 지목했던 각주를 삭제한다. 한때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이론적 영화로 특권화되었었던 <지중해>는 (그것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조차도) 모더니스트 미학에 의해 타협된 영화로 여겨진다. 이러한 판단의 변화는 1972년 『시네띠끄』가 마련한 <지중해>의 상영회의 프로그램 노트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이 잡지는 여기서 <지중해>는 단지 초현실주의의 “부르주아” 미학을 반복하는 “이상주의의 새로운 형식”이라며 부정한다. <지중해>의 “형식주의”는 명백히 정치적이고 “유물론자”라고 일컬어지는, 장 뤽 고다르와 장 피에르 고랭이 조직한 지가 베르토프 그룹에 비교당한다. 단어와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반복하고 일관된 의미를 거부하는 실험적인 기법은 더 이상 정치적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정치적 개입으로서의 영화라는 <지중해>의 명성은 곤두박질 쳤다.  

 

이러한 철회를 비롯해 로도윅, 하비 등에 의한 현대 영화 이론에서의 정치적 모더니즘에 대한 단연코 중대한 비판을 감안한다면, 텔 켈 그룹의 영화 이론으로의 중대한 (결함이 있고 간명할 수도 있는) 모험은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5 영화적 글쓰기에 대한 생각, 그리고 <지중해>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중심에 둔 영화 관객성에 대한 텔 켈 그룹의 비평은 분명 흥미롭다. 그러나 이 그룹은 단지 그들의 리더 필리프 솔레르스가 보이스-오버 코멘터리 작업을 함께한 영화로부터 사전에 설정된 이론적 개념을 도출하는, 사적인 이익 때문에 행동했다고 주장될 수 있다. 이 추론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지만 영화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1967년에 출판된 <지중해>에 대한 텔 켈 그룹의 첫 리뷰를 읽으며, 또 <지중해>를 보고 영화적 글쓰기 이론에 대해 재독하며, 나는 관객성의 활동이 이제는 타협할 여지가 없다고 여겨지는 영화 이론의 역사적인 영역을 열어젖힐 수 있음을 증명한다.

 

<지중해>를 다시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1960년대 동안 그것을 둘러싸고 소용돌이 쳤던 개념과 분류의 범주를 넘어선다는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중해>는 보다 적절하게는 데리다적 의미에서의 글쓰기이다. 홀린 듯한 트래킹 샷의 모호한 움직임, 느린 패닝과 귀에 거슬리는 음악, 상징적으로 끌어 내어진 형상, 그리고 주술적인 보이스-오버를 통해 순수한 이론적 개념의 정적인 견고함을 넘어서면서 말이다. 복잡하고, 정동을 불러 일으키며, 끊임없이 묘한 매력을 주는 영화 <지중해>는 개념의 정확성과 분류학의 폐쇄성에 저항한다.

여전히 감흥을 주고, 또 분류 불가능한 <지중해>는 전후 프랑스 영화 문화의 정적인 그림을 제쳐두는 무빙 이미지이다. 이미 확립된 분류 범주의 확실성에 저항하면서(“레프트 뱅크”도 아니고, 누벨 바그도 아니고, 작가주의 영화도 아니고, 지가 베르토프나 SLON, 키노 프라우다와 같은 집단적 영화 생산도 아니다), 폴레의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관한 담론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 이론의 역사에서 엄청나게 영향력 있고 중요한 전환을 불러 일으키면서 말이다. <지중해>는 텔 켈 그룹의 사유의 움직임과 함께했다. 텔 켈 그룹은 1960년대와 그 이후의 문학 이론과 영화 이론의 길을 정초하기 위한 반론의 여지 없는 주장을 펼쳤고 이는 레프트 뱅크에 모여든 그룹과는 대립하는 영화의 모델이었다.  


1. Richard Roud, ‘The Left Bank’, in Sight and Sound, Winter 1962-63, pp. 24-27.  ‘The Left Bank Revisited’, Sight and Sound, Summer 1977, pp. 143-145.

2. 패트릭 프렌치의 『이론의 시대: 텔 켈의 역사 1960-1983 (The Time of Theory: A History of Tel Quel 1960-1983)』은 텔 켈 문학 이론의 발전에 대해 이 글에서보다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텔 켈의 문학 이론과 영화 이론은 모두 의미 생산의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에 근간한다.

3. 『시네띠끄Cinéthique』는 1969년 1월부터 마르크스주의 영화 비평가 제라르 르블랑에 의해 출판되기 시작했다. 이 잡지는 주류 영화 산업에 반대하여 “평행 영화(parallel cinema)”의 제작과 유통을 옹호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평행 영화의 미학은 텔 켈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1969년부터 1971년 사이에 보드리, 크리스테바, 플레네, 솔레르 등이 모두 정기적으로 『Cinéthique』에 글을 썼던 것이다. 『Cinéthique』는 그러나 그러한 충성을 부인하는 일련의 에디토리얼을 통해서 텔 켈 그룹과 스스로 거리를 두었다. 고다르와 고랭의 지가 베르토프 그룹에 감화되어, 『Cinéthique』는 결국 그들 자신의 영화 < D'un bout à Votre de la chaîne >(1978)를 만들게 된다. 1970년대에 지가 베르토프 그룹과 『Cinéthique』 사이의 공생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David Faroult, Avant-garde cinématographie et avant-garde politique: Cinéthique et le "groupe" Dziga Vertov, dissertation. Université de la Sorbonne nouvelle, Paris (2003).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의 정치학과 『Cinéthique』에 관해서는 다음을 보라. La Revue Documentaire 22/23 (2010), special issue on "Mai 68." Eds. David Faroult and Hélène Fleckinger.

4. 과학적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이론적 영화에 대한 『Cinéthique』의 생각은, 영화는 이데올로기적 생산품이며 절대로 과학의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까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자들에 의해 곧바로 도전받았다. 『까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자 장-루이 코몰리와 장 나르보니에게 있어서 영화 비평은 오직 “이론적” 작업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 여기서 이론적이란 것은 이데올로기의 작동에 의한 “지식 효과”의 생산이라는 알튀세르적 의미의 용어이다.

5. 노엘 캐롤의 관점은 하비와 로도윅 못지 않게 영향력이 있으면서도 상이했는데, 그에 따르면 보드리의 관객성 이론은 분석 철학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때문에 그것을 부정한다.


* 이 글은 앤드류 리치 Andrew Ritchey의 Between the Essay Film and Social Cinema: The Left Bank Group in Context, 2012 (vol 41, no. 2, Issue 128), pp. 79-98에서 발췌 번역한 것이다.

번역 : 이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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