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언어의 '유령'과 사운드를 본다는 것

에릭 뷜로*

보편 언어의 ‘유령’은 오랫동안 무성 영화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나는 특히 예술가인 바이킹 에겔링 Viking Eggeling과 한스 리히터 Hans Richter가 추상적 사전 즉 ‘시각적 알파벳’을 고안해 냈던 1917~19721년의 시기에 대해 생각한다. 에겔링은 당시 이 사전을 “회화의 통주저음 basso continuo de la peinture”이라 불렀는데, 이는 족자형태의 길고 좁은 종이위에 원시적 형태의 유형학의 원리에 따라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그래픽적 드로잉을 나열한 것이었다. 그것은 리히터가 보편적 통사론을 형성하기 위해 찾고자 했던 즉 “낙원의 언어"와 같은 것에 다름아니었다. 한스 리히터는 보편적인 시각언어를 찾기 위해 한자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의 작곡가인 페르초 부조니Ferruccio Busoni와 함께 대위법 테크닉을 연구하기도 했다.

보편 언어의 발명은 음악적 패러다임을 필요로 했다. 라울 하우스만 Raoul Hausmann(1886~1971)은 1922년 시각적 형식소리의 공명으로 번역하려는 의도를 가진 장치인 청광기聽光器를 만들었다. 보편 언어를 향한 여정은 청광기 신호를 통한 시공간 예술의 조음점調音點을 찾아내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도는 필연적으로 다른 예술 장르 사이의 대화를 전제로 한다. 한스 리이터와 바이킹 에겔링을 통해 다른 예술가들은 시각언어의 규범-형태-의 평면적 발전을 꾀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롤 형태의 종이는 본질적으로 영화의 필름스트립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의 과정은 다소 신화적인 방식으로 종종 한스 리히터의 글을 통해 드러났다. 그는 기하학적인 낙서, 봉투위에 그려진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나 상형문자 혹은 식탁보, 난삽한 문자의 번역을 남겼다. 많은 자료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영화적 접근이 어떠한 방식으로 보편 언어의 탐구로 나아갔는지 예상케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해서 나는 늘 매혹되어 있었다. 작가로서 나는 리히터의 다양한 낙서와 알수 없는 조합의 양식에 관심을 기울이며, ‘공감각共感覺’이 일반화되는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영화적 실천으로 이끌었다.

베르토프는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유명한 장면에서, 그는 사운드가 가진 ‘시각적 형상’을 제시하며 무성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원형으로 스피커로 둘러 쌓여 있는 원형 속에 드럼헤드, 벽, 공명장치 등은 청각적 이미지가 투영되는 장소이다. 귀, 키보드 위에 있는 손, 입의 움직임이 지시하는 것들, 아코디언 연주 장면에서 사운드는 직접적으로 원시적인 의미에서 형상화된다. 이미지가 가진 힘은 충분치 않아 다양한 음향적 가능성을 소멸시킨다. 연장과 병으로 손이 만들어 내는 리듬감 있는 춤은, 페르낭 레제의 <기계적 발레>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실험영화의 깜박거림에 근접할 정도의 빠른 편집을 통해 이 단속적 운동에 대응해야만 하여, 이는 차례로 리듬감 있는 발레, 망막, 진동을 발생시킨다. 그의 작품속에서 소리와 시각적 리듬은 강렬함으로 부터 완전한 소모에 이를때 까지 경쟁한다.

난 리허터 만큼이나 신비로운 베르토프의 자서전적 삶을 떠올려 본다. 그는 미래주의자들에 영향을 받아 1917년 포노그래프를 이용해 여러 소리를 녹음했던 ‘청취 실험심 Laboratory of hearing’을 설립했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 발표 직후 베르토프는 사운드 시네마와 라디오의 예술적 가능성을 다룬 “라디오-아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베르토프 그 자신은 언제나 시각과 사운드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러한 순간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서도 놀랄만큼 잘 드러난다. 그 유명한 그의 편집이론의 구성과 함께 이 영화는 영화사에서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사운드 필름이라 할 수 있다. 무성영화가 결여한 발화의 가능성은 오히려 강도와 운율이라는 추상언어의 발명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아방가르드 작가들에 의해 진행된 추상적 발화의 공감각적 본질에 대한 연구는(오스카 피싱어는 이런 움직임의 대표적 영화감독이다) 진정한 언어적 몸짓으로 가득했다. 사실 영화는 보편언어를 향한 두 가지 가능성 있는 경로를 밟아왔다. 그 중의 하나가 공감각에 기반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보편주의적 목적을 갖고 일반화된 움직임의 규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첫 번째 경로는 예술의 시간과 공간을 조응시키며, 다른 감각을 넘어서는 평면적 언어를 제안하며, 두 번째 경로는 팬터마임 pantomime에 호소하는 무성영화가 움직임의 언어에 가까운 철학적 어휘를 사용하기 위해 일반 언어를 영화의 구조안에 체화시켜왔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의 규칙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문자이다. 몸짓은 어떤 지역사회의 문화적 규범에 따르며, 청각 장애 공동체에서 사용해왔던 수화가 오랜기간 동안 존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청각 장애인을 가르치는 국제모임인 <밀라노 회의 Milan Congress 1880>가 최초로 개최된 후 수화를 금지하고, 청각 장애 아동에게 스스로 발화하게 하는 법을 배우도록 강요하는 칙령이 발효되었다.(이 운동을 주도하던 이들은 수화를 폄하하는 말로 팬터마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조치는 발음과 입모양을 읽는 것을 우선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청각장애 공동체로 부터 영화가 탄생한 시기 부터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영화는 일종의 평면적 속기, 수화를 쓰는 방법이 될 수 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가 원시영화나 초기 영화의 역사를 깊이있게 들여다 본다면, 소통을 위한 몸짓의 방법론을 통해 서로 다른 언어사이의 상호작용을 이끌어 내었다기 보다 영화 스스로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해왔다고 보는편이 맞을 것이다. 무성영화 속의 인물은 그 스스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이런 측면에서 난 특별히 버스터 키튼을 존경한다. 그의 영화에서 몸짓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데 충분하지 않았다.(키튼적 얼굴이 갖는 냉정함은 몸짓의 소멸에 의해 강화된다.) 그는 영원한 오해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행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막, 기호, 숫자, 문자, 포스터, 픽토그램, 글쓰기를 사용했다. 의사 소통은 몸짓과 글쓰기의 교차점이다. 하지만 몸짓이 언어의 “통주 저음"을 구성한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버스터 키튼의 1928년 작품 <스팀보트 빌 주니어 Steamboat Bill Jr>에서 키튼은 감옥에 수감된 아버지를 찾아간다. 분노로 가득찬 아버지는 아들과 대화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감옥을 탈출을 하기 위한 도구를 빵에 숨겨온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감시자의 의심을 피해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두 명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 삼자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단 말인가? 말은 배제된다. 키튼은 여기서 그의 예술과 무대 뒤의 원리에 익숙한 공간적 기질을 새롭한다. 키튼은 간수 뒤에서 신호를 보낸다. 아버지는 마치 영화의 관객이 되어 모호한 신호를 해석해야하는 상황을 맞게된다. 이런 움직임은 어떤 맥락에도 분리되지 않고, 죄수의 노래와 함께 제시되어야 했다. 하지만 흥얼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노래 가사를 따라 키튼은 수화에 기반한 어휘인 원초적 ‘체스처’을 발명한다. 노래 반주에 따른 움직임의 표현은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가는 임박한 통로를 떠올리게 한다. 키튼의 이 장면은 제스처와 언어 사이를 넘나드는 여정을 잘 보여준다. 타이틀은 볼 수 있지만 들을 수는 없는 노래는 사실 우리에게 단어로는 기술할 수 없었던 어떤 다른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가시적 제스처와 비음성적 발화는 영화가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천이다. 사운드를 본다는 것은 키튼에게 확실히 패러독스였다. 우리는 음향장치의 등장이  왜 키튼의 많은 수단을 빼앗아 갔는지 잘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예술은 팬터마임으로만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제스처와 말하기(소리가 없는), 모사와 글쓰기 사이의 불화와 오해가 그의 작품에 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스팀보트 빌 주니어>의 이 장면은 키튼적 예술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의 어떤 충만한 조우를 드러내는 사례다. 그들의 살았던 시간의 역사적인 미묘한 순간에 영화감독이나 예술가는 전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자신들만의 통합된 세계를 발명해왔다. 그들이 관심갖고 있던 형태를 시적 대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세상에 탄생시키는 과정은 그들이 관통했던 매체의 역사를 밝혀주는 것이다. 근대성의 잘 알려진 교훈은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하고 경이롭게 한다.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의 관계에 있어 나는 인식 가능한 ‘공감각의 장’ 보다는 신체와 발화 사이의 틈, 혹은 심연, 더 정확하게는 ‘침묵과 발화 사이’의 연약하고 미묘한 이행의 순간에 주목한다. 일반화된 포스트-동조화의 위협은 현대 영화의 뒤에 숨어 끊임없이 영화를 괴롭혀왔다. 어떤 영화에서 가수는 무대 위에서 즉각적으로 실수를 유발시키고, 불화와 불일치의 대상이 된다. 그는 자신의 텍스트를 잊고,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따라하거나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무의식적으로 말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차이를 파헤친다. 우리는 1952년 작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에서 무대 위에서 커튼을 올리고 목소리의 주인인 여배우를 드러내 계략을 폭로하는 마지막 장면이나 혹은 목소리를 잃고 음악가가 다시 화학선생이 되는 제리 루이스의 1963년 작 <너티 프로페서 The Nutty Professor>를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사운드를 본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앙드레 바쟁이 말했던 ‘이음새가 전혀 없는’ 실재의 예견된 통합를 파헤지고 그것의 변용에 참여하는 것이다.


에릭 뷜로 Érik Bullot

에릭 뷜로는 아를의 국립사진학교와 파리의 고등영화학교(IDHEC)를 졸업하였고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를 결합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접근 방법은 영화의 시적이면서도 형식적 힘을 파헤지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내에서, 국제적으로 소개되어 왔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뉴 뮤지엄 등지에서 상영되었다. 『전도 Renversements 2』, 『영화의 출구 Sortir du cinéma』 등의 책의 저자이며, 뉴욕 주립대학교 버펄로의 방문교수이기도 했다. 유럽 시각예술 대학의 “기록 및 현대예술" 대학원 과정을 이끌었으며, 현재는 부르주 국립고등미술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Since completing his studies at the National School of Photography in Arles and the Institute for Advanced Film Studies (IDHEC) in Paris, Érik Bullot has directed numerous films that lie midway between documentary and experimental film. His approach as a filmmaker explores cinema’s formal and poetic forces. His work has been screened nationally and internationally, including the Jeu de Paume (Paris), th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La Enana Marrón (Madrid), the Biennial of Moving Images (Genève), CCCB (Barcelona), the New Museum (New York), MoMA (New York). His most recent books are Renversements 2 (Paris: Paris Expérimental, 2013) and Sortir du cinéma: Histoire virtuelle des relations de l’art et du cinéma (Geneva: Mamco, 2013). He was visiting professor at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 (USA, 2009-2011), and at the CIA (Centro de Investigaciones Artísticas, Buenos Aires, 2013). He was in charge of the postgraduate program “Document and Contemporary Art” at the European School of Visual Arts, Poitiers-Angoulême (2010-16). Currently he teaches film at the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Art de Bour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