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니엘 폴레(Jean-Daniel Pollet)와의 대화 1969년 11월

비평가에 의하면 장-다니엘 폴레 Jean- Daniel Pollet (1936-2004)는 저주받은 영화감독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꼬리표는 지금까지 어떠한 경우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관객의 시선을 제한하는 영화배급의 거절만 아니라면 사실, 존재하는 흥미롭고 새로운 영화는 배급이 잘 안 되는 젊은 영화감독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앤디 워홀 Andy warhol, 필립 가렐 Philippe Garrel, 셜리 클락 Shirley Clarke이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저주받은 영화감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저주가 있더라도 관객은 이들의 영화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책임이 없다. 문제는 관객을 이해력이 부족한 소양없는 대중이라고 간주하는 부조리한 비평가들이 초래한 배급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시스템의 문제 때문에 폴레는 그의 첫 장편 ‹조준선La ligne de mire(Line of Sight)›(1960)을 파기했다. 현재 시스템은 주변부의 작가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그들을 저주받은 작가라고 부르거나 ‘예술과 시도’라는 공간의 격리된 거주지에 가두면서 말이다.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감독들은 그들이 저주 받지 않았고 자유롭다는 사실을 지속적인 영화 만들기를 통해 증명해낸다.

폴레는 프랑스가 “받아들인” 자유로운 영화감독 중 한명이다. ‹로빈슨, 너는 상상한다 Tu imagines, Robinson›(1968)와 ‹사랑은 즐겁고, 사랑은 슬프다 L’amour c’est gai, l’amour c’est trist›(1971) 이 두 작품이 최근에 개봉되었다.


노엘 심솔로 Noel Simsolo

당신의 첫 영화, ‹취하기만 한다면 Pourvu qu’on ait l’ivresse›(1958)는 당신이 군복무 기간 동안 제작한 것입니다. 현재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Pourvu qu’on ait l’ivresse 1958

  La ligne de mire 1960

La ligne de mire 1960

이 영화에서 신기한 것은 실제인물이 픽션 안에서 외적으로 ‘동화’되고 ‘변형’되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이후의 영화에서 등장 하는 자연과 돌에 대해서도 당신은 동일한 방식의 접근을 하죠. 당신은 정확한 현실을 포착해내고 영화 속에서 마치 그것들을 재료처럼 사용하여 마주한 현실에 더 깊은 현실성을 주기도 합니다.







 


초기의 영화들과 ‹지중해 Méditerranée›(1963) 사이에 4년이라는 공백기 동안 당신은 상업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지중해›에서 당신이 도달한 것은 매우 새로운 시도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중해›는 당신 작업의 두 번째 길을 열었다고 봅니다. 첫 번째 길로 클로드 멜키 Claude Melki(1939~1994)가 연기한 작품들과, 두 번째 길로써 죽음과 햇빛 등을 향하는 탐구를 담은 작품입니다.





멜키에 대한 당신의 작업의 단계를 더 정확하게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본 파리›는 당신을 많이 놀라게 했군요.





 


겉으로 보기에 무언가를 모색하지 않는 것 같은 방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당신의 영화에서 실험 할 것으로 남아있는 기술적인 지점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영화 중에 다른 작품에 비해 다소 주변부에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대구들morutiers>이라는 영화를 얘기 하고 싶습니다.






다시 <지중해>로 돌아가면 크노케-르-쥬트 영화제Knokke-le-Zoute EXPRMNTL film festival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영화에서 음악은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당신을 명확한 주제를 가진 작가로 간주하기 보다, 저는 당신의 영화속에서 당신이 가진 ‘닫힌 공간에 대한 강박’을 주목합니다.


<지중해>는 하나의 사유로 닫혀진 공간입니다.

 

 


Méditerranée 1963

 

 

 

 

<밧새Bassae>(1964)는 이점을 매우 잘 보여줍니다.

 

 

 


 


당신은 이전에도 <지중해>의 텍스트를 솔레르 Sollers에게 부탁했었습니다.

 

 

 

 

<로빈슨, 너는 상상한다>에 대해서 더 말해봅시다.

 

장-다니엘 폴레 Jean-Daniel Pollet

이 작품은 우선 개인적으로 정말 특수한 상황에서 제작했습니다. 저는 군복무 중이었고, 매일 더 길게 엄습하는 폐소공포증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저는 군에서 영상업무분야에 있었기 때문에 자유시간 동안에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요일 외에는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제작기간은 5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이 시기에 저는 몇몇의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취하기만 한다면›은 ‹도시의 사랑 L'Amore in Città›(1953)의 시퀀스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든 영화가 이 이탈리아 영화보다 훨씬 덜 사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자는 제가 선택한 장소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영화속에서 그들이 연기했던 역할은 모두 현실에서 자신들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실제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 사전에 다양한 상황을 검토하고 여러 실험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중간에 촬영감독이 그만두면서 제가 직접 촬영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초기의 제작과정을 통해 저는 인물과 장소에 관한 실질적 기술을 익혔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충동적인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의도로 가득한 연출된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정확히 연출된 장면과 사전작업계획이 있었고 즉흥적인 측면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요인이 카메라 렌즈 앞으로 개입하면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적은 있습니다.

당신이 얘기하는 그러한 현실의 변모는 최근 작품에도 나타나지만 제작과정에서 의식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이야 영화 전체를 분석하면서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에서 제가 만들어 온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이론적 구상이 불명확한 밀로스 포먼Milos Forman의 영화와 유사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준선 La ligne de mire›은 모든 부분에서 이론에 근거해 만들었고 제작과정 역시 매우 의식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여러 이유로 인해 실패했습니다. 특히 이전 영화의 덫에 걸렸습니다. ‹취하기만 한다면›에서는 여전히 몇몇의 즉흥인 요소가 있었지만 ‹조준선›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즉흥적 접근에 무능한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결함과 모순으로 가득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완성됐지만 어떤 면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조언을 받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저는 너무 어렸고, 몇몇 사람들이 건넨 영화에 대한 조언이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것이었지, 미학적 진실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초기 프로젝트의 1시간 15분 되는 프린트 필름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다시 재구성하거나 (하지만 이 방법은 자료의 한계가 있습니다.) 남은 촬영장면을 다른 영화에 다시 사용하는 두 계획 사이에서 말입니다. 후자의 경우, 이미 촬영한 필름은 같은 배우들이 10년 후에 연기한 이야기의 플래시-백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몇 년간 실제적인 작품활동이 없었기는 했지만 당시 주어진 여건에서 영화와 이론에 대해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촬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취하기만 한다면›과 ‹지중해› 사이의 연결점이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연속적인 과정에 있는 작품입니다. 몇 달간 고심만 한 시나리오도 촬영이 되는 (실제 영화로 만들어지는) 시나리오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영화로 만드는 게 더 좋긴 하겠지만, 한 시나리오의 구상이 완료되기 전 영화는 이미 80% 정도가 완전히 결정됩니다.


사실 저는 이 두 갈래의 길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멜키는 ‹갈라 Gala›(1961)와 ‹조준선›에서 이야기적인 방법으로 나타났었습니다. 저는 ‹취하기만 한다면›의 이 사실적인 배우-인물을 구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떻게 그를 말하게 하고 스스로 움직이게 할지 몰랐습니다. 옴니버스영화 ‹내가 본 파리 Paris vu par›(1965)에서 그의 연기는 더 분명해졌으나, 정말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사랑은 즐겁고, 사랑은 슬프다›까지 기다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최근의 영화에서 저는 롱 테이크(le Plan séquence)를 주로 사용했고, 그 결과로 멜키는 자신의 대사를 정확히 숙지하는 것이 의무가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이 배우를 완전히 추상화abstraire하고, 침묵의 끝에서 익살스러움에 다가가는 인물로 만드는 것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본 파리›의 주요 의도는 멜키로 하여금 스스로 발화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성공하지 못했죠. 그가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대사를 해도 가짜 같았습니다. 그에게 독특한 어법을 찾아주고 싶었지만 촬영조건이 열악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없었고, 필름도 무척이나 부족했습니다. 멜키와 여인이 방으로 들어오는 첫 장면을 찍을 때는 정말로 악몽 같았습니다. 15번 정도의 촬영을 계속 다시 해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멜키가 제가 지시한대로 한 문장을 말했는데 좋았고, 이 이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자신의 배역을 짜오는 전문 배우인 미쉘린 댁스Micheline Dax와 그 자신을 사는 배우, 멜키를 대면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인물이 추상과 가까운 희극의 흐름에 합치되면서, 이러한 방식이 명확해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멜키와 작업할 때마다 매번 다른 방법으로 실험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취하기만 한다면›는 시각적 방식에서, ‹내가 본 파리›는 발화적인 측면을, ‹사랑은 즐겁고, 사랑은 슬프다›에서는 그를 단 1분도 그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않게 하면서 움직이고, 말하고, 스스로를 완전히 제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그의 자질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는 모든 범위의 표현력을 가지고 있으며 저는 그를 추상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약 멜키와 완벽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될 때, 그와 찍은 영화와 ‹로빈슨, 너는 상상한다›의 방향성 사이에 큰 차이점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며 ‘완곡한’ 방식으로 통과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모든 전통적인 아방가르드를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앞서 말한 두 가지 방향을 보존하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에 온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에 본질적인 것을 다루는 영화를 찍을 때 저는 다른 형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형식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중해>는 형식에 대한 실험 essai sur la forme으로써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영화 이론을 적용해 멜키 같은 인물 속에 인간적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 이론이 현재로서 유효한 이론이라면 성공한 것이겠죠. 그러나 <지중해>와 <사랑은 즐겁고, 사랑은 슬프다>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두 가지 갈래의 길이 서로 상승하며 그 결과로 생기는 어떤 단계, 그 만남의 지점에까지 도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론적 단계에 있어 매우 진보적인 영화를 통해 대중을 어떻게 서로 만나게 할 것인가. 저는 작은 단체의 영화인으로 20년을 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제 손에 안의 도구를 실제로 알기까지 대중 앞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시간과 모순된 경험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극과 극을 오가며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이것 저것 시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촬영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영화가 가진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긴 연구를 필요로 때문입니다. <오를라 Le horla>(1966)에서 저는 끌로드 벨갸드 Claud Bellegarde의 도움을 받아 색에 대하여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예로 최근 영화에서는 전문배우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의 한계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60년 동안 구상화가였지만 죽기 전에 몇 몇의 추상화를 남겼던 일본의 화가처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던지. 그는 그 두 가지가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추상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기 전에 그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제가 시도해 보고 싶은 한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항상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카메라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발생하는 사건과 카메라를 분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극명한 방법으로 카메라와 사건을 분리하고, 카메라를 최대한 해방시키고, 카메라가 가진 자율성을 늘 극대화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당시는 제가 일이 거의 없는 시기였습니다. 대구(어류)의 삶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를 라루Lalou와 함께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저에게 흥미로웠던 점은 그 배들 중 하나의 가장자리에 생명이 있다는 명확한 사실이었습니다. 르노Renault 공장은 최악입니다. 투자자들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이 대구처럼 속박되도록 부추기는 영화를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덕적으로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설을 위해 저는 바다를 건너는 동안 배에서 촬영한 해군들의 인터뷰를 사용했습니다. 영화 <대구들 morutiers>은 제가 만든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보도형식에 근접하게 만들었지만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픽션에 관계된 것처럼 촬영하고 싶어서 저는 그런 장면들만 선택했습니다. 끔찍한 현실에 대한 제 나름의 전달방식이었습니다.


투르 Tours지역의 셀렉션에서도 거절당했고 크노케 영화제에서는 야유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어떤 분명한 이유로 출품했었습니다. 특별한 상이 있었고, 저는 영화를 끝낼 수 있길 희망했습니다. 저는 당시 영화제 상영을 위해 이미지와 사운드를 별도로 영사하는 더블 밴드로 된 최종 상영본을 영화제 측에 보냈었고, 이후에 35mm 프린트 버전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크노케 영화제가 실험영화제 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위험부담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상영은 대혼란이었고,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어떤 시네 클럽 연합이 사전에 35밀리미터본을 사서 저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비판이 심해서였는지 저는 16mm로 촬영하고 이후에 확대 프린트를 만드는 과정 자체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되었죠. 요약하자면 끝내기까지 5년이 걸린 영화였습니다.  


앙트완 듀아멜 Antoine Duhamel은 항상 아주 정확한 방법으로 음악을 만들고, 그의 음악은 완성된 영화에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없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저는 반대로 음악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녹음을 다시 하는 것은 어림없었습니다! 저는 녹음된 악곡에 악절을 덧붙이거나 자르면서 음악을 물질처럼 사용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음악은 여러 번 재생산되어야 하는 텍스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실험영화를 위해 하는 말입니다.)

네! <사랑은 즐겁고, 사랑은 슬프다>는 하나의 방에서 진행됩니다. 저의 다음 영화 <결혼의 탱고 Le tango nuptial> 또한 단 한 장소에서 진행됩니다. <로빈슨, 너는 상상한다 Tu imagines, Robinson>는 한 해변에서 진행됐고, 브라질에서 촬영을 계획하고 있는 영화도 어김없이 해변에 위치합니다.

맞습니다. 한 장소에서 제가 가진 주제들을 촬영하는 것이 전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발생하는 모든 일은 자기 자신에게 발생하는 일이고, 그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풍경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어떤 불편함을 느낍니다. 지중해까지의 3만 킬로미터의 여행은 하나의 닫힌 공간에 다다르게 됩니다. 모든 것이 같은 주조틀 안에서 다시 녹여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장소, 이 한 공간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밧새 bassae라는 장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닫힌 공간입니다. 지중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밧새는 저를 가장 사로잡은 곳입니다. 밧새는 그리스의 가장 아름다운 신전으로, 파르테논 신전을 지은 건축가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이 신전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리학적인 위치입니다. 밧새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지고, 분지에 가려진 산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다른 그리스의 신전들과 건축에 비하여 반대의 방식으로 향하여 있으며 어떠한 신성에도 바쳐진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어떤 여행안내책자에도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접근이 어려웠지만 저는 그곳에 자주 갔습니다. 의미는 잃어버렸지만 경이롭고 신비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이 대상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었습니다. 저는 필립 솔레르 Philipe Sollers에게 텍스트를 부탁했었는데 제작자는 결과물에 당황해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알렉상드르 아스트뤽 alexandre astruc에게 텍스트를 다시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두 버전의 <밧새>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네 이점은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솔레르와 <로빈슨, 너는 상상한다>의 텍스트를 쓴 티보도 Thibaudeau는 영화에 대한 열정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화제작 환경의 밖에서 기존의 영화제작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평론의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의 대화와 공동작업 속에서 제 작업과 전반적인 영화의 비평을 발전시킵니다. 공동작업에 관해서 말을 하면, 그들이 써야하는 텍스트가 있으면 그러한 관점에서 글을 썼고, <로빈슨> 같이 그들이 바라는 것보다 덜 진전된 영화라도 텍스트를 썼습니다. 티보도는 <로빈슨>에 대해 텍스트를 쓰는 것에 상당한 망설임을 가지고 승낙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로빈슨>은 우리가 평소에 보는 것보다 훨씬 바깥에 있는 영화였음에도 그는 더 많은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가 텍스트를 씀으로써 (촬영했을 때 가졌어야만했지만 전혀 가지지 못했던) 저는 온전한 ‘거리감’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어떠한 의미로 그는 객관성을 보장합니다. 그는 제가 부분적으로 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티보도에게서 영화에 대해 기능하게 하는 방식을 배우고 있습니다. 벨갸드Bellegarde에게서 색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호네Baronnet에게서 소리의 문제들을, 멜키Melki에게서는 장면과 배우에 대해서 배웠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아마도 이 모든 것을 통합할 재능이 제게 부족하기 때문이겠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고독을 마주한 한 개인이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으는 부분입니다. 끝에서 두 번째 장면은 이 영화의 해결책을 드러냅니다. 영화에서 단 하나의 행복의 순간은 음악이 개입되는 순간으로 인물이 물에 몸을 담그고 물에 스스로를 실어가도록 놔둘 때입니다. 영화 전체에서 그는 자연과 분리됩니다. 그러나 그가 바다에 뛰어들어 섬을 떠나기로 결심 했을때 그는 즐거워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곳에 동화됩니다. 또한 저는 현실에 환상적 요소를 장식품처럼 넣는 것을 시도했습니다.


영화 잡지 / 이미지와 소리 La Revue du Cinéma / Image et Son,  232호 (11월, 1969년)  번역 : 김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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