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 레이스 António Reis와의 인터뷰 (세르주 다네 Serge Daney & 장-피에르 우다르Jean-Pierre Oudart 1977년 5월)

트라스 우스 몽투스  Trás –os- Montes | 안토니우 레이스와의 인터뷰

세르주 다네, 장-피에르 우다르 (까이에 뒤 시네마)


까이에 | 트라스-우스-몽투스의 농부와 함께 작업한 그 조건, 그리고 촬영에 대해서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레이스 | 먼저, 우리는 친구가 되지 않고서는 농부,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을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이점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었어요. 카메라를 들이 댔을때 문제 없이 작업하기 위해서였죠. 사람들과 촬영을 시작했을 때, 이미 카메라는 말하자면 작은 애완동물이었습니다. 장난감이나 조리기구처럼 위협적이지 않은 것 말이죠. 그래서 그들의 집에서 전기를 빌려 조명을 쓰거나 야외에서 반사판을 쓰는 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한편으로는 일종의 게임이기도 했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애정이 넘치게 말이죠. 그리고 만약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매우 잘 이해해줬어요. 무척 중요한 부분이죠. 그들은 우리 또한 “영화의 농부들”임을 확인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때때로 하루에 16시간, 18시간씩 일하곤 했거든요. 그리고 내 생각에, 그들은 우리가 일하는 것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우리가 그들과 좀 더 작업하기를 원하면 아이를 돌보거나 동물들에게 밥을 줘야 한다 해도 개의치 않았어요. 그건 정말 경탄스러웠죠.

아시다시피 저는 사람들에 대해 중언 부언하지 않지만, 북동 지역에서는 사람들을 대하는 매우 특별한 방식이 있다고 믿어요. 만약 당신이 (갑자기) 그곳에 도착한다면 그들은 문을 열고, 빵과 와인을 주며 환영하죠. 당신이 뭘 가지고 있든지 간에요. 하지만 그들은 “친절의 전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한편 그들은 거칠거든요. 온화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도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까이에: 그 사람들이 영화나 텔레비전과 맺는 관계는 어떠했죠?

레이스: 우리가 촬영한 마을에는 영화나 텔레비전이라고 없었어요. (종이 식탁보에 그림을 그리며) 포르투갈은 이렇게 생겼고, 스페인은 이렇게 생겼고, 북동부는 여기에요. 여기에 브라간사(Bragança)라고 하는 도시가 있고 저기는 미란다 도우루(Miranda do Douro)에요. 우리가 촬영을 한 마을은 모두 이 두 도시의 주변에 있었어요. 이 마을의 사람들은 브라간사에 가면 영화관이나 텔레비전이 있다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그게 다죠. 여전히 많은 마을에 전기가 없었어요. 꽤 단순하게, 영화와의 관계는 여전히 사진과의 관계와 다름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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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이에: 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떠올렸을 때, 농부들을 민족지적인 프레임으로 보는 것을 어떻게 피하고자 했습니까?

레이스: 나는 민족지적인 보기의 방식이 악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민족지는 사후적으로 나타나는 과학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북동부의 사람들을 그림 같은 풍경으로, 혹은 종교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분명 이 지역의 켈트 문학 등에 의해 제기된 인류학적 문제들이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장 마르칼(Jean Markale, 프랑스 작가: 편집자주)을 다 읽었어요. 왜냐면 켈트가 아직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었죠. 우리는 이베리아 건축을 공부했는데 그 지역의 주거 건축은 그 세대에 지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언제나 선택과 강조라는 목적에서였습니다. 만약 풍경을 오직 “아름다움”의 관점으로만 읽는다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풍경의 아름다움, 풍경의 경제적인 측면, 풍경의 지리학적-정치적 측면을 한꺼번에 읽는다면 그것은 그 풍경의 리얼리티입니다. 어떠한 변형도 없는 통합된 땅, 경작된 땅 등. 그래서 북동부를 주제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모든 것, 사람들로부터 배운 모든 것,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발견한 모든 것을 변증법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했었기 때문이었죠. 마르가리다는 북동부의 가장 험한 폭력적인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까지 그녀는 와인의 맛, 어린 시절의 전설과 악몽을 기억합니다. 이 모든 것이 특정한 깊이로 물질(*영화)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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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이에: 리스본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북동부란 무엇일까요?

레이스: 그곳은 정말 멀어요. 거기서 전기, 아몬드, 좋은 소시지, 햄, 철 등등이 생산됩니다. 북동부의 농부들이 말하는 수도는 리스본 사람들이 북동부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노스이스트에서 리스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말만 빼면요. 리스본에서 2, 30년을 살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만약 당신이 사투리로 나무의 이름을 말하면 여전히 벌벌 떱니다.

 

까이에: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카톨릭 교회가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4월 25일 혁명 이후의 포르투갈, 특히 북부 지역에 대해서 여기 프랑스에서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레이스: 그 주제에 관해서라면, 마르가리다와 저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의 원칙을 택했습니다. 영화에서 우리는 결코 교회를 다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카톨릭 신앙은 그 지역에서는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죠. 당신은 영화를 통해서 보다 더 오래된 종교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기독교는 무척 피상적인 것입니다. 그들이 드루이드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나 시적 허용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나무에 관해서, 그들이 그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서 듣는다면… 기독교와는 관계가 없는 아주 오래된 무언가가 있고, 그것은 부재를 통해서 보여져야만 합니다. 영화는 북동부의 서사시에 대한 프레스코이고, 마을 성직자 등이 있는 인공적 세계 안의 작은 예배당보다 더 광대한 것입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주제로 삼는 영화는 다른 여타의 암시들로 우리가 만든 영화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까이에: 하지만 최근 포르투갈 북부에서의 교회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농민들을 정치적으로 움직이게끔 만들기 위해서 교회는 무엇을 사용했나요?  

레이스: 당신과 나는 모두 성직자와 농부들 사이의 게임을 알고 있습니다. 성직자는 죽음, 내세 같은 것을 이용해 농부들을 다루고, 겁을 줍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태초부터 특정한 미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이용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성직자에게 하는 말이, 그들에게 하는 행동이 그들을 전부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농부들을 만나서 느낀 그들의 혁명, 그들의 철학, 그들의 일상은 아주 다른 종교였습니다. 더 고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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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이에: 당신이 말하는 것은 아주 먼 과거를 언급하는 바위에 새겨진 글을 보는 어린 아이와 양치기가 등장하는 영화의 아주 초반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과 일치할 것입니다.

레이스: 영화에는 세 명의 양치기가 있습니다. 셋 다 모두 다르죠. 첫 번째는 당신이 얘기한 사람인데요, 자연의 힘이죠. 그는 아프리카의 풀라니(Fulani)나 중동의 양치기에요. 자신의 양에 대한 코드(code)가 있고, 밤에 걸어 다니고 여전히 신석기 시대에 속한 것 같은 직업 양치기 말이에요. 그가 양에게 하는 말은 음악, 음성, 어휘를 구분하기 입든 코드입니다. 당신은 이 요소들 사이에서 충격을 느끼겠죠. 그리고 그는 포르투갈어보다 오래된 사투리로 말합니다. 그는 마지막 양치기와는 무척 달라요. 좋은 의미에서 그는 원시적입니다.

까이에: 영화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레이스: 마르가리다가 거기서 태어났다고 이미 말했었지요. 저로 말하자면 포르투에서 6km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이미 힘이 없고, 아름다움이 없고, 표현이 없는 침식된 지방이었어요. 그래서 내 안에는 다른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축가 친구와 처음으로 트라스-우스-몽투스에 갔을 때, 저는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느꼈지요. 저는 몇 년 동안 이 지방을 알고 있었고 마르가리다와 일하면서, 또 거기에 자주 가면서 나 자신에게 거기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왜냐하면 영화적인 맥락에서 모든 것이 합쳐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어요. 우리가 촬영을 시작했을 때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장소를 섭외했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무언가를 계획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보다는 탄력적인 계획이었죠. 예를 들어 많은 장면에서 연출되어 찍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두 미학적 위치의 변증법은 우리에게 지옥 같았죠. 그러나 우리는 인위적 합성이 아니라 대립을 직면하는데 성공했다고 믿습니다. 한편 우리는 속도, 놀라움이 필요했지만 동시에 말이 되지 않거나 불필요하게 포퓰리즘적인 기생하는 것들을 제거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곤충의 눈이 필요했습니다.

까이에: (어린이와 한 사람이 등장하는) 첫 부분 내내, 나는 당신이 보다 날것의 정보, 즉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서 기대하는 그런 것과 관련되는 정보를 급진적으로 드러내도록 허구를 사용한다고 느꼈습니다.    

레이스: 하지만 어머니가 블랑셰플레르(Blanchefleur)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것은 허구일까요 다큐멘터리일까요? 둘 다이죠. 마을에서는 허구인 사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을에 대해 놀라운 것은, 당신이 그곳에 있다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황금 먼지와 봄의 동물 등등뿐이죠. 그러나 우리가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강으로, 문을 통해서 갈 수 있다면 일은 너무 복잡해져서 당신은 단순히 허구와 다큐멘터리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집에서 당신은,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가 일을 하는 와중에 직접 입으로 블랑셰플레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세의 어린이들은 블랑셰플레르의 이미지와 비슷하죠. 이 포르투갈의 마을을 통해서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고대의 문화를 그 이후의 문명, 그리고 오늘날의 일상과 분리하는 것은 악이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나는 이 분리에 대한 거부에서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요소를 발견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곳의 대중들은 도시에 무엇도 빚지지 않는 삶의 형식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에 어떻게 동화되어야 할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항상 잃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유럽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아무것도 보상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유럽에서 돌아온 자식들은 다른 이들의 “옆에” 집을 짓고, 울타리를 만듭니다. 부모들은 그것을 보고 “내 자식이 미쳤군!”이라고 생각하죠. 그리하여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죠. 그들은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유하며 그들에 대한 대량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요. 이것이 “우리는 리스본을 위한 식량 공급을 모두 중단할 것이다”라고 그들이 말했던 이유입니다. 이것은 반동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손과 머리가 여전히 가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한 것으로 돌아가 보죠. 사실 영화에는 전환점이 있습니다. 이 전환점은 언제나 위협받는 서정적인 특성이죠. 아이들이 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그들은 얼어 죽은 송어를 발견합니다. 먼지가 가득한 큰 집, 죽음, 광산에 가는 사람과 노는 아이, 이것은 언제나 위협받는 세계입니다. 나는 영화는 언제나 변한다고 믿습니다. 소위 말하는 “피날레”는 부메랑과 같아야 합니다. 관객은 뒤따르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서 첫 번째 부분의 서정적인 시간과 공간에 의해 보상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것을 대장장이가 유감스러워할 때, 이것은 정확히는 불구가 된 아이들과 식민 전쟁에서 죽은 이들, 바로 그들을 지칭합니다. 유럽으로, 리스본으로, 공장으로, 슬럼가로 가는 사람들이죠. 이것이 우리가 어린 아이들을 매우 강렬하게 다룬 이유이죠. 거기에 가게 된다면 당신은 알게 될 겁니다. 거기에는 자연주의도 없고, 그들은 여전히 천사의 한 종류라는 것을요.

까이에: 아이들은 과거와 연결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른은 일종의 배경입니다. 그들은 보이스-오버로만 등장하지 화면에 등장하지 않아요.

레이스: 거기에는 어른이 없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들은 다소 폭력적이고 억압된 보이스-오버는 영화에서 잠깐만 보게 되는 캐릭터의 목소리에요. 그건 광부의 아들, 행정가이죠. 그의 아버지는 50여년간을 광산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이 남자의 목소리는 충격에 차 있죠. 그는 이전에는 농부였던 광부들의 커뮤니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영화에서는 마을의 공동체에 대해서 절대로 말하지 않지만, 당신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는 춤을 추고, 어둠에서 함께 걷죠. 보이스-오버는 광부들의 삶과 대립하는데, 마치 기차 소리와 그것이 울릴 때 대립하는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의 음악과 같이 말이죠. 언제나 사운드와 이미지가 변증법적으로 교차합니다. 저는 이 모든 이야기의 연결, 영화 조작의 법칙보다 그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까이에: 영화의 어느 한 시점에서, 당신은 카프카의 텍스트를 인용합니다. 이 텍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죠. 사람들이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러므로 법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사람들은 그 법을 추측하려 하지만 절대 해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법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소유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리스본과 관계된 트라스-우스-몽투스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요약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레이스: 그렇습니다. 우리는 카프카의 텍스트를 방언으로 번역했고 그 결과 이 텍스트는 후두음 소리를 가지게 되었으며, 매우 표현적이며 특별한 힘을 부여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귀족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지시하는 놀라운 단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baratím”입니다. 지역 공동체의 법이 유연하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적 변화에 의해 변모합니다. 이것들은 물론 구전 율법이며, 한번만에 만들어지지 않고 모두 융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 유연함 때문에 구전 율법은 성문법에 의해 대체되었죠. 어느 날은 한 양치기가 양들을 목초지로 데려가고, 다른 날은 다른 양치기가 데려가죠. 이 지역에는 일종의 원시적인 공산주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그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더 미래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예를 들어 리스본에서 24시간동안 단수가 된다면 집단적으로 신경질적이게 되겠죠! 거친 삶을 부여 받은 농부는 어떻게 눈, 불, 뜨거움을 마주합니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견딥니까. PIDE[Polícia Internacional e de Defesa do Estado (International and State Defence Police)]에 의해 투옥되었을 때 조차도, 그들은 저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왜, 그리고 나는 얼마나 많은 포루토의 친구들, 고상하게 또 수다하게 누가, 또 그들이 언제 투옥되었는지를 말하는 친구들을 알고 있는가… 나는 농부들이 더 용감하고 다른 이들은 겁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바이슈 알렌떼주(Baixo Alentejo)의 농부들이 체포되었을 때처럼, 왜 그들은 도시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인내를 가지나요?

까이에: 우리는 당신의 영화가 당신이 거부하는 모든 속이는 것에 대한 이미지-사운드의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레이스: 우리는 분명 싱크가 맞게 사운드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단위를 만들었는데요, 마치 교향곡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 요소들은 때때로 더 멀리 메아리 칠 것들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죠. 한 흑인 노파가 넘어진 아이에게 “울지 마렴, 내가 ‘Galandun’(중세의 노래)를 너에게 불러 줄게”라고 말한다고 칩시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댄서, 일어나는 댄서, 일어나는…”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미 일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때 마치 엽서 위에 있는 듯 가까이에서, 흐리게, 그리고 멀리서 춤추는 남자를 봅니다. 우리는 관객이 이렇게 생각하기를 용납합니다. “봐, 엽서다!” 왜냐하면 농부들을 절대 실제로 거기서 춤을 추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것이 오늘 우리가 스스로 상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세요. 당신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숏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늙은 여자를 보고 있고, 당신은 그 여자가 댄서를 보고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은 연속적인 환영이지만 트랩은 아닙니다. 종종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리듬이 너무 느리다고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죠.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리고 서로 다른 단위들이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진행되는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를 정말로 많이 괴롭혔던 것은 영화를 흑백으로 편집한 것이고 이후에 컬러로 작업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편집 작업대에서 열 두달간 작업하던 필름은 컬러여야만 했어요. 흑백이 아니라요!

 

까이에: 이제까지 누가 영화를 보았습니까? 어떤 반응을 불러 일으켰죠?

레이스: 처음은 우리가 촬영했던 그 농부들에게 영화를 보여줬어요. 대개는 이 영화를 좋아했고, 매우 잘 반응했죠. 우리는 나쁜 비판을 듣기도 했는데, 리스본이나 포르토에서 당신이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반응이었어요. 그들은 카톨릭이라는 종교를 보여주지 않은 것, 또 댐, 전통 요리, 빈곤 등을 보여주지 않은 것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필름을 태우고 네거티브를 파괴하기를 원했죠. 하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의 반응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생애를 카페에서 보내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온 것이죠.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농부들이었습니다..

까이에: 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영화가 이 농부들을 돕는데 기여할 수 있죠?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에서 소외되었을 이들 말이에요.  

레이스: 물론, 영화적 언어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언어가 없었죠. 하지만 그들의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중세의 연극과 관련된 그런 것이죠. 그들이 살고 있는 집, 공간, 자연은 이미 영화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나는 확신해요. 만약 그들이 영화를 공부하면,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고요. 어느 날 한 농부가 내게 말했습니다. “뭐라구요? 리스본으로 떠난다구요? 이러이러한 곳에서 이러이러한 곳으로 움직이는 빛을 보지도 않고 말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리스본에서 벽돌이나 길거리의 빛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농부들이 영화를 보았을 때,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 그들에게 속해 있는 것을 인식합니다. 우리의 상상력이나 표현의 자유로움 때문에 어리둥절하더라도 말이죠. 눈 장면을 예로 들어 보죠. 그들은 당신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절대 눈을 먹지 않지만, 눈에 영향을 받고, 눈의 아름다움에 영향을 받고, 눈의 빛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먼지나 짚을 먹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눈을 먹게 했죠.

Cahiers. What can you tell us about the shooting, about the conditions in which you worked with the peasants of Trás-os-Montes?

A. Reis. I can tell you that we never shot with a peasant, a child or an old person, without having first become his pal or his friend. This seemed to us an essential point, in order to be able to work and so that there weren’t problems with the machines. When we began shooting with them, the camera was already a kind of little pet, like a toy or a cooking utensil, that didn’t scare them. So using their lights in their homes or setting up reflectors in the fields to have indirect light wasn’t a problem. It was a sort of game at the same time. So it was possible to insist on certain things, most often with tenderness. And if we were having a problem, they understood very well. A very important thing: they were able to confirm from our work that we were also “peasants of the cinema,” because it sometimes happened that we were working sixteen, eighteen hours a day, and I think that they liked seeing us working. And when we needed them to continue working with us, even while leaving the animals without food or the children without care, they didn’t feel, I think, it was a constraint. It was admirable to see this.

You know, I don’t have a tautological conception of people, but I believe that in the Northeast, they have a very special way of treating people. If you arrive – suddenly –they greet you, they open their door to you, they give you bread, wine, whatever they have. At the same time, they are not “kindness personified” because they are also very hard. Only they go abruptly from gentleness to violence.

Cahiers. What relationship did they have with cinema, or television?

A. Reis. In the village where we shot, I can tell you that there was neither cinema nor television. (He makes a drawing on the paper tablecloth.) Portugal is like this, Spain is like this, the Northeast is here. Here, there is a town named Bragança and, there, another named Miranda do Douro. All the villages we shot in are situated near the border and in the vicinity of these two towns. So the peasants know that there’s cinema and television in Brangança, but that’s all. In many of the villages, there is still no electricity. The connection to cinema is still a connection to photographs, quite simply.

Cahiers. How, as soon as you had had the idea and the project of the film, had you thought to avoid looking at these peasants through an ethnographic lens?

A. Reis. You know, I believe that the ethnographic way of seeing is a vice. Because ethnography is a science that comes afterwards. Similarly, we did not see the people of the Northeast from a picturesque or a religious point of view. We were obviously very interested in the anthropological problems posed by the region, in Celtic literature, etc. We read all of your Markale(the French writer -Ed.), because the Celts are still there. We studied Iberian architecture because the architecture of the homes there was not born by spontaneous generation. But it was always with the aim of choosing, of intensifying. Because if we read a landscape solely from the point of view of “beauty,” that’s not very much. But if you can read at once the beauty of the landscape, the economic aspect of the landscape, the geographical-political aspect of the landscape, all that is the reality of the landscape. The integrated land, without any transformation, the cultivated land, etc. So, on the subject of the Northeast, we treated dialectically everything we knew, everything we learned from the people, everything we discovered ourselves. Because it was also possible to discover things. Margarida was born in the most violent part of the Northeast. Even today, she remembers the taste of the wine, the childhood legends and the nightmares. All this became material, with a certain depth.

Cahiers. But for someone who lives in Lisbon, what is the Northeast?

A. Reis. It’s very far. It’s from there that electricity, almonds, good sausages, hams, iron, etc, comes. What the peasants of the Northeast say about the capital is what is said about the Northeast in Lisbon , except for emigrants from the Northeast in Lisbon. To them, even if they’ve lived for twenty or thirty years in Lisbon, if you say the name of a tree in their subdialect, they still tremble.

 

Cahiers. Something that’s striking in the film is the absence of the Catholic Church, of religion. Because according to what we know in France about Portugal after April 25th, and particularly about the North, it seems to us that the Church played an important role…

A. Reis. I can tell you that on this subject, we adopted, Margarida and I, a principle of tabula rasa. In the film, we never deal with institutions. Because Catholicism is a very recent religion there. You sense in the film that there are much older religions and among the people themselves, Christianity is a very superficial thing. It’s not an exaggeration or a poetic liberty to say that they are druids.

If you hear them talk about trees, about how they love them…there is there something very old that has nothing to do with Christianity, which had to be made present through its absence. The film is a fresco, an epic of the Northeast, it’s vaster than a small chapel in an artificial world, with the village priest, etc. I think that a film with all that as a subject should to be made differently than the one we made, with other implications.

 

Cahiers. But you can’t deny the Church’s influence recently in the North of Portugal. What did it use among the peasants in order to make them move politically?

A. Reis. You know as well as I the priest’s game with the peasants. He manipulates them with death, the afterlife, he scares them. He uses the fact that the people, for the time being, need certain fetishes, so it’s easy to impress them. But does this mean that deep down the people are what they say to the priest, what they do with him? No.

All that we feel, when we’re in contact with the peasants, about their revolt, about their philosophy, about their daily life, is that there are very different religions, more ancient…

 

Cahiers. That would be in keeping with the feeling at very the beginning of the film where we see a child, a shepherd, who sees an inscription on a rock, an inscription that refers to a very distant past.

A. Reis. You know, there are three shepherds in the film. All three are different. The first, the one you’re talking about, is a force of nature. He is like a Fulani in Africa or a shepherd in the Middle East, a shepherd who has a profession, a code with his sheep, who walks in the night, who still belongs a bit to the Neolithic age. What he says to his sheep is a code where it is difficult to separate the music, the phonetic and lexical aspects: you feel a shock between these elements. And he speaks a subdialect older than Portuguese. He is very different from the last shepherd. He’s a primitive in the good sense of the term.

 

Cahiers. How did the idea of the film come to you?

A. Reis. I’ve already said that Margarida was born there. As for me, I was born in an already eroded province lacking force, lacking beauty, lacking expression, 6 km from Porto. So inside me I had the desire to be reborn somewhere else. And the first time that I went to Tràs-os-Montes with an architect friend, I felt that I was born there. So, I’d known the province for several years and, in working with Margarida, in going there often, I said to myself that it would be nice to make a film there because everything came together in a cinematographic sense. To the point that when we began shooting, a lot of location scouting had been done long before. That doesn’t mean that we didn’t plan things, but it was a flexible plan. In many scenes, for example, it is very difficult to distinguish what was filmed en direct from what was not. The dialectic of these two aesthetic positions was hellish for us. But we believe we’ve succeeded in making, not a synthesis, but a confrontation of contraries. Even en direct, on the one hand, we needed all the speed and all the surprise but, at the same time, we cleaned up some parasitic things that didn’t make sense or that were gratuitously populist. And for that, we needed an insect’s eye.

 

Cahiers. I had the feeling that, during the whole first part (the one with the children), you were using the fiction to progressively bring out more naked information, more closely related to what one expects from a documentary.

A. Reis. But when the mother is telling the story of Blanchefleur, is it fiction or documentary? It’s both. In a village it can happen that an event is fiction. So what is surprising about a village is that if you are there, you see only the golden dust, animals at the spring, etc. But if we can go from one house to another, then to a river, then through a door, things become so complex that you can no longer talk simply about fiction and documentary.

In this house, you can hear, precisely, that mother telling the story of Blanchefleur orally, while working. And the children of the middle ages are like Blanchefleur in images. What you understand with these Portuguese villages is that it’s a vice to separate ancient culture, the civilizations that came after, and everyday life today. It is there precisely, in this refusal to separate, that I find a progressive and revolutionary element. Because I think that the masses there know how to assimilate from a critical point of view of the forms of life that owe nothing to the city. Because these people aren’t inclined to always lose. They begin to realize, seeing their sons returning from Europe, that that doesn’t make up for anything. The sons who return from Europe build a house “next to” the others, fence it in, and the parents think, “My son has gone mad!” And so it arises that the old disagree with their own children. They know very well that they have a richness and that there is a genocide against them. This is why, at those times, they can say, “We’re going to cut off all the supplies, the food for Lisbon.” It’s not only to be reactionary; it’s that they want their hands and their heads to still have value.

Going back to what you said: in fact, there is a turning point in the film. This turning point is the lyrical quality that is always threatened. Even when the children amuse themselves at the river, they discover death with the frozen trout. The big dusty house or the deaths or the child who plays with the top (who is the one who goes to the mine), it is always a threatened world. I believe that the film is always transforming. The so-called “finale” has to act like a boomerang: viewers need to be compensated by the lyrical space and time of the first part in order to support what follows. When the blacksmith regrets that people are leaving the village, this refers precisely to the mutilated children and the deaths from the colonial wars, these are them. Those who are going to come to Lisbon, to Europe, in the slums, in the factories, etc. That’s why we treated these young children with so much intensity. If you go there, you’ll see, they’re like that, there’s no naturalism, they’re still sort of angels.

 

Cahiers. There’s also the feeling that it’s them who are the link with the past. The adults are kind of in the background. They appear through the voice-over, not on-screen.

A. Reis. Because there are no adults there. The voice over you hear, a little violent, a little oppressed, is the voice of a character who we see for a brief moment in the film. It’s a miner’s son, an executive. His father spent fifty years at the mine. The voice of this man is traumatized.

He speaks of the old community of miners who were former peasants. Never in our film do we talk about the communities of villages, but you have to feel that they exist. We do the dance, we walk in the dark communally.

The voice over counterpoints the life of the miners like the train whistle counterpoints Pergolesi’s music that we hear for a moment. There is always a crossing, a dialectic of the sound with the image that interests me a lot more than all these stories of connections, of ellipses and other rules from film manuals.

 

Cahiers. At one point in the film you quote a text by Kafka which says that people are far from the Capital, therefore from the Law, which they try to guess but which they never manage to do because the Law is possessed by a small number of people, etc. Can we consider that this is shorthand for the historical situation of Tràs-os-Montes in relation to Lisbon?

A. Reis. Yes. We translated the text by Kafka into the subdialect and, as a result, this text became very guttural, very expressive, endowed with an extraordinary force.

They have a marvelous word designating the manner in which the nobles use the Law to their benefit: “baratím.” Because the laws of the community are flexible, they are transformed by historical change. These are of course oral laws, they aren’t made once and for all, they are flexible.

And it is precisely because of this flexibility that they were liquidated by the written Laws. One day, it is such and such a shepherd who leads all the sheep to graze, another day it’s another shepherd. There’s a sort of primitive communism in this region. And we feel that at times they are closer to the future than people in the city. For example. if Lisbon lacks water for twenty-four hours, there is a collective neurosis! How, given the toughness of his life, does a peasant face snow, fire, heat, etc. With what endurance. Even when certain peasants were imprisoned by the PIDE [Polícia Internacional e de Defesa do Estado (International and State Defence Police)], they succeeded at resisting. Why? And how many friends have I known in Porto who spoke a lot and very loftily and who, when they were imprisoned… I don’t want to say that the peasants are more courageous and the other more cowardly. But why, for example, when the peasants of Baixo Alentejo were arrested, did they have an endurance that people from the cities did not have?

Cahiers. We get the feeling that your film is made of image-sound units against which you refuse all cheating…

A. Reis. We have made the sound synchronous, obviously. We have, like you say, organized the units, as if it were possible to have a symphonic sound. These are units which will sometimes echo further on. I’ll give you an example: when the old woman in black has just told the child who has fallen, “Do not cry I’m going to sing ‘Galandun’ (a song from the Medieval Ages) to you,” there is a voice that says, “the dancers who rise up, who rise up…” And she is already working to memorize what she has lost and we see then the men who dance close up, blurred, and then from far away, like on a postcard. We allow the spectator the attention to think: “Look, a postcard!” Because the peasants never actually danced at that place. It’s what we ourselves imagine today. But pay attention: you have to to wait until the end of the film to really give that shot meaning. Because later, we see the old woman who watches and you might believe that she

watches the dancers, but that’s not true. These are successive disillusions, but not traps. Often people say of the film: the rhythm is too slow. This is because you have to wait until the end of the film to say certain things. And how the different units proceed dialectically, for us, is very

important. What’s bothered us a lot is that we edited in black and white and we haven’t had enough time afterwards to work on the color. Working twelve months at an editing bench assembling in black and white a film that we should have seen in color!

 

Cahiers. Who has the film been shown to? What reactions has it provoked?

A. Reis. First we showed previewed the film to the peasants who we shot with. In general, they liked the film, they reacted very well, including to the “connotations.”

We’ve had some negative criticisms but they were from reactionaries like the kind you find in Lisbon or Porto. They reproached the absence of the Christian religion, of not having shown dams, the traditional cuisine, the poverty, etc. They even wanted to burn the film and to destroy the negatives. But that’s a very limited reaction, coming from people I know and who spend their lives in cafes. The important thing, for us, was the peasants…

Cahiers. But exactly how can a film contribute to helping these peasants who are otherwise so cut off  from film?

A. Reis. Of course, there are cinematic language problems. They don’t possess this language there. But there are elements which are very important in their everyday lives, things which relate to the theater of the middle ages. They live in a space, at home or in nature, that is already cinematic. I’m certain that if they study film, they will become filmmakers. A peasant said to me one day, “What? You’re leaving for Lisbon without ever having seen the light which goes from such-and-such kilometer to such-and-such kilometer? How can you?”

With difficulty I find people in Lisbon who talk to me about the light on the bricks or on the streets. So when the peasants saw the film, they recognized these things they liked and that belonged to them, even if sometimes our imagination or our freedom of expression bewildered them. For example, the snow scene. They’ve never eaten snow like you see in the film but they’re affected by snow, by the beauty of snow, by the glare of snow. So, as there are people who eat dirt or straw, I made them eat snow.


『까이에 뒤 시네마』 276호(1977년 5월), 337-341쪽.
불-영 번역: 켈시 브레인, 테드 펜트 빌 크로흔

Cahiers du Cinéma, no. 276 pp. 337-41, May 1977.
Translated from the French by Kelsey Brain, Ted Fendt, Bill Krohn.

번역: 이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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