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니엘 폴레 Jean-Daniel Pollet (1936-2004), <지중해(Méditerranée)>, 그리고 텔 켈 Tel Quel 1960-1983 그룹 _앤드류 리치 Andrew Ritchey

<지중해>를 다시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1960년대 동안 그것을 둘러싸고 소용돌이 쳤던 개념과 분류의 범주를 넘어선다는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중해>는 보다 적절하게는 데리다적 의미에서의 글쓰기이다. 홀린 듯한 트래킹 샷의 모호한 움직임, 느린 패닝과 귀에 거슬리는 음악, 상징적으로 끌어 내어진 형상, 그리고 주술적인 보이스-오버를 통해 순수한 이론적 개념의 정적인 견고함을 넘어서면서 말이다. 복잡하고, 정동을 불러 일으키며, 끊임없이 묘한 매력을 주는 영화 <지중해>는 개념의 정확성과 분류학의 폐쇄성에 저항한다.

여전히 감흥을 주고, 또 분류 불가능한 <지중해>는 전후 프랑스 영화 문화의 정적인 그림을 제쳐두는 무빙 이미지이다. 이미 확립된 분류 범주의 확실성에 저항하면서(“레프트 뱅크”도 아니고, 누벨 바그도 아니고, 작가주의 영화도 아니고, 지가 베르토프나 SLON, 키노 프라우다와 같은 집단적 영화 생산도 아니다), 폴레의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관한 담론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 이론의 역사에서 엄청나게 영향력 있고 중요한 전환을 불러 일으키면서 말이다. <지중해>는 텔 켈 그룹의 사유의 움직임과 함께했다. 텔 켈 그룹은 1960년대와 그 이후의 문학 이론과 영화 이론의 길을 정초하기 위한 반론의 여지 없는 주장을 펼쳤고 이는 레프트 뱅크에 모여든 그룹과는 대립하는 영화의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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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 레이스 António Reis와의 인터뷰 (세르주 다네 Serge Daney & 장-피에르 우다르Jean-Pierre Oudart 1977년 5월)

나는 민족지적인 보기의 방식이 악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민족지는 사후적으로 나타나는 과학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북동부의 사람들을 그림 같은 풍경으로, 혹은 종교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분명 이 지역의 켈트 문학 등에 의해 제기된 인류학적 문제들이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장 마르칼(Jean Markale, 프랑스 작가: 편집자주)을 다 읽었어요. 왜냐면 켈트가 아직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었죠. 우리는 이베리아 건축을 공부했는데 그 지역의 주거 건축은 그 세대에 지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언제나 선택과 강조라는 목적에서였습니다. 만약 풍경을 오직 “아름다움”의 관점으로만 읽는다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풍경의 아름다움, 풍경의 경제적인 측면, 풍경의 지리학적-정치적 측면을 한꺼번에 읽는다면 그것은 그 풍경의 리얼리티입니다. (안토니우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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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다니엘 폴레(Jean-Daniel Pollet)와의 대화 1969년 11월

비평가에 의하면 장-다니엘 폴레Jean- Daniel Pollet (1936-2004)는 저주받은 영화감독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꼬리표는 지금까지 어떠한 경우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관객의 시선을 제한하는 영화배급의 거절만 아니라면 사실, 존재하는 흥미롭고 새로운 영화는 배급이 잘 안 되는 젊은 영화감독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앤디 워홀 Andy warhol, 필립 가렐 Philippe Garrel, 셜리 클락 Shirley Clarke이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저주받은 영화감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저주가 있더라도 관객은 이들의 영화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책임이 없다. 문제는 관객을 이해력이 부족한 소양없는 대중이라고 간주하는 부조리한 비평가들이 초래한 배급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시스템의 문제 때문에 폴레는 그의 첫 장편 ‹조준선La ligne de mire(Line of Sight)›(1960)을 파기했다. 현재 시스템은 주변부의 작가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그들을 저주받은 작가라고 부르거나 ‘예술과 시도’라는 공간의 격리된 거주지에 가두면서 말이다.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감독들은 그들이 저주 받지 않았고 자유롭다는 사실을 지속적인 영화 만들기를 통해 증명해낸다.

폴레는 프랑스가 “받아들인” 자유로운 영화감독 중 한명이다. ‹로빈슨, 너는 상상한다 Tu imagines, Robinson›(1968)와 ‹사랑은 즐겁고, 사랑은 슬프다 L’amour c’est gai, l’amour c’est trist›(1971) 이 두 작품이 최근에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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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시네마'와 오늘날의 16mm 영화제작 'Personal Cinema' and 16mm film today

이제 필름(나는 ‘필름’을 대문자 F로 적으며 비디오와 차별화할 것이다)은 산업적인 예술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평론가이자 이론가인 존 플라우스John Flaus는 때때로 필름은 인류 최초로 등장한 예술 형태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산업적 예술로서(기계 시대에 의존하는) 내가 느끼기에 '퍼스널personal'은 내가 기계-안으로 침입하거나 또는 기계가 내 안으로 틈입하는 내적 감각이다. 필름을 통해 나는 손과 기계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손과 붓이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숙련된 화가는 어떻게 붓을 집어야 하는지, 어떻게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페인트를 움직여야 그들이 본 것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런 인식은 붓을 어떻게 손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훈련되는 것이다. 붓은 그들의 한 부분이자 그들은 붓을 통해서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의 눈과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눈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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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문제 A Matter of Life and Death- 피터 체르카스키 <빛과 사운드 장치를 위한 입문 Instructions for a Light and Sound Machine>

이 작품에 앞서 만들어진 시네마스코프 삼부작 - <도착>(1997/8), <외부공간>(1999), <드림 워크>(2001) - 에서와 마찬가지로 체르카스키는 특유의 밀착인화기법(contact printing method) -노출되지 않은 생필름 위에 파운드 푸티지 수작업을 통해 프레임별로 복사하고 몇 차례의 다중노출과정을 고치면 대단히 놀라운 “핸드메이드” 효과가 얻어진다 -을 사용해 지적인 동시에 정서적으로 충격적인 효과를 창출해내고 있으며, 처음으로 공인된 고전 영화를 작품의 원재료로 사용했다. 테렌스 영의 지루하게 긴 합스부르크 멜로드라마 <마이엘링>(1968)을 영화적 스펙터클의 본질에 관한 훌륭한 2분짜리 에세이로 요악하고(<도착>), 시드니 j.퓨리의 컬트 호러물 <엔터티>(1981)을 거장다운 솜씨로 정신분석학적 텍스트로 바꿔놓은 뒤(광란적인 <외부공간>)과 보다 멜랑콜릭한 <드림 위크>, 이 두 편의 영화는 밀착인화기법의 선구자 만 레이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체르카스키는 <...입문>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석양의 무법자>(1966)를(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낭만적 서부극을 그리스 비극으로 변형” 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의 독특한 자기반영적 스타일은 체르카스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이때의 비극의 주인공 역할은 엘리 왈라치의 이미지에 할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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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JUN LEE
빗 속에서 노래를 Singing in the Rain: 피터 체르카스키의 슈퍼시네마토그래피 Supercinematography by Peter Tscherkassky

모더니즘의 정신은 아방가르드 영화라는 용어에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용어는 1920년대 "고전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이 그다지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았던 나라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아방가르드 영화에 국한해 말하자면, 오스트리아와 미국은 정말이지 1940년대와 50년대 이전의 성과를 간신히 "따라잡은"데 지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와 미국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은 진정 모던한 "영화예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한편 독일과 프랑스에서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1920년대 미술 분야를 주로 지시한다. 전후시기의 급진적인 예술영화 실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독일과 프랑스에서 가장 흔한 용어는 "실험영화"이다. 또한 모던아트 신화의 연장선상에서 아방가르드 영화사의 지배적인 개념 역시 "무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나"...에 앞서는 것"등의 행위로 규정되곤 했다. 가령, (1920년대) 바이킹 에겔링이나 한스 리히터의 작품에서 형태의 소멸, 만 레이의 <이성으로의 귀환 Return to Reason>(1923)와 같은 카메라 없는 영화, 피터 쿠벨카의 <아눌프 라이너 Arnulf Rainer>(1960)에서의 영화의 필수적 "본질"(흑과 백, 정적과 화이트 노이즈)을 향한 진전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며, 보다 과격하게는 "개념영화"(concept film)에서의 셀룰로이드의 완전한 폐기와 1960년대 말에 일어난 확장영화(expanded cinema) 운동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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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JUN LEE
미술에서 제도비판에 대응하는 영화적 실천 -제도비판 1세대와 문자주의/상황주의 영화에서 장소화 개념을 중심으로 (1)

본 글은 문자주의와 상황주의 영화가 미술에서 제도비판과 같은 작용을 한다고 상정하고, 이 운동들이 장소화 개념을 기반으로 미술과 영화가 상호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미니멀리즘에 내포된 문제를 상황의 미학과 예술과 상품의 문화정치학 측면에서 검토하고, 미술에서 제도비판 1세대 작가들의 실천이 장소화 개념을 통해 이 두 문제를 해결하고 있음을 보인다. 그리고 문자주의와 상황주의 실천의 특성과 어떻게 제도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지 분석한다. 여기서 장소화는 전시와 상영 공 간이 작품을 수용하는 특정한 방식을 강제하는 관습적이고 제도적인 장소임을 가시화하는 것을 말한다. 제도비판 1세대 작가들과 문자주의, 상황주의 작가들은 전시 및 상영 공간에 개입하는 매개 작용을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반면에 제도비판 1세대 작가들은 미 술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다루지만, 문자주의와 상황주의 작가들은 영화라는 매체 수용의 사회적 조건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이 차이는 전통적인 전시와 상영 공간으로는 새롭게 구성되는 인간 지각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인식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들이 건축적 공간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은 습관의 변화를 통해 미술과 영화의 관례성과 제도성을 극복 하려고 했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를 통해 미술과 영화는 제도적 분리를 넘어 상호 침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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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에서 훔치지: 꼴라쥬, 몽타쥬, 할리우드와 아방가르드

할리우드와 아방가르드의 필름은 일반적으로 반대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 대규모, 산업적 생산 대 소규모, 예술적 공정; 많은 예산 대 최소한의 예산; 35미리 혹은 70미리 대 8미리, 슈퍼 8미리, 16미리;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 대규모의 배급 대 예술가의 커뮤니티를 중은 심으로 한 네트워크 혹은 영화제, 대안 공간, 미술관, 대학을 중심으로 한 배급; 상업 대 예술. 몇몇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러한 대조는 확실하지만 콜라주의 방식으로 침투되는 상업적 부분에서, 할리우드의 이미지들은 파운드 푸티지 방식에 의해 아방가르드 속으로 들어온다. 할리우드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관계는 할리우드를 필름메이커들이 전유하고 할리우드의 상업성을 재활용할 때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다. 

만약 필름이 상품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너무나 많은 스타들이 있고, 그러나 스타들은 특정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들의 미미한 상품화를 초월하는 징후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몇몇의 아방가르드 필름메이커들은 할리우드 도상에 대한 조작을 통해 그들의 아우라를 탐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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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JU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