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장에서 훔치지: 꼴라쥬, 몽타쥬, 할리우드와 아방가르드

윌리암 C. 위스

“아방가르드 이론은 초기 큐비즘 콜라주에 의해 제안된 몽타주의 개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독일 비평가이자 이론가인 피터 뷔르거Peter Bürger는 썼다. 콜라주는 현실생활의 실제적인 부분들을 그림의 영역 속으로 가져옴으로써 현대 예술을 혁명으로 이끌었다. 만들어진 것보다 발견된 것의 포섭, 물질은 창조자로써의 예술가의 책임감과 예술작품의 내적 통일성에 관한 오래된 가정들을 부수었다. 뷔르거가 말했듯이, “현실의 요소들을 예술작품으로 들여오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 작품을 변형시킨다. 예술가는 전체를 조각하는 것을 폐기할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상태를 제시하는데, 그 부분들은 예술작품의 실제와 가까운 특징과의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실제를 지시하는 기호들이 아니라, 실제 그 자체이다.” 더불어, 그들은 “좋은” 혹은 “고상한”예술이라는 흔히 따라다니는 미학적 가치들을 반미학화 하는 대량생산된 이미지들과 사물들의 실제를 구현한다. 콜라주와 함께 예술작품은 미국 미술사가인 크리스틴 포기Christine Poggi가 “전유된 요소들의 상호텍스트적인 작용”이라고 불렀던 것이 된다. 포기는 이러한 요소들은 “상품세계에 선 존재하는 모든 흔적을 존속시킨다.”라고 했다. “대중문화의 잔해들”(포기의 어구)과 예술을 생산하면서, 이는 회화와 조각을 새로운 물질, 해석의 양식과 조직의 법칙들로 열어놓을 (“전유된 용소들의 상호텍스트적인 작용”에 근거한) 뿐만 아니라, 환영이나 논리적 논의가 아닌 병치에 근거한 정치적 담론과 문화적 담론의 미학적 기반을 만들어낸다.

지난 세기동안, 콜라주는 많은 다양한 형태와 매체 안에서 스스로를 강화해왔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초기 실험에서부터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와 한나 회흐Hanna Hoch의 포토 몽타주까지, 또 막스 에른스트의 <Une Semaine de Bont>, <La Femme 100 Têtes>에서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ister Fuller의 <나는 하나의 동사가 되는 것 같아I Seem To Be a Verb>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 틴 피오레Quentin Fiore의 매체는 메시지다까지,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William Carlos William의 <페터슨 Paterson>과 존 도스 파소John Dos Passos의 <U.S.A>에서 마이클 온다치Michael Ondaatje의 <빌리의 선택적 작품들 The Collected Works of Billy the Kid>과 마이클 터너의 <하드 코어 로고 Hard Core Logo>까지, 포스터, 앨범 자켓, 잡지 아티클의 레이아웃에서 텔레비전 광고와 뮤직 비디오까지. 콜라주는 하나의 특별한 노력이 하나의 혁명적인 충격을 요구하는 의미를 만드는 방법론이 되며, 충격까지 아니라면, 미학적 호소와 힘을 고무시키는 큰 노력일 것이며, 적어도 신선한 인식과 통찰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콜라주에 대한 고려가 회화, 문학, 조각의 범위를 넘어선다면, 이는 필수적으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에 의해 이론화, 작품화되었던 몽타주에 대한 고려와 연관이 될 것이다. 에이젠슈타인의 관점에서, 영화에 샷들을 연결시키는 것은 영화 제작자에게 샷의 축적을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병치의 자극들을 생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에이젠슈타인이 주장했듯이, 몽타주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는데, 샷들이 의미의 벽돌들을 쌓아가며 건설되는 부드러운 흐름 속에서 합쳐진 다기 보다는 “충돌하는 것”이다.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또 한 명의 동시대 거장인 푸도푸킨의 이론과 대조된다. 푸도푸킨의 연결 몽타주는 A+B=AB이다. 에이젠슈타인의 충돌 몽타주는 변증법적인 A/B=C이다. 이 공식에서 A,B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병치에 의해서 그들은 하나의 강조와, 필름의 행동과 발전되는 주제의 지적인 연결과 관객의 감정적 발전을 돕는 자극을 생산한다. “대중문화의 잔해들”에서 수집된 샷들에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방법론을 적용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파운드 푸티지”의 그러한 샷들은 뉴스 릴, 교육용 필름, 만화, 여행영화, 과학 필름, 홈 무비, 텔레비전 광고, 포르노 필름, 초기 무성영화,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와 트레일러, 아카데미 리더, 편집실에서 나온 필름들 등, 영화제작자의 손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 이 예술가들은 필름 아카이브와 도서관, 개인적인 수집함과 가족 앨범 상자에서, 벼룩시장에서 창고 세일 등에서 우연히 혹은 그렇지 않게 그들의 재료들을 발견한다. 그 소스와 내용이 어떻던, 모든 파운드 푸티지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아방가르드 필름메이커에 의해 재활용되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적과 사용 사이의 이 구분은 푸티지가 할리우드 필름에서 왔을 경우에 특히 명백하다. 

할리우드와 아방가르드의 필름은 일반적으로 반대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 대규모, 산업적 생산 대 소규모, 예술적 공정; 많은 예산 대 최소한의 예산; 35미리 혹은 70미리 대 8미리, 슈퍼 8미리, 16미리;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 대규모의 배급 대 예술가의 커뮤니티를 중은 심으로 한 네트워크 혹은 영화제, 대안 공간, 미술관, 대학을 중심으로 한 배급; 상업 대 예술. 몇몇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러한 대조는 확실하지만 콜라주의 방식으로 침투되는 상업적 부분에서, 할리우드의 이미지들은 파운드 푸티지 방식에 의해 아방가르드 속으로 들어온다. 할리우드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관계는 할리우드를 필름메이커들이 전유하고 할리우드의 상업성을 재활용할 때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다. 

만약 필름이 상품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너무나 많은 스타들이 있고, 그러나 스타들은 특정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들의 미미한 상품화를 초월하는 징후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몇몇의 아방가르드 필름메이커들은 할리우드 도상에 대한 조작을 통해 그들의 아우라를 탐구해왔다. 초기 두 가지 예가 조셉 코넬Joseph Cornell의 <로즈 호바트 Rose Hobart>(1939)와 브루스 코너Bruce Conner의 <마를린×5 Marilyn Times Five>(1968)이다. 코넬은 지금은 잊혀진 로즈 호바트가 주연했던 1931년의 <보르네오의 동쪽Far East>라는 작품의 샷들을 세팅, 의상, 얼굴 표정, 제스처, 행동에 있어서 의도하지 않은 변화들이 꿈의 시퀀스처럼 보이게 재배열하였다. 코넬의 편집에 힘입어, 호바트의 양성적인 아름다움과 차가움, 스크린에서의 장악력은 확장된 분석의 사물 혹은/그리고 에로틱한 에너지로 충전된 명상이 되었다. 그 에로틱하고 분석적인 것은 <마를린×5> 에서도 나타난다. 코너는 상반신이 노출된 마를린 먼로의 우아하지 않은 이미지를 ‘누드 루프’ 혹은 ‘살의 깜빡임’ 같은 상태로 느리게 반복한다. 코너가 말하길, “나는 이것은 오리지널 푸티지에 있는 마를린 먼로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지금의 그녀이다…이것은 그녀의 이미지, 그녀의 페르소나라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다른 말로, 먼로 스타덤의 아우라는 영화의 이미지들을 봉합시켜왔고, 이것이 코너가 영화배우로써 먼로가 가진 상품성 혹은 원래 영화에서의 먼로보다 더 명확한 수용으로 탐구했던 점이다. 

비슷한 관심이지만 다른 전략으로 최근의 파운드 푸티지 필름들에서 이와 같은 점들이 나타나는데, “불화: 아방가르드에 의한 할리우드” 라는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다. 브렛 카쉬미어Brett Kashmere와 아스트리아 수파락Astria Suparak이 큐레이팅한 이 프로그램에는 리차드 커Richard Kerr의 <산업Industry> 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전시는 할리우드 도상 학을 다양하게 전유하고 비판하고 모방하여 변형시킨 여덟 개의 필름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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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토리 <홈 스토리Home Stories>(1991)에서, 마티아스 뮐러 Matthias Müler는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에서 위험에 처한 여성의 전형성을 모은 몽타주를 통해 코넬과 같은 스타의 매혹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의 끝 부분에서 밤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발췌하고 있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침실, 거실, 복도, 계단 등 집의 공간에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50,60년대에 알려진 스타들인데, 놀란 표정과 얼굴의 그들은 문을 열고 닫고, 창밖을 지켜보며 긴장되게 소리에 주시하고 스크린 밖의 침입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는 멜로드라마에서의 전형성을 구현한 비슷한 인물들이다. 일반적인 전형성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을 묘사하면서, 뮐러는 그러한 전형성에 따라 스스로의 영화를 조직한다. 또 반어적이게도 그는 전형적 사운드의 효과들 또한 사용하고 있다. (전등 스위치의 딸깍거림, 문을 여닫는 소리, 뛰는 발자국 소리, 긴장감 있는 음악). 홈 스토리의 컬러와 이미지는 (비디오 복사에서 나오는 결과) 뮐러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 버전 사이의 반어적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들은 또한 복제와 물질성, 이미지의 “이미지성”으로 주목을 유도하고 있다.

이미지의 물질성은 루이스 클라의 <그녀의 향기로운 이멀젼 Lewis Klahr’s Her Fragrant Emulsion>(1987)과 섹스필름인 <살리나에로 이르는 길 The Road to Salina>(1971)에서 콜라주를 만든-으로 주목을 이끈다. 클라의 테크닉 (필름 위에 스크래치와 페인팅을 포함하고 있다. )은 필름 스트립 그 자체의 물질적 본질에 많은 강조를 두고 있다. 콜라주가 이미 존재하는 것에 관심을 돌리는 것처럼 (신문, 옷가지, 나무, 플라스틱 등의 “실제적 요소들”), 클라의 영화는 주인공의 영화적 이미지에 귀속된 ‘실제'의 이멀전의 얇은 레이어와 셀룰로이드에 대한 인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녀의 향기로운 이멀전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것이 아주 거친 홈메이드 룩이라는 점이다. 그 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이 버질 위드리치Virgil Widrich의 <빠른 영화Fast Film>(2003)이다. 대규모의 프로덕션 팀의 작업과 함께 35미리로 개봉된 빠른 영화는 모든 할리우드 장르에서 푸티지들을 병치한다. 밀러와 마찬가지로, 위드리치는 몸짓, 행동, 각각의 장르의 상황적 특징의 예들을 한 데 모으고, 클라 처럼, 콜라주의 요소들을 잘라 다른 이미지들과 함께 재조합된 이미지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테크닉적으로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결과적으로, 강조점은 필름 매체의 물질적 실체를 담보하는 것에서 대단한 기술과 재능이 합쳐진 위드리치가 만들어낸 필름 이미지의 환영적 실제로 바뀌게 된다. 빠른 영화의 생산방식은 헐리우드 방식과의 동등함을 아방가르드에 제공하고 필름 시나리오의 대결, 추적, 폭발, 해피엔딩 등은 헐리우드의 관습과 전형성에 도전한다기보다는 모방한다. 


비슷하게 피터 체르카스키Peter Tcherkassky의 35미리 시네마시코프 <외부공간 Outer Space>(1999)은 바바라 허쉬Barbara Hershey가 보이지 않는 악마적인 힘에 의해 공격당하는 젊은 엄마로 나오는 실체 The Entity 라는 1981년 공포영화의 이미지를 가지고 만들었다. 체르카스키는 빠르고 밀도 높은 편집, 이중 인화의 확장적 사용, 빛과 그림자의 진동, 포지와 네가의 반전들, 대화, 침묵, 왜곡된 울음, 사운드 효과를 배치시킨 사운드 트랙, 더욱 미학적인 차원에서는, 위험을 임박하게 만드는 친화성과 공포 영화 장르의 폭력적 특성을 실체화시킨다. 더욱 해체적인 정신 안에서, 체르카스키는 구멍의 이미지들과 편집 리듬에 대한 손상 없는 옵티컬 사운드트랙 그리고 영화의 시각적 긴장과 빠른 템포를 유지하게 하는 옵티컬 효과들을 포함하고 있다. 

리차드 커Richard Kerr의 <꼴라쥬 헐리우드collage d’hollywood>(2003)에서 템포는 심지어 더 빨라지고 시각적 강조는 더 강도 높아 진다. 빠른 불의 몽타주에서, 영화 트레일러에서 나온 이미지들은 다중 노출되고 우리의 의식을 기입할 수 있는 프레임들을 축소시킨다. 그들이 기입되고 우리가 그 기호들을 잡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시각적 자극에 재빨리 반응하는 그리고 시각적 관습에 친숙한 두뇌의 능력에 따른 것이다. 리차드 커는 조심스럽게 관련되고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배열한다. 로켓이 발사되고, 총이 발사되며, 여자는 고함을 지르고, 얼굴을 찌푸리는 악마, 공포 속에서 확장되는 눈들이다. 눈의 모티브는 전유된 헐리우드 이미지의 극적인 무절제로 향하는 자기 반영적인 제스처이고 우리에게 그러한 이미지를 제시하는 커가 배치한 시각적으로 도전적인 테크닉이다.

<콜라주 헐리우드>의 첫 번째 파트에 있는 과학 영화와 재난 영화의 트레일러들은 희생자와 폭력의 가해자로써의 여성을 담은 공포영화로 강조를 옮겨가고 궁극적으로 이미지의 지워지고 다시 덧입혀지는 진동의, 추상적 패턴들이 화학적으로 대체되어 푸티지들을 연속적으로 지각시킨다. 이 최종적 부분에 이르기까지, 트레일러(“실화에 기반한 이야기”, “천국과 지구는 충돌할 것 같다.”, “그러나 악마는 쉽게 죽지 않는다.” 등) 에서 온 시각적 텍스트들은 간성적으로 나타나고, 그를 통해 이미지들은 발작적인 웃음, 고함, 사이렌, 로켓의 사나운 소리들을 포함하는 오디오 콜라주를 동반하고, 지각할 수 없는 코멘트―영화의 처음에 나왔던 목소리 큰 남성의 “미래에, 테크놀로지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탐험할 수 있게 하고 우리가 결코 이전에 살아보지 못했던 우리의 방식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라는 한 가지는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다.”를 보여준다.

체르카스키Tscherkassky와 위드리치Widrich와 같이 커의 영화는 아방가르드 영화에서 드문 35미리 작업이다. 구조, 편집 리듬과 이미지의 선택적 복사, 축약되고 강조된 형태들, 할리우드 소스들의 전형성들을 보여준다. 할리우드 영화와 장르를 비판하는 대신에 커, 체르카스키, 위드리치는 할리우드가 허락하는 더욱 모험적인 테크닉들을 아방가르드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홀로, 삶은 앤디 하디를 소모한다Alone. Life Wastes Andy Hardy>(1998)에서 마틴 아놀드는 모험적인 테크닉으로써의 아방가르드의 요구에만 만족하지 않고 분석과 비판의 기이한 양식으로 할리우드 이미지를 주제화한다. 아놀드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항상 재현되지 않는 것, 재현되어 온 것 너머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흥미롭게 고려해야 할 가장 확실한 부분이다.” “무엇이 재현되지 않았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는 개별적인 프레임 단위로 푸티지를 부수고 두 프레임 선행, 한 프레임 후행의 복잡한 버전으로 그들을 다시 배치해서, 장면이 진행됨에 따라, 제스처와 표정들은 불가사의하고 긴장감 있는 경련이 되고 말들은 고뇌와 흥분에 찬 더듬거림이 된다. 심리분석적인 이론을 끌어오면서, 아놀드는 이는 “억압된 것이 그 자체로 주장되는” 경련과 말 더듬거림이며, 헐리우드 영화의 표면에서 “억압된 것”을 가져오는 영화적 등가물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테크닉이 순수한 미국의 아이들-미키 루니와 주디 칼란드라는 두 아이콘에 적용되었을 때, 가장 힘있게 등장하는 것은 성적인 욕망이다. 절정에 도달하면서 영화의 끝에서 루니와 갈란드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잇몸을 드러내고 헐떡거리는 야생동물처럼 서로를 맹렬히 비난한다. 

스타의 아우라를 급진적인 해체로 이끄는 데 있어 아놀드만큼 간 경우도 없을 것이다. 혹은 지금까지 논의된 할리우드 영화를 재활용하는 콜라주/몽타주라는 관점에서, 린다 크리스타넬Linda Christanell <무빙 픽쳐Moving Picture>(1995)에서의 바바라 스탠윅Barbara Stanwyck의 사진의 간섭적인 등장이 그보다 더할 수 있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젊고, 매력적이며 표정 없는 스탠윅의 사진은 때때로 필름의 많은 부분이 촬영된 창문 위에 비치는 필름메이커 자신의 얼굴의 반영같이 보인다. 다른 때 이것은 밖에 있는 누군가가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대부분 이것은 단순하게 사진이 스크린 위에서 자신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만 색 필터의 간섭과 강조에 의한 변화로 인해 얼굴이 영화의 분위기를 계속 바꾸는 것 같은 순간들을 제공한다. 크리스타넬은 흑백의 홍보 사진을 섬세하게 변화하는 인지와 다양한 의미들로 바꾼다. 환유적으로 할리우드의 지나간 시대를 언급하면서, 사진은 바바라 스탠윅 같은 스타를 만들어 낸 영화 산업과 무빙 픽쳐 Moving Picture 같은 영화를 만드는 개인적인 필름 메이킹 사이의 큰 간극의 외재적 환기를 만들어 낸다.


비슷하게 생산의 방법론에서 절제적인 것은 브루스 코너Bruce Conner <영화A Movie>(1958)이다. 이 영화는 아방가르드의 가장 많이 알려진 파운드 푸티지 영화일 것이다. 그의 첫 영화를 만들기 위해 코너는 가장 저렴하고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할리우드 영화, 뉴스 릴, 다큐멘터리와 카메라 상점에서 발견한 홈 무비들을 16미리 푸티지로 사용하였다. 코너가 자랄 때, 지역 영화 극장의 일반적인 프로그램은 만화, 뉴스 릴, 짧은 주제의 트레일러, 장편 영화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영화 A Movie 는 영화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포함하면서 (확장하자면, 대중문화 일반에 대한) 동시에 이러한 종류들의 영화에 대한 경험들을 자축한다. 코너는 영화의 끝에서 잠긴 배 속으로 사라지는 스쿠버 다이버의 거의 비극적인 이미지처럼, 유머의 감각으로부터의 부조리한 정지라는 섬세한 감각을 그의 파운드 푸티지에서 접근하고 있다. “의사-연결” 혹은 “충돌” 몽타주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러한 조심스럽게 컨트롤된 변주들을 조직하면서, 영화A Movie는 우리를 파운드 푸티지 필름 메이킹의 기본으로 이끈다. 

더불어, 코너가 말하는 방법론의 가난함(“나는 작업 프린트도, 싱크로나이저도 무비올라도 사운드 리더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은 할리우드와 아방가르드 사이의 전통적인 분리를 보여준다. 그러한 분리는 <빠른 영화Fast Film>, <외부 공간Outer Space>, <콜라주 할리우드collage d’Hollywood> 같은 더 복잡한 테크닉과 더 많은 제작비를 소요한 영화들에서는 덜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러한 영화들이 할리우드 필름에 비판적이기 보다 더 가깝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테크닉적인 기술과 큰 제작비라는 점일 것이다. 전복의 가능성은 파운드 푸티지의 재활용에 의해 제공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온 푸티지를 포함하여 “대중문화의 잔해들”을 기 드보르Guy Debord가 얘기한 “스펙터클의 사회”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있지만, 콜라주/몽타주는 대량 미디어 마케팅의 후기 모더니즘 문법에 흡수되어 왔고, 그러한 점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은 파운드 푸티지를 병치함으로써 비판적이고 전복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 새로움을 보여주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은 할리우드와 아방가르드 영화의 계속적인 그리고 불화적인 관계에 기여하고 있다.


1. Peter Bürger, Theory of the Avant-Garde, trans. Michael Shaw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4), p. 77.

2. Ibid., p. 78.

3. Christine Poggi, In Defiance of Painting: Cubism, Futurism, and the Invention of Collag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2), p. 111.

4. Sergei Eisenstein, “The Cinematographic Principle and the Ideogram,” in Film Form, ed. and trans. Jay Leyda (New York: Meridian Books, Harcourt, Brace and Co., 1957), p. 37.

5. 필름은 “사과, 문두드리는 사람, 그리고 콜라 병”이라는 타이틀로 변주되고 분기되면서, 먼로를 Arline Hunter 처럼 보이게 했다. (그녀의 가슴과 콜라 병을 들고 있는 모습 사이에 헌터가 들어 있는 롤을 편집해서)

6. Bruce Conner, quoted in Scott MacDonald, A Critical Cinema: Interviews with Independent Filmmaker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8), p. 253.

7. Martin Arnold, quoted in Scott MacDonald, A Critical Cinema 3: Interviews with Independent Filmmaker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p. 354.

8. Ibid.,p.362

9. “스펙터클의 사회는 이미지의 집합체가 아니라, 이미지가 중재하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이다” (Guy Debord, Society of the Spectacle [Detroit: Black and Red, 1983], n.p.; originally published in French in 1967 by Editions Buchet-Chastel [Paris]).

HANGJU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