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레(Nicolas Ley)와의 인터뷰 / by EXiS

라보미나블(L’Abominable)은 ‘예술가들의 영화 랩’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의 영화 랩이란 무엇입니까?

후반-작업을 담당할 목적을 갖고서, 필름을 가지고 작업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경영되는 구조를 ‘예술가들의 영화 랩’(영어로는 ‘예술가-경영 영화 랩 artist-run film lab’)<Laboratoire cinématographique d'artistes>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12여년간, 프랑스와 프랑스 주변국들(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영국)에는 (현상용 릴과 게수대만을 갖춘) 가장 소박한 수준에서부터 전문 현상소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곳에 이르기까지, 이런 종류의 많은 경험들이 생겨났습니다.

라보미나블이 지금의 형태로 정착할 때까지 당신의 역할(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이 매우 중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집단적’ 형태의 영화 랩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라보미나블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라보미나블l’Abominable은 10명으로 이뤄진 그룹(엠마누엘 카르퀴이유Emmanuel Carquille, 드니 슈발리에Denis Chevalier, 핍 쵸도로프Pip Chodorov, 안느-마리 코르뉘Anne-Marie Cornu, 안느 파브Anne Fave, 제프 게스Jeff Guess, 미구엘 몽Miguel Mont, 이브 펠리시에Yves Pélissier, 로르 생트-로즈Laure Sainte-Rose, 그리고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그룹은 이전에 1994년부터 1995년까지 그르노블의 MTK 아뜰리에에서 일을 했었고, 그들에게 받았던 환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MTK 아뜰리에에 금새 수요가 넘쳐났기 때문에, 그곳을 맡고 있던 예술가들은 다양한 사용자들을 모으고 나서, 그들이 만나고, 서로 돕고, 프랑스와 유럽에 있는 그들의 출신 도시에 랩을 만들도록 유도했습니다. 간혹 당시까지 서로 모르고 있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우리 파리(Paris) 그룹은 그 자체로 ‘개방적’이고, 설립자들에 제한되지 않고 신규 회원들을 정기적으로 받아들이는 아뜰리에를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라보미나블이나 예술가들의 영화 랩들의 형태, 조직 등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회원들은 먼저 하루 동안 가입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그 신입 회원에게 여러 기술 정보를 전달하고, 회원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그 회원의 작업 계획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회원들은 랩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어떻게 스스로 조직되어야 하는지 구상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이러한 가입식은 대략 세 달에 한 번 꼴로 열리고 있고, 매년 30에서 40명 정도의 사람이 들어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개인적으로 자신들의 계획을 위해 작업하러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쓸 수 있는 상이한 도구들에 대해 자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가령 슈퍼 8mm, 16mm, 35mm 릴 현상, 광학 인화, 밀착 인화 등. 단 하루에서부터 몇 주 간에 이르는, 우리 랩의 일정을 거쳐, 매년 대략 20여 개의 프로젝트가 완성됩니다. 

분명 랩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아주 다양할 것 같은데요, 그들 간의 집단 프로젝트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나요?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도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집단적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집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회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미학적인 문제의 경우, 랩은 초창기부터 어떤 특별한 미학을 특권화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심지어 ‘실험 영화’라 불릴 수 있는 것조차 말이죠. 대신 우리는 우리의 작동 규칙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고자 했습니다. 특히 기본적인 규칙은 우리가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 그 자신의 작업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첫째, 우리가 랩에서 기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작업의 형태 자체가 미학의 한 부분입니다. 둘째, 10년이 지나니, 같은 장소에서 일해온 어떤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의 작업을 옹호해주고, 공통의 프로젝트를 만들게 됩니다.

라보미나블의 영화 랩이 문을 연 후, 필름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이미지 산업이 은입자 필름을 포기함에 따라 [산업에서] 예술가 쪽으로 영화 도구들의 소유주가 바뀌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필름 메이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기나 화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테크니션입니다. 라보미나블의 여러 가지  필름작업을 위한 조건들이 당신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당신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독자들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위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 영화 <소비에트들 플러스 전기(Les soviets plus l’électricité)>에 있습니다!

당신의 96년 작품인 'Terminus for you'는 필름이멀젼의 화학반응을 창의적 이미지 생산의 도구로 활용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필름의 불안정성 때문에 상업랩에서 작업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작업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그것은 레티큘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사진 이멀젼의 부족을 말하는 것인데, 필름제조자들은 흔히 그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대비합니다. 그 부족 현상은 필름 트리트먼트 동안 온도가 갑작스레 변화할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일단 현상된 쁠랑들을 놓을 수 있도록 아주 얇고 긴 현상통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놓여진 쁠랑들이 쉽게 반응할 수 있도록 탄산 나트륨을 넣은 따뜻한 물을 가지고 반응을 시킵니다. 이어서,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꺼내고는 이멀젼이 필름 바깥으로 완전히 미끄러지기 전에 그것들을 말려야 합니다. 그 후에 인화 과정을 거쳐 필름 복사본을 만들죠. 

제가 본작품이 'Terminus for you' 와 'schuss!' 밖에 없지만 당신의 관심사가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느껴졌습니다.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든 재구성이든 당신의 작업에서 ‘이미지’가 주는 힘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다시 랩과 연결점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신의 작업에 있어서 랩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그 영화의 편집 자체가 보여주듯, 나는 먼저 겨울 스포츠 휴양지에서 영상과 음성을 촬영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학적 측면 말고, 이 장소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시간과 공간 안에서, 겨울 스포츠 휴양지를 가지고 만들던 영상과 음상을 통해 나타난 쟁점들이 많은 부분 철지난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자, 당신이 방금 말한 것들로서의 요소들을 거기에 체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러한 점진적인 확장으로 인해 그 영화가 더 이상 다큐멘터리가 아니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큐멘터리는 필연적으로 한정된 주제만을 ‘다루며’, [그 주제에 있어서] 무한하게 열려 있을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 영화는 촬영된 요소들로부터 16mm요소들을 제조하기 위해 편집 테이블, 촬영 장소, 광학적인 인화기 사이를 여러번 왕복함으로써 만들어졌습니다. 예술가들의 영화 랩에서의 작업은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구요. 

2001년에 만들어진 Les Soviets plus l’électricité는 Soviet Super 8 film stock로 촬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작품인지요? 

그 영화는 이전에 소련이었던 공간을, 스탈린 강제 수용소의 간판 도시였던 마가단(Magadan)에 이르기까지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것입니다. 영화는 소련제 슈퍼-8mm인 스페마(Svema)로 여행 내내 촬영한 것들과 매일 매일 녹음한 육성 일기의 단편들을 본질적으로 암시하는 음향 사이의 간극의 놀이로 이루어집니다. 두 재료의 시간성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나는 찍을 수 없거나 찍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에 대해 길게 말할 수 있고, 정반대로 굳이 논평할 필요가 없는 무언가에 대해 시각적으로 시간을 끌 수도 있습니다), 음향과 영상이 ‘동일한 곳에’ 있게 되는 특별한 몇몇 순간을 논외로 하더라도, 사람들은 [스크린에서] 보았던 것에 대해 [뒤늦게] 말하는 것을 듣거나, 혹은 이후에 보게 될 것에 대해 [미리]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내가 보기에 이 간극에 대한 감각은 여행객의 느낌과 비슷하며, 나는 이것을 ‘영화여행(cinévoyage)’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시간의 잃어버림(perte du temps)’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가장 신화적인 측면 속에서, 서구에서 소련의 경험이 의미했던 것을 찾기 위해 이 광활한 공간을 횡단합니다. 

산업적인 이유로 코닥에서 생산을 중단하거나,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필름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우리는 영화 산업의 절정기 당시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가 랩이란 현재의 조건들 속에서 생산하기 위해 조직화하는 방식입니다. 

 촬영할 때 선호하는 카메라가 있습니까?

  워커 에반스라는 사진가는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곤 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 중 가장 무거운 것."

필름 매체가 현재에도 유효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보기에, 영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주 강력한 20세기의 중요한 세 가지 기술인 기계 공학, 광학, 화학의 결합이며, 이 덕분에 영화는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우리에게 여전히 알려줄 수 있습니다.

 

* 이 인터뷰는 2006년 가을에 진행되었다. 나방에 실린 원고는 당시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현상소에 무게를 두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편집되었다. 니콜라스 레이에 관한 최근의 작품 활동과 관련된 인터뷰는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인터뷰 진행 | 이행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