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의 소묘素描에 대한 노트

브루스 엘더 Bruce Elder

요나스 메카스는 오늘날 예술 세계에서 전설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지금도 영화 예술의 전도사이며 영화 제작자이며 그가 존경하는 영화를 무료로 홍보하는 전시 기획자이며 잡지 편집자, 저널리스트이고 기금을 조성하며 필름 아카이브Film Archive를 구축하고 영화 평론가이며, 자서전 작가이고 시인이며 프로그래머이고 그리고 그 모든 타이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 작가이다. 누군가는 그가 참여한 수 많은 다른 예술적 실천들 때문에 영화 작가로서 그의 발전이 축소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기준에 의해서 메카스는 가장 훌륭한 영화 작가들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메카스는 현재 뉴욕 브룩클린에서 살고 있고 로워 맨하튼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 메카스는 192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리투아니아 세미니쯔키아지Seminikiaj(2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가축을 지키고 들판에서 일하면서 가족 농장에서 보냈다. 그는 1936년에 공립학교를 졸업했고 근처 마을에서 건축 인부가 되었고, 여기서 그는 처음 영화를 보았다. 또한 그때 열네 살의 나이에 그는 첫 시 모음집을 출간했다. 그는 1938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학교 담당자는 그가 저학년에 입학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서 그의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는 낙담해서 1939년에서 40년에 걸친 겨울과 봄을 뒤쳐진 것을 따라잡기 위해 보냈고, 김나지움에서 6학년에 입학하도록 허가하는 시험을 통과했다.(그래서 5학년을 건너 뛰었다) 이 사건은 구소련이 리투아니아를 합병했을 때에 발생했다. 이 합병은 그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우유와 빵만 먹고 살았다는 걸 의미한다. 2년 후 독일 군대가 소련을 축출했고 결과적으로 요나스는 저널리즘에 종사했고 비르챠이에서 그의 3살 어린 동생 아돌파스Adolfas Mekas와 첫 드라마 극장을 조직했고 연기를 공부했으며 시를 나눠주면서 여행했다.

1944년 독일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한 후에 요나스와 아돌퍼스는 나치와 소비에트 모두에게 비판적이었던 동료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위해 타자기로 쓴 인쇄물을 만들었다. 그 젊은 무정부주의자 시인은 스탈린에 반대하는 노래를 만들었고, 그와 그의 무정부주의자 친구들은 종종 그 노래를 불렀다. 그는 독일 비밀경찰이 이 인쇄물들의 출처를 밝혀냈다는 것을 들었고 그가 『나는 갈 곳이 어디에도 없다I Had Nowhere To Go』에서 그의 비범한 슬픈 기억들을 자세히 설명한 것처럼, 그 젊은 무정부주의자 시인은 아돌파스(그 역시 지금 영화 작가이고 바드 칼리지Bard College교수이다)와 함께 도피하였다. 메카스는 제리 톨머Jerry Tallmer에게 독일인들이 1944년에 세미니쯔키아지에 있는 메카스의 농가에 도착했을 때 그가 어떻게 창문을 넘어서 감자 밭으로 도망쳤는지 설명했다. 그가 뒤돌아 흘끗 바라보았을 때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의 아버지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한 독일인이 그의 등에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6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를 지탱하도록 도와주고 그의 시와 영화들에 영감을 제공해준 자연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는 톨머에게 “당신은 그와 같은 경험을 잊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의 아버지의 등에 총이 겨눠져 있다는 것을 알자 감자 밭에 얼굴을 묻었는데 모두 활짝 피어, 흰 꽃 송이가 어디에나 있었어요. 나는 여전히 그 순간의 모든 냄새와 모든 색깔의 강도를 기억합니다.


그와 그의 동생 아돌퍼스는 요나스가 대학 입학으로 고려했던 도시인 비엔나Vienna로 도피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희망대로 되지 않았는데 그들의 계획은 독일군 경찰이 그 기차를 붙잡고 방향을 함부르크Hamburg로 돌려서 좌절되었고, 마침내 그 둘은 체포되어 1945년까지 처음에는 함부르크 교외의 엘름스혼에 있는 강제 노역장에 있었고 이후에는 플렌스부르크에 있는 부역 농장에 있었다. 전쟁 후에 카셀과 비스바덴에 있는 추방된 사람들을 위한 캠프들에서 살면서 1946년부터 48년까지 마인츠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뿐만 아니라 동료 캠프 거주자가 그에게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Stanislavski's system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메카스는 그 동안 내내 캠프 신문과 리투아니아인 망명자들을 위한 문학 잡지를 편집하면서 계속해서 썼고 그리고 튀빙겐에서 『왕들과 민중에 관한 책A Book about Kings and People』이란 제목의 산문시집 한 권을 내었다. 그 이듬해인 1948년 단편집에서 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의 시들을 묶은 책 『세미니쯔키아지의 전원시Idylls of Seminikiaj』가 나왔다. 세미니쯔키아지의 전원시는 시골에서 계절 변화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농사에 관련된 행동들과 공동체적 생활과 탈출이란 주체의 시작 그리고 메카스의 작품을 특징짓는 고향에 대한 동경을 그린 목가적 시의 시리즈이다. 이 작품은 긴 행들과 마을에서 그의 유년시절을 묘사하는 서사시적 속도로 되어 있다. 그는 마을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사계절 동안 그들의 다양한 활동들을 시적인 리투아니아어로 받아들여지기를 회피하면서 가능한 한 사실적이고 산문적으로 묘사하였다. 그가 스캇 맥도날드에게 말한 것처럼 그는 다큐멘터리 시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그 다음해 그 형제들은 슈바비치 그문트로 이송되었다. 그들은 거기서 미국으로 떠났다. 그들은 1949년 10월 29일에 도착했다. 캠프에서 그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처음 경험했다. 브라이언 프라이Brian Fry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나는 보았습니다 영화를, 나는 그 영화가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n 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에 그 영화는 <수색자The Search>(1948)인데 전쟁 직후에 만들어진 추방당한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내 동생과 보았고 우리는 이 영화가 얼마나 실제 상황을, 추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 한지에 대해 분노했어요. 우리는 분노했고 스크립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화들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때에요. 거기서 시작된거죠. 그러나 우리가 뉴욕에 도착하지 전까지는 영화 만들기를 실제로 시작할 수는 없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추방당한 사람들의 캠프에서 돈을 벌 방법도, 카메라 혹은 필름, 그 어떤 것이든 구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뉴욕에 도착했을 하기 전까지 우리는 진정 좋은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우리가 뉴욕에 도착한 49년 후반까지 그렇지 못했는데 뉴욕에 도착하고서 우리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갔고 모든 다양한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도착한 그 다음 주에 실제로 볼렉스를 빌렸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어요.

Reminiscences of a Journey to Lithuania (1972) by Jonas Mekas

메카스는 스콧 맥도날드Scott Macdonald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공짜로 보여주는 많은 영화들을 봤고 그와 아돌파스는 때로 시내로 나가서 전후 독일 영화들을 봤다. 이후에 그들이 프랑스 영토이었던 (그 둘은 비스바덴에서 통학했다) 마인츠 대학Johannes Gutenberg-Universität Mainz에서 송부하기 위해 떠났고 그 두 형제는 많은 프랑스 영화들을 봤다. 그러나 그들이 흥미를 가장 느꼈던 작품은 프랑스 작품이 아니라 전후, 신사실주의 독일 영화(두 사람이 살아온 삶을 고려하면 아주 이상한 일이지만)였다. 그들은 헬무트 카우트너Helmut Kautner, 요제프 폰 바키Josef von Báky, 리벤아이너 Liebeneiner 등의 영화들을 몰랐다. 그는 독일 영화들이 그를 매료했던 이유를 분석했다. 그들이 전후 독일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 장소들에서 촬영하는 것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현실은 여전히 주변에 널려 있었다. 이야기들은 허구적이고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각적 질감은 전후 이탈리아 영화들에서처럼 칙칙한 현실이었다. 메카스는 언제나 현실을 향해 기대왔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우연히 하이델베르그에서 그 책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 채 여러 가능성들에 관하여 그를 매우 흥분시켰던 영화 이론에 관한 책을 구입하였다. 미국에 도착한 첫 주에 요나스는 프세폴로트 푸도프킨Vsevolod Pudovkin 과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의 글을 읽었다(그들의 글은 메카스의 현실주의적 경향을 강화시켰다). 그는 스콧 맥도날드에게 그리어슨Grierson과 로사Rotha의 글을 접했으며 30년대와 40년대의 영국과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을 봤다고 말했다(그는 이후에 그들의 영향이 그의 소박한 경향들에서 멀어져 우회하게 만들었다고 느끼지만). 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를 배 위에서 읽었다. 그 작품의 직접성과 단순성은 메카스가 받아들인 미덕들이었다(그리고 헤밍웨이는 요나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 중의 한 명으로 남아있다).

메카스와 그의 동생은 뉴욕 브룩클린의 윌리엄스버그에 거주하였다-혹은 그가 브라이언 프라이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이주에 대해 설명한 대로: “미국 난민 기구에서 그들이 독일 캠프에 격리시켰던 사람들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나를 여기에다 버렸습니다…… 나는 이민자가 아닙니다. 나는 여기에 데려져 왔고 그리고 여기에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는 리투아니아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나의 어머니가 나중에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습니다. “소련 비밀 경찰은 일년 동안 내 집에서 멀지 않은 덤불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카스 형제에게 미국 생활은 고달팠다. 그러나 그가 도착한 후  2주가 지나서 그는 그의 첫 볼렉스 16mm 카메라를 구입할 돈을 빌렸고 그의 삶의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949년 후반 그들이 도착했을 때 그 형제들이 쓴 첫 대본은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Lost, Lost, Lost>라고 불리는 영화를 위한 것인데, 그 영화는 격리된 사람들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일상을 연대기로 기록하려는 분명한 욕망이 그의 시에 기본이 되고 메카스의 일련의 영화 작품의 대부분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1975년 영화,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의 시작에서 몇 개의 쇼트들은 그리움과 추방의 초기 기록 푸티지에서 비롯된다. 군인의 슬로우 모션 쇼트, 그리고 신문을 읽는 가족, 스케이트를 타는, 센트럴 파크의 한 그루의 나무의 쇼트들이 포함된.) 그러나 지금 메카스는 일상을 정치적인 것으로 본다. 메카스 형제가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를 찍고자 한 목적은 몇 가지 사실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같은 발탄 국가들이 서방에 의해 전쟁 직후의 얄타 회담에서 소련에 희생되었고 우리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식민국가로 끝나버렸다. 우리는 서방이 배신한 발탄반도의 세 나라를 위한 태도를 취한다” 그 영화는 아돌파스가 징집된 후에 완성되지 못 한 채로 남겨졌다. 요나스는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특히 뉴욕, 시카고, 토론토, 필라델피아, 보스톤에 추방당한 사람들의 활동을 기록했다. 브룩클린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의 모든 돈을 영화에 썼고, 그는 어떤 명료한 계획이나 목적 없이 이러한 현실을 연대기로 남겼다. 그때 그는 혼자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였고, 그가 만든 작품은 어떤 운동이나 집단 그 어떤 커뮤니티에 조차도 속하지 않았다. 


예술과 삶의 완벽한 부합은 표면적으로는 자서전적 기록에 의해 보장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의 발어법이 표현하는 주제의 부적절함에 의해 방해 받는다. 영화작가의 주체성이 갖는 무상한 상태를 드러내는 유일한 희망은 자서전적 기록의 주제 대신에 어법의 행위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작가의 유일한 힘은 현실 세계에서 대상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주제가 가진 힘을 끌어내는 자신만의 대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카메라 조작, 빛의 사용 또는 색채의 질감을 표현해 내는 예술가의 감정적 상태에 관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들은 근본적으로 투사하는 방법들이며 다른 영화작가들 역시 찰스 올슨Charles Olson의 투사시 이론The poetics of projective에 매력을 느껴왔다. 영화작가들에게 특별히 올슨의 투사시 이론을 적용하게 하는 것은 사실 영화에서는 말하고 있는 주제가 결코 발어법이 표상하는 주제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불가능성은 진술하는 행위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을 필요로 하게한다. 발화 행위 자체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은 자아의 여러 면모를 전달하는 수단인 발어법 자체를 쉽게 표상할 수 없는 매체인 영화에 방법론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런 존재은 다만  중심에 “나”의 부재만을 강조한다.

그리고 여기 존재와 부재의 다른 조합이 있다. 부재하는 주제의 표상은 표상의 공식화에 의해 가시화된다. 존재와 부재의 혼합은 메카스 영화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지각과 기억, 실재와 이상, 예술가가 갈망하는 사실과 경험했던 사실의 상호작용이 그의 영화에 반영된다. 

다만 이미지만이 순수한 현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는 기억으로 덧 씌워진 지각으로 채워지고, 기억에 의해 재구성된다. 메카스가 갈망하는 경험의 형식으로 날 것의 직접성으로 이해된 이미지의 연출은 때때로 효과적이지만 오직 무상할 뿐이다. 메카스의 영화는 기억에 의한 이미지의 재-구성과 재-구축은 편집으로 시작되지 않고 다만 거기서 결론지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이 기억에 의한 재-구축은 경험 그 자체로 바로 시작된다. 지각은 다만 가끔 기억의 수중에서 벗어나는데, 기억을 구조화하는 과정은 거의 항상 지각 그 자체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메카스는 지각속의 기억의 내재성을 강조한다. 그는 <리투아니아 여행의 추억>에 대한 강연에서 이 점을 말했는데,  

제 생각에 내 영화 일기에서...나는 다소, 사건이 발생하는 그대로, 삶을 담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전혀 다른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필름에 담아둘 때, 난 반영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오직 실재 현실에만 반응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실재는 전혀 통제 되지 않고 모든 것은 기억에 의해, 내 과거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이런 “직접적”인 기록은 또한 반성의 양태인 것이다.

그래서 <월든 : 다이어리, 노트 그리고 스케치>에서 뉴욕의 이미지는 세미니쯔키아지의 이미지에 의해 형성되고, 센트럴 파크의 이미지는 가까운 들판의 이미지로 뉴욕의 예술가들의 공동체는 그의 고향 마을의 공동체를 반영한다. 개개의 이미지 자체가 드러내는 것에 결부되는 부재 역시, 사실 의미는 이미지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메카스는 이 점을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에서 강조한다. “모든 것은 정상적이다, 모든 것은 정상적이다. 다만, 당신은 뉴욕에서 한 밤중에 나와 같은 난민이 하는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경험한 것과 그것이 표현하는 것 사이에는 무서운 배반이 존재한다.

표현과 경험에 있어 순수한 직접성은 불가능하다. 본문의 과잉된 형식이 제안하는 표면적으로 크나 큰 이질성이 드러나는 메카스의 일기 영화의 광범위한 시선은, 자아와 실재를 통합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아-표현의 간결한 태도(이는 이질성의 폭을 넓힌다)로 인해 예술과 삶의 독본 자체를 통합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지엽적이고 국지적인, 일상적인 실재의 단호한 현존은 부재와 긴장하며 존재한다. 이 부재는 이미지에 영혼을 불어 넣거나 적어도 어떤 이상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이 완전히 실패하는데서 발생한다. 메카스는 충돌하는 시각을 놀랄만한 깊이로 접근한다.

더 최근 작인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에는 친구들, 가족 그리고 아이들의 초상이 포함되어 있지만, 아마도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눈, 빗방울, 강렬한 태양과 같은 뉴욕의 자연이다. 태양, 열기, 자연현상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지배하는 듯하다. 우리는 뉴욕의 거리에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걸 본다. 우리는 나른한 여름 공원이나 해안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친밀한 장면, 사랑스런, 결혼, 두 아이들의 탄생과 그들이 자라는 광경을 본다. 이미지의 흐름이 주는 효과는 모든 이미지들은 동일하게 직접적이고, 이러한 개별 대상이 동등하게 현재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현재 순간에 삶의 기쁨을, 황홀한 현재의 삶을(‘여름의 황홀감과 뉴욕에 살아가는 것’이라는 삽입 자막에 드러난)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는 이 십년이 넘는 시간(대략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을 다룬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이 영화가 지나가 버린 현재를 되새기는 일기의 구성이라는 걸 알게 된다. 

기억 속에서 메카스는 호즈 장군이라 불리는 배 갑판에서 뉴욕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난 여전히 내 눈속에 남아 있는 기억으로 바라본다.” 그의 회고록의 대부분은 전쟁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난민이 된 외로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고국으로부터 추방당해 연합군에 의해 뉴욕에 정착하고 그는 새로운 삶에 부딪히며 모든 순간을 기록하였다. 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남아, 썩어가는 영혼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왔던 상상에 찬 인물로 가득했던 자유의 나라, 새로운 조국을 발견했다. 그들과 함께, 그는 스스로 집을 만들었다. 메카스의 놀라운 “100주년 반대 영화 선언문”에서 그는 다음말로 맺는다.

“진정한 영화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역사이다. 함께 모이고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실행한 친구들의 역사. 우리에게 영화는 모든 영사기의 소음들로 시작된다. 하나 하나의 우리들의 카메라의 새로운 재잘거림과 함께, 우리의 마음은 내 친구들에게 달려간다.” 

EX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