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튼 피어스: 마스터 미니어쳐리스트 Leighton Pierce: Master Miniaturist

존 조스트

리튼 피어스는 1979년부터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작품 활동을 전개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중서부의 불모지가 안겨주는 삭막함 외에는 상상할 바 없던 아이오와 주의 문화적 지형을 새롭게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리튼 피어스의 작품들이 뉴욕에서 상영되자 리튼 피어스는 오랜 기간 영화를 만들어 온 내서니엘 도어스키Nathaniel Dorsky, 피터 허튼Peter Hutton과 더불어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간 리튼 피어스가 세간에 알려 지지 못했던 것은 그의 활동 기반이 문화적 중심지인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과 동떨어진 중서부 내륙 지대였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도대체 아이오와에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아이오와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라곤 옥수수와 돼지들뿐인 것을. 또한 그의 작품들이 작금의 예술계와 학계가 선호할 만한 조류와도 일정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특정 이론적 틀이나 유행에 부합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거기에 리튼 피어스가 아이오와 출신이라는 점이 더해져 그의 진출에는 만만치 않은 장애들이 놓여 있었다.

그가 선보여온 작품들은 정적이고 길이도 짧다는 점에서 4시간에서 6시간을 육박하는 러닝타임이나, 남장여자나 여장남자가 등장하는 시끌벅적한 스토리, 혹은 유명배우가 깜짝 출연하는 등의 화젯거리가 될 만한 어떠한 요소도 없지만 일단 그 작품을 접하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깊이가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피어스는 영상 예술가로서 최고의 수준에 다다른 장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를 피어스 조차도 과찬이라 여길 수 있겠지만 그의 작품은 이러한 평가가 합당함을 증명한다. 피어스는 1979년부터 34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미니어쳐리스트이다. 물론 그를 폄훼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칭하는 게 아니다. 그는 매번 한정된 범위 내에서 완벽한 수준으로 정제된 작품을 제작한다. 이러한 면모는 그를 주저 없이 미니어쳐리스트라 칭하게 만든다. 그의 첫 작품은 16mm카메라로 제작된 것으로(비디오로 촬영한 분량도 섞여 있지만), 피어스의 구조주의자적인 특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물론 구조주의는 그 당시 미학적으로 대세였다. 그러나 구조주의적 흐름 내에서 무기력한 작품들을 생산하는데 그친 여타 작가들과 달리 리튼의 구조주의적 감성은 음악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리튼은 음악이나 시를 구성하는 유기체적인 결합과 배열, 리듬, 모티프와 순환과 같은 것에 천착했던 것이다. 분명 아카데믹한 시도와는 거리가 있다. 작품들은 으레 작가와 밀착된 삶에서 배태된다. 다른 훌륭한 예술가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매체에 충실하여 이러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리튼의 영상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유년시절’이라는 주제의 변주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접하는 관객은 그가 펼쳐내는 유년시절로의 시간적 도약을 체험하게 된다. 리튼 작품의 이러한 주제는 리튼의 작품속에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데, 특히 크레딧에 배우 이름으로 명시되지 않고 그저 “고마운 사람들”에 속해 있던 한 아기의 얼굴이 등장하는 1991년도작 <조화로운 행동의 법칙 Principle of Harmonic Action>에서 부터 그의 유년시절에 대한 천착이 감지된 바 있다. 위의 작품은 어떻게 보면 리듬과 포커스 풀 focus pull 효과, 그리고 영화적 시간과 시각현상에 대한 철저한 탐색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형식이 아닌 ‘보여지는 것’에 충실히 따르다 보면 관객들은 이 작품이 아기가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고 인지하기 시작하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의 빛, 흐릿한 윤곽이 영상과 사운드의 반복으로 제시된다. 나뭇잎과 가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흐리게 하는 것이 반복된다. 이반복은 단순한 기계적인 리듬에 따르지 않고 마치 무언가 의미를 찾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면서 벽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처음에 추상적인 문양을 만들어내다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낸다. 아이가 감지하는 것을 리튼 역시 감지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관객을 이끌어 가고, 이는 일종의 배움의 과정이다. 우리는 사물과 세계를 보기 시작하고 그것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아이의 시각에서 세계를 보는 것은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물까지도 마법에 가까운 경이의 감각으로 포착하여 이 모든 현실을 신비로운 삶으로, 아름다움으로, 심오한 본질로 변모시킨다. 또한 예술가 특유의 사려 깊고 시적인 방식으로, 사물이 그 본질을 스스로 드러내게 끔하는 비범한 절제를 통해 이 모든 것의 구현이 완성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유년시절로 회귀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자각을 경험케 되는 것이다. 이후의 리튼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식으로 아이들이 출현하고 리튼이 새롭게 조형해 낸 시각이 제시된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가장 심원한 차원의 탐구를 진행하며(후에는 디지털 매체의 가능성을 최전선까지 탐색하며) 피어스는 자신이 탐구한 복잡한 내용물들을 드러내는 대신, 가장 근원적이고 정서적으로 파장을 불러 일으킬 만한 것들을 직접적으로 표현해 낸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이들의 정신세계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 유년 시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을 만끽할 수 있도록, 영상을 구조화하여 전달하는 덕이다. 

<Principles of Harmonic Motion>(1991, 22mins, video)

나는 리튼이 지각 수용능력의 극단까지 밀고가 발휘하는 섬세함과 그가 영상매체를 다루는 능력, 그리고 매체의 특성과 대조되는 모든 것-순수함, 모든 사물을 경이로운 감정으로 흡수하는 유아기와 유아기 아이들의 개방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구현하는 능력간의 내적인 긴장이 그가 의도한 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생동감 있는 재현이 가능해지도록,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이루어 질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적 긴장안에 바로 피어스의 저력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내적 충돌이 필름(이제는 디지털) 매체의 성격에 대한 고심 끝에 얻게 된 그 매체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감성을 추동하고,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경이의 감각을 회복하도록 일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어스의 이러한 재현방식이 예술적인 조직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영상은 아이가 보고 배우는 과정 그 자체는 결코 아니다. 차라리 각별한 재능과 절제력을 지닌 예술가의 방식으로 아이가 보는 행위를 통해 접하고 배우는 것들을 모방하고 제시한 것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한 말일게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작가의 경험과 기술 그리고 고집스런 자기 부정 덕분에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순수한 재현을 성취해낸다. 그리하여 나는 기술적인 요소와 이해력을 조합해 내는 피어스의 작품이 가장 높은 차원의 예술로 비약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이러한 자질은 화가 베르메르나 카라바지오, 파올로우 첼로의 전쟁화나 렘브란트의 자화상들,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에서 발견되는 종류의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결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최신 사조의 수혜를 과시하는 작품이나-우리는 오늘날 이미 수 많은 비엔날레에서 예술계에 만연한 시시껄렁한 하찮음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혹은 예술전문지의 난해한 이론적 가설들에 적용될리 만무하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하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칭송할 수 있다. 


<유리컵Glass>

집의 뒷마당에서 촬영된 단 하나의 쇼트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분무기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고, 아이들은 그네를 탄다. 포커스 풀과 디졸브를 활용한 시퀀스를 통해 피어스는 유년기 여름의 냄새와 소리, 나른한 즐거움을 펼쳐낸다. 그의 작품들 대부분이 말로 표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피어스가 성취하는 시각적 구현의 내공이 워낙 깊어 특정 용어를 사용해 그의 영상을 설명하는 것은 작품을 난자하는 것에 다름없는 행위가 되어 버리는 탓이다. 그렇다. 실로 그의 작품은 기술적으로 탁월하다. 그렇다고 피어스의 영상을 노련한 테크니션의 작품이라 평가하는 것은 작품의 실제 가치를 드러내는데 오히려 방해요소가 되어 버린다. 여름날 오후의 몽롱하고 가물거리는 순간이 그네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분사되는 물과 아지랑이가 유리컵에 굴절되어 포착된다. 피어스의 지각을 통해 이루어진 굴절속에서 유년기의 정수가 시적으로 응축되어 표현된 것 이라 할 수 있다.

<Glass>(1998, 7mins, 16mm)
A not-so-still life in the backyard with children, water, fire and a few other basic elements. While the ultimate effect is poetic and transformative, it is simultaneously a study in the laws of optics - an exploration of refraction, diffraction, diffusion, reflection and absorption. "A window pane is a paradox of sorts, as it unifies two opposing functions. On the one hand it separates the 'inside' from the 'outside' while the two spaces still remain visually connected. Glass, like water, can also flow, and both substances also share the qualities of transparency, refraction, and reflection. It is in this last quality that 'inside' and 'outside' can merge into one image. The accompanying crystal clear soundtrack, which ranges from a groaning swing to a crackling fire, very effectively contrasts the diffuse qualities of GLASS." - from the Impakt Festival Catalogue 1998, Utrecht, The Netherlands


<뒷걸음질The Back Steps>

중서부 마을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집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몇 걸음 뒤에서, 혹은 부감으로 핸드 헬드 기법을 사용해 포착한 작품이다. 아이들은 할로윈 의상을 차려입고 있다. 처음에는 풍부한 색감이 가물거려서 실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이는데 마치 움직이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 움직이는 상들이 자리에 앉았다가는 구조주의적 방식으로 위로 상승했다 하강했다 앉기 위해 뒤로 물러서는 움직임을 선보이고 끝내는 희미해진다. 영상은 흐릿해졌다 선명해지길 반복하고 숨겨진 나름의 복잡한 질서로 이 반복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5분후 카메라가 후진하여 상에서 멀어지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아이들이 다른 이들이 있는 파티 장으로 가는 것을 카메라가 멀리 좇은 것이다. 피어스는 잠시의 혼란스런 시간으로부터 경이와 긴장, 열망, 아름다움 그리고 이외의 다른 감정들까지도 이끌어낸다. 이러한 놀라운 응축의 효과를 굳이 다른 장르에서 찾아보자면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피어스가 디지털매체를 이용해 도달한 재치 있는 기술적, 미학적 성취. 생동감 있고 강렬하며 매혹적이고 더 나아가서는 아이들이 뒷마당에서의 작은 피크닉을 경험하며 겪는 흥분과 망설임, 즐거움과 완벽한 수준으로 환기시킨다.

<The Back Steps>(2001, 5min 30sec, Digibeta or DVD)
A small moment from a children's Halloween party is taken as material for an exploration of folded time. Essentially, this is a very simple piece. Two girls, dressed up for Halloween, sit on some steps then get up and run away. The action, originally shot at a slow frame rate then slowed again, is fragmented and looped, then time-slipped and layered. This originated on a digital video camera, and was digitally slowed and layered. No other digital processing was used. The delicate soundtrack was designed to serve as both a counterpoint to and an anchor for the image. The challenge , as always, was to create sounds that seemed to "come from" the image while maintaining a life of their own as compositional elements. Time is, in fact, what I see as my main material. THE BACK STEPS is a demonstration of that particular interests. The image loops but also progresses forward. That is fairly easy to see. However, the sound, while having looping elements, has a compositional structure that changes throughout the piece. I imagine most pieces as a series of overlain arcs, each of a different length and height and each representing a different durational element in the piece. Another way to imagine this is to think of a mechanical clock with many different internal rhythms, all of which move the hands steadily forward. Originally conceived as a "cinematic "projection, The Back Steps, has also been presented as a looped installation. Leighton Pierce’s award-winning short films and videos have been exhibited in major art museums and film festivals throughout the world since 1980. Retrospectives of his work appeared at The Lincoln Center, The Cinémathèque française, The Musée du Cinéma in Brussels, The Montreal Film Festival, and at The Lisboa Bienal of Contemporary Art. Pierce has received many grants and fellowships including from the Rockefeller and Guggenheim Foundations and from the NEA. Currently he is exhibiting and developing multi channel video installations.


<나무Wood>

뒷마당의 나뭇가지를 자르는 행위, 불, 호스, 탁자 등과 같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사물들과 그네를 타는 아이들을 순간 포착한 피어스는 보고 듣는 다는 행위 가운데 절묘한 결과물을 완성해 낸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의 재현을 고통스러울 만치 아름답게, 휘트먼적인 시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피어스는 다시 금독수리와 같이 매서운 눈썰미와 움직임, 디테일, 색감에 대한 예리한 감각, 요란한 소리와 적요함-이 양자에 모두 민감한 청각, 16mm필름 활용시 구현가능 한 효과를 뛰어 넘을 정도로 신중하게 계산된 디지털매체의 활용, 이 모든것을 동원해 유년기를 불러낸다. 캠프파이어, 호스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모습,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장면들의 오묘한 성질은 심오한 숙고를 통해 우주의 총체적인 문제로 확대되지만, 답답하고 현학적인 태도는 배제된다. 또한 피어스는 아이의 정신세계에 녹아들어, 깊은 예술적 감각을 통해 그 외양을 관찰자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자연스레 이끌어 낸다.

<Wood>(2000, 7mins, Digibeta)
Looking outward, this is a segment from a series revolving around the relationship between my son (then 10 yrs old) and daughter (then 4 yrs old). Their relationship is too complicated and too dynamic to understand. That I know. This piece doesn’t try to explain anything other than the fact of an overlapping acoustic environment and proximate activities. Looking inward, WOOD is also a reflection on the many overlapping rhythms of the body.


<물은 스스로 수평을 찾는다 Water Seeking its Level>

프랑스 남부의 한 개울에서 놀고 있는 리튼의 아이가 포착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디지털비디오의 표현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낸다. 빛과 색채의 율동은 마치 모네의 그림처럼 강렬한 동시에 미묘하지만, 또한 감동적이고, 풍성한 음향을 동반하여 압도적인 인상주의적 매혹을 선사한다. 아이의 손과 발이 붉은 색상의 수생 식물을 가르고 흐르는 물에 굴절되어 비추어진다. “아빠, 봐요.”하며 소리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아이 손에 쥐어진 동전 몇 개가 거센 물살로 떨어진다. 이러한 정황을 아이의 아버지인 피어스는 퍼스널 컴퓨터가 만연한 이 시대의 사람들마저도 주저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신선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만큼 예민한 감각으로 건져 올린다. 처음엔 이 부분을 보고 그 미학적 아름다움이 지나쳐 작품 전체의 가치를 격하시킬 정도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후 작품을 두 번 세 번 거듭하여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완전히 폐기하게 되었다. 오히려 세밀한 것에서 끌어낸 우아함으로 풍성하게 채워져 작품의 내부로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다. 

<Water seeking its Level>(2001, 6min, Digibeta)
Dad and daughter at the water race of an abandoned monastery. The scene pivots on her words:“Look dad,” she says. He IS looking while he waits for the resolution of the moment-- water through her fingers. Festivals/Screenings Media City, Windsor, Canada, Grand Prize Dallas Video festival Montreal International Festival of New Cinema, new Media Athens Film festival Black Maria Film festival


이외 다른 피어스의 작품들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으나, 시간이 허락지 않아 이정도로 마친다. 내 역할은 독자들에게 피어스의 작품들을 직접 찾아보고, 선입견을 버리고, 최대한 마음을 열어보고 작품을 접해볼 수 있기를 권장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분명 다른 영화를 통해 맛보기 힘든 매혹을 선사받게 될 것이다. 피어스의 작품은 가장 높은 차원의 질서로 만들어진, 영화의 시적 결정체다.


<50 피트의 실끈 50 feet of String> Part 1

HANGJU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