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전술로서의 몽타쥬: 파편, 네트워크, 이론 Montage as Critical Strategy: Fragments, Networks, Theory

린다 C. H. 라이 Linda C.H. Lai

나는 ‘이론 대 실천’ 이라는 분리와 이분법에 저항해왔다. 이론은 실천/만들기이다. 이론의 실천은 상황적 개입[앙가주망]의 다양한 형태를 띈다. 그가 글을 쓰건 읽건, 혹은 구체적인 생활-세계, 특정한 순간의 장소에 어떤 예술적 매체를 배치하건, 아는 [인식의] 주체는 또한 행동하는 주체이다. 나는 학자, 역사가, 예술가, 작가, 그리고 교육자라는 다양한 주체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각각의 이러한 위치의 영역들은, 각각에 따르는 질문의 양식과 함께 흘러들어, 나의 일상적 실천을 형성한다. 내가 세계와 맺는 관계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론은 내가 무엇을 할지 미리 규정하지 않지만, 내가 예술적 행위의 어떤 특정한 위치와 순간에 다다르도록 이끈다. 이론은 행위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예술적 여정의 끝에 이르러 나는 내가 만드는 이론에 도달한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나만의 아카이브 속에서 파운드 푸티지나 비디오 일기에 기반한 비디오 작업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어떤 실존적인 마음가짐 속에서 시각적, 청각적 정보를 모으고, 연구자처럼 훨씬 나중에 그러한 문서들에 대한 신선한 이해를 획득하는 것은 작업하는 이중적 “자아”의 지도를 그리는 내 실험적 다큐멘터리적 위치의 토대를 형성한다. 나의 수집 활동은 초현실주의적 자동기술법처럼 매우 직관적이지만, 어쩔수 없이 나의 교육과 삶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면, 비디오 파편들 속에서 형성되는 이미지/사운드 담론은 발견과 비판적 개입의 중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나의 역사기술적 의도가 들어오는 지점이다.

내 창작 작업의 대부분은 시각적이면서 자기-민속기술지적인 차원을 갖는다. 개인적인 시각적 일기를 통해 나는 문화와 역사를 구체적인 살아낸 경험(lived experiences)과 일상의 단단한 순간들로서 관찰한다. 어느 쪽으로건, 나의 프로젝트들은 대개 시청각과 인쇄의 편린들 속에 살아남은 홍콩의 잃어버린 역사를 재구성하려고 한다. 아카이브 푸티지의 시청각적 자료들은, 깔끔한 결론을 가진 매끈한 이야기로 환원될 수 없을 때조차 살아낸 경험의 무엇인가를 보존한다. 파운드 푸티지에 기반한 콜라주 스타일의 실험 다큐멘터리들이 갖는 힘은 이러한 방향에 놓이며, <보이는 목소리, 들리는 이미지 Voice Seen, Image Heard>와 <비-장소, 다른 공간  Non-place, Other Space> 이 두 작품은 이 범주에 속한다.  


I have resisted the split and dichotomy of theory versus making (practice). Theory is making. The practice of theory takes different forms of situated engagement: the knowing subject is also the subject in action, whether she is writing, reading, or deploying any artistic media, in a concrete life-world, in a specific place of a specific moment. Simply because I have multiple subject positions – as a scholar, historian, artist, writer and educator – the domains of these positions, together with modes of enquiry that come with each of them, flow into each other to shape my daily practice. My engagement with the world is necessarily multiple. Theory does not prescribe what I do; but theory leads me to arrive at a certain position and moment of artistic action. Theory emerges in the process of action. I arrive at the theory I make as I arrive at the end of an artistic journey.

Over the years, I have developed a method to create video works that are based on found-footage or video diaries in my own archive. Collecting sights and sounds in a certain existential mindset, and gaining fresh understanding of these documents much later like a researcher, form the rudiments of my experimental documentary position which maps a double “I” at work. My collecting activities are highly intuitive, much like Surrealist automatism, and yet inevitably shaped by my education and life experiences, whereas the formation of image/sound discourses from video fragments is an important process of discovery and critical intervention. And this is also where my historiographic intention comes in.

Most of my creative works have a visual, auto-ethnographic dimension: through personal visual diaries I observe culture and history as concrete lived experiences and entrenched moments of the everyday. One way or another, my projects aim to reconstruct a lost history of Hong Kong as it resides largely in surviving sight-and-sound and print fragments. The sights and sounds of archival footage preserve something of lived experience, even when it cannot be reduced to neat stories with neat conclusions. The power of found-footage-based, collage-style experimental documentary lies in this direction. Voice Seen, Image Heard (EXiS 2010) and Non-place, Other Space (EXiS 2009) both belong to this category.


<보이는 목소리, 들리는 이미지 Voice Seen, Image Heard> – 편린을 작곡/구성하기, 간극을 더 활기차게 만들기 Composing Fragments, Enlivening Gaps

<보이는 목소리, 들리는 이미지> 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의 일상 문화, 특히 단일한 중화민족이라는 관념에 통합된 1997년 이후의 홍콩 환경에 대해 진작에 쓰여졌어야할 비판적 역사를 기술한다.  

민속지와 파운드 푸티지에 관한 나의 관심을 통해, 나는 많은 나의 작업들이 아카이브 연구로부터 막대한 자료를 구성하는 방법에 달려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의 작업적 방법론은 일반적인 영화제작의 영역에서 ‘포스트-프로덕션’에 해당하는 것을, (영화/비디오의) 편집, (시각예술의) 콜라주, (인쇄물, 텍스트와 비디오 요소들을 통합하는) 애니메이션, (다양한 원천들로부터 파운드 푸티지를 통합하는) 편집과 (음악, 특히 파운드 사운드와 클립에 근거해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드는) 작곡인 예술적 창조의 강렬한 순간으로 변환시킨다. 비디오 작업들을 통해 나는 이러한 접근을 나만의 개인적 서명으로 발전시켰다.

영화예술의 관점에서 볼 때, 나의 작업은 미국과 유럽의  실험영화사 속 사유를 촘촘히 따라가며, 나의 문화적 맥락에서 실험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특히 영화의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었고, 영화적 서사의 관습이 형식화되기 전인 초기영화 시기에 관심이 있다. 나에게 초기 영화의 에너지는, 예술적 매체를 개방하고 살아있게 만드는 정언명령과 같은, 윤리적 차원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말해, 나의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은 언어와 미시/메타-서사성에 대한 강한 관심을 드러낸다.

지금 나는 ‘소수사에 대한 성찰 Meditations on a Minor History’이라는 비디오 연작의 다음 두 에피소드를 가지고 작업중이다. 첫번째 에피소드인 보이는 목소리, 들리는 이미지 (2009)는 2010년 EXiS에서 상영되었다. 지금 작업중인 다음의 두 신작들은 ‘여자들은 전부 어디로 갔는가? Where Had all the Women Gone?’와 ‘부두, 선창, 또는 산책: 빅토리아 항구 주변의 험난한 역사 Wharfs, Docks,   Promenades: the Difficult History of Victoria’s Harbor Front’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이들은 시각적 지식의 한계를 시험하면서, 홍콩의 시각적 역사에 대한 나의 실험을 이어간다.


Voice Seen, Image Heard writes a critical history of everyday culture in the former British colony of Hong Kong which is long overdue , especially in the post-1997 milieu characterized by the co-option of Hong Kong into the idea of a unified ‘Chinese’ nation.

With my concern with ethnography and found-footage, I notice many of my projects hinge on ways to organize a vast body of material from archival research. My creative methodology turns what is normally ‘post-production’ in ordinary filmmaking into an intense moment of artistic creation that is at once editing (in film/video), collage (in visual art), animation (integrating print, text and video components), compilation (combining found-footage from varied sources) and composition (as in music, especially the crafting of soundscapes based on found sound clips). I have developed this approach into a personal signature in my video works.

From the perspective of cinematic art, my works follow closely thoughts in the history of experimental cinema in the US and Europe, asking as well what experimentation possibly means in my cultural context. I am particularly interested in Early Cinema moments – when cinema’s possibilities were wide open, and before cinematic narrative conventions were formalized. To me, the energies of Early Cinema bear an ethical dimension: the imperative to keep an artistic medium open and alive. In general, my critical and creative works in general have a strong concern for language and micro/meta-narrativity.

At this point, I am working on the next two episodes of a video cycle ‘Meditations on a Minor History’. The first episode, Voices Seen, Images Heard (2009) was shown at EXiS 2010. The two new episodes I’m working on are titled Where Had all the Women Gone? and Wharfs, Docks, or Promenades: the Difficult History of Victoria’s Harbor Front, which carry on my experimentation with a visual history of Hong Kong at the same time testing the limits of visual knowledge.


실험적, 비판적 시각 민속지로서의 <비-장소▪ 다른 공간>
Non-place ▪ Other Space as experimental, critical visual-ethnography

<비-장소, 다른 공간  Non-place, Other Space> 은 파운드 푸티지와 컴필레이션 작업들에 대한 나의 지속된 관심의 일환이면서, 자기-민속지적인 실천이기도 하다. 나는 열렬한 도시 산보자이자 시청각 정보의 냉철한 수집자였다. 비디오 만들기란 나의 아카이브를 체웠던 낡은 이미지들을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자, 파편들 자체의 자율성과 의미작용의 개방성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을 염두에 두자면, “수집가의 삶은 무질서와 질서의 양극 사이에서 변증법적 긴장을 드러낸다.”

<비-장소, 다른 공간  Non-place, Other Space> 은 또한 홍콩과 마카오, 즉 중국에 양도된 이후 중화문명의 거대한 담론에 포섭된 두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의 맥락에서 기념비적인 것과 일상생활의 직물이 만드는 변증법에 자의식적으로 참여한다.

<비-장소, 다른 공간  Non-place, Other Space> 은 단일하게 프레임된 담론 속의 수많은 공간과 시간적 층들의 가능성을 주장하기 위해, 홍콩과 마카오의 도시 공간파편을 모은다. 그것은 사라지고 부상하는 것, 보이는 것과 숨겨진 것 사이의 상태를 시도한다. “걸어서 통과하는 것”은 위태로운 경험이다. 그는 꿰뚫고, 자맥질 하며, 일어나고 그 안에 잠긴다...한 순간, 나는 보며, 그러므로 비디오 카메라는 나를 기록한다. 다른 순간엔 카메라가 보고 유지하며, 그 때는 내가 발견한다. 자동기술법이 인도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거의 파악하지 못하는 가상적 소리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목소리의 파편들은 “비-장소의 장소없는 다른 공간(the placeless other space of non-place)”으로 모두 녹아든다. 장소와, 소멸의 살아낸 경험은 기념비적이지도, 환영적이지도 않은 사이의 존재로서(as the in-between) 되돌아 온다.

시청각의 편린들을 이어붙이면서, 나는 나의 민속지적 충동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했다. 홍콩은 음식-중심의 문화지만, 내게 음식은 죽음 및 종언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나는 기념비적이지 않고자 했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 속에서 ‘역사’를 찾았다. 하지만 완성된 작업을 다시 보니, 작품의 다른 모든 시간들이 기념비적 사건들의 펄럭이는 편린들을 품고 있었다: 중국의 새해, 유령제, 2000년 밀레니엄 축하, 중국의 올림픽 개체 등...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외부 장소들은 끊없는 도시 개발 계획의 결과, 홍콩과 마카오의 지금 지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술 설치작업의 임시 거처일 뿐이었던 어떤 장면들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장소로 존재하지 않았다.


Non-place ▪ Other Space is part of my continuous fuelled interest in found footage and compilation works, also an auto-ethnographic practice. I have been a fervent walker of the city as well as a detached collector of sights and sounds. Video-making then is to renew the old images that filled my archive, also to preserve the fragments for their own autonomy and openness for signification. In Walter Benjamin’s light, “the life of a collector manifests a dialectical tension between the poles of disorder and order.”

Non-place ▪ Other Space is also self-consciously engaged in the dialectics of the monumental and the fabric of everyday life in the context of Hong Kong and Macao, two cities whose histories and identities have been co-opted into the grand discourse of Chinese civilization since their handover to Chinese sovereignty.

Non-place ▪ Other Space compiles fragments of the city space in Hong Kong and Macao (1991-2008) to assert the possibility of many spaces and temporal sheets in one single framed discourse. It attempts the states between disappearing and emerging, visible and concealed. “Walking through” is a precarious experience. One penetrates, dives into, emerges and immerses in… In one moment, I see, therefore the video camera records for me; in another moment, the camera sees and retains, then I discover. Automatism leads. Virtual sounds I barely grasp in my mind, and fragments of a voice I have long forgotten, all blended into the placeless other space of non-place. Places and lived moments of disappearance return as the in-between, neither monumental, nor illusionary.

I have discovered much about my ethnographic impulses as I piece together fragments of sights and sounds. Hong Kong is a food-oriented culture; yet to me food is closely tied to death and demise. I meant to be anti-monumental, and looked for ‘history’ in the banal and the everyday. Yet as I review the finished piece, every other minute of the work carries fluttering fragments of a monumental event: Chinese New Year, the Ghost Festival, the 2000 Millennium celebration, China’s hosting the Olympics…  Most of the outdoor sites in this work no long exist in current maps of Hong Kong and Macau as a result of ceaseless urban renewal projects; or some scenes have never yet existed as practical, concrete dwellings as they were only impermanent sites of art installations.


나의 도시를 해체/재구성하기 [De-/Re-]Constructing My City

홍콩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전형적인 이미지들은 이 도시의 금융과 다국적 기관들의 솟구치는 마천루나 빅토리아 하버의 스카이라인,  군중과 교통체증을 찬양한다. 나에게 홍콩은 한 줌의 이미지들로 환원될 수 없다. 나는 걷기를 통해 나의 은유를 발견한다. 소리가 나거나 먹먹하거나, 부딪히면서도 섞여드는 절충적이고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기원하는 감각의 끝없는 흐름과 급류들. 내가 나만의 생각과 급작스런 백일몽의 무한한 공간 속으로 빠져들때,  거대한 디지털 스크린들은 여기 저기 교차로에서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거리 구석을 재빨리 돌면, 북적이는 도로는 50년의 삶을 지속하는 잊혀진 길목이 된다. 홍콩의 도시 공간을 걷는 것은, 내게 세부사항들이 신속하게 이어지는 라이브 경험이고, 깨진 시간대를 끊임없이 들어왔다 나가는 이동이다. 영화 언어로, 우리는 이를 ‘몽타주’라 부른다. 보다 중요한 건, 나의 시각 연구가 보여주듯, 홍콩이라는 도시가 부동산이 이끄는 발전 모델의 맥락 속에서  그것의 외양을 붙잡으려는, 혹은 그것의 건축적 온전함을 보존하려는 아슬아슬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혼돈과 무질서를 통과하고, 시청각의 편린들을 하나의 이미지 담론으로 꿰매면서, 나는 편집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몽타주는 콜라주이다. 역사적으로 전복적인 함축과 함께, 콜라주는 부정합과 부조화를 통해 통합성에 이르는 방법으로 나를 이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시각적 문법을 파편의 시각적 문법이라 부른다. 개별 쇼트들을 담론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각각의 이미지/사운드 편린들이 마치 자유롭게 서로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새로운 톤과 목소리들을 얻게 해주는 편집의 접근법.

시청각적 파편들은 아직 명시화되지 않은 일화적 공명들로 가득하다. 비-장소 Non-place의 다양한 텍스추어와 감성 파편들이 만드는 몽타쥬로부터 기원하는 시청각 체제 전반을 기술하기 위해 (‘천 개의 겹’을 가진) ‘나폴레옹’ 페스트리를 은유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 수많은 ‘겹’들은 다음을 포함한다: 미술 공간과 미술 설치, 음식, 기념비적 순간의 작은 세부사항들, 물 (도시 공간의 자연), 음식이 준비되는 장소들, 혐오감 (쓰레기, 유물, 음식), 파괴된 장소, 인간의 장기들, 일상적인 대화들, 미디어 방송, 나의 엄마

마지막 ‘겹’은 시의 형태로 쓰여진 내 일기이다. 시청각적 기호의 급류들 속에서, 사람들은 예술가의 주관적 존재를 발견하는데,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와 그의 도구들과의 관계는 오로지 말로만 구축될 수 있다. 이 작품 속의 텍스트와 이미지 관계는 그러므로 해석이나 지지하는 설명의 관계가 아니다. 쓰여진 말들은 그 어떤 시각적 형태로도 번역될 수 없다. 그들은 그들 자신만의 사적이고, 항상 원했던, 예술 제작을 반영하는 독립적 공간을 형성한다.


Globally circulated typical images of Hong Kong glorify the soaring skyscrapers of the city’s financial and multi-national corporate institutions, or else the skyline of the Victoria Harbor, crowds and traffic jams. To me, Hong Kong cannot be reduced to a handful of images, whereas it is in the act of walking that I discover my metaphor – ceaseless streams and torrents of sensations from eclectic and multifarious sources, sounding or muffled, colliding yet blending. Here and there, huge digital screens scream at crossroads as I sink into the boundless space of my thought world or sudden daydreams. Then at the quick turn of a street corner, a bustling road becomes a forgotten alley carrying on the life of half a century ago. Walking through the city space of Hong Kong to me is real-time experience of rapid succession of details sweeping by and ceaseless transition in and out of broken time zones. In the language of cinema, we call it ‘montage’. More importantly, as my visual research shows, the city of Hong Kong has a precarious history of holding onto its look or preserving its architectural integrity – in the context of a real estate-driven development model.

In working through chaos and disorder, and in piecing together fragments of sights and sounds into an image discourse, I was drawn into a renewed interest in the meaning of editing. Montage is collage. Collage, with its historically subversive connotation, leads me to a method that achieves coherence via incoherence and incongruence. Thus I call my visual grammar that of fragments: an editing approach that liberates individual shots from discourse, and allows each image/sound fragment to take on new tones and voices as it freely cohere with each other.

The sight and sound fragments are pregnant with anecdotal resonance as yet to be made explicit. I’d like to use the pastry ‘napoleon’ (‘thousand-leaf, or millefoglie, or mille-feuille) as an analogy to describe the overall image/sound system resulting from the montage of fragments of varied texture and sensibility in Non-place. The many ‘leafs’ include: art space and art installation, food, small details of monumental moments, water (nature in the urban space), places where food is prepared, disgust (waste, relics, food), demolished place, human body parts, casual conversations, media broadcast, my mother…

Yet one final ‘leaf’ is my diary in the form of poetry. In the midst of the torrents of images and sound signals one finds the subject being of the artist, whose own private story and her relation with her tools could only be articulated in words. Text-image relation in this work is therefore not that of interpretation or supportive elaboration. The written words are not translatable into any visual form; they form an autonomous tier of space of their own, the private, desirous, and reflexive of art-making.


<도어 게임 윈도우 프레임: 유사 드라마 Door Games Window Frames : Near Drama> : 멜로드라마적 파토스의 물질화  materializing melodramatic pathos

1960년대에 성장한 아이로서, 나는 홍콩 영화보다는 헐리우드 영화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 문학 전공과 영화/문화 역사가로서 비판적으로 사유하기 전까지, 이 시기의 고전 홍콩 영화들에서 보이는 명시적인 반복성과 공식적인 행동들은 나의 주의를 끌었다. 이 영화들은 두 가지 이유로 매혹적이었다. 먼저, 예술적 관점에서 이들 영화에 대해 쓰기는 쉽지 않았고, 이 멜로드라마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재발견할 필요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둘째, 보다 원초적인 수준에서, 나는 거대한 머리의 쇼트들과 말없는 얼굴 표정들을 자주 사용하는 것에 매혹되었다. 이 머리 쇼트들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기 대문에, 말로 그 풍부함을 재생산할 수는 없다. 그들을 그저 ‘행복하다’ 거나 ‘슬프다’고, ‘놀랐다’거나 ‘무서워한다’고 딱지 붙일 수는 없다. 그것이 무빙 이미지의 마술이다. 이 영화들을 꽉 조이기 위해 재편집하는 것을 상상한다면, 문이 열리고 닫히는 모든 쇼트들을 잘라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잠깐만, 어떤 창문과 문들은 캐릭터의 발견과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서사적으로 필요한 장치들로 보인다. 11개의 영화들 중 한 편에서, 나는 문과 창문과 관련된 100개의 쇼트들을 셌고,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을 번안한 작품 말고도, 다른 몇몇 작품에서는 120에서 150개에 이르는 쇼트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저 나의 개인적 강박이 아니라 정말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내가 방금 말한 것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영화들을 주의해서가 아니라 눈을 가늘게 뜬 채 본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눈을 가늘게 뜸으로써, 당신은 세부 사항은 놓치겠지만, 문-창문의 개폐 패턴, 그러한 쇼트들의 주기와 그들이 만드는 리듬은 보다 효과적으로 포착하게 될 것이다. 대화를 놓치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종종 얼굴 클로즈업이 시기적절한 구두점처럼 등장한다. 당신은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안다. 위기는 끝났거나 막 오기 직전이다. 당신은 드라마가 그 다음 단계로, 결말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이동한다는 걸 안다.

이 작업에서 나는 문과 창문의 움직임들을 말 그대로 드라마의 프로펠라로 바꾼다. 구두점로서 뿐만 아니라 감정적 전환을 위해서, 내가 이 클립들과 만들어내는 조합의 유희는 미시-서사를 만든다. 조합적 연습으로부터 기원하는 ‘의사 드라마(near drama)’는 곧게 뻗은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방법은 문과 창문의 열고 닫힘 사이의 모든 부분들을 해방시켜, 그들 각자가 홀로 서서 스스로의 드라마적 에너지를 연행하게 한다.

이 작품엔 세 개의 장이 있는데- “시험과 추측: 바퀴 돌리기’, ‘심각해지기’ 그리고 ‘문 뒤 에서, 창문 앞에서’- 각각은 문과 창문 장치를 연구하는 과정을 풀어내며, 동시에 어떤 단 하나의 안정적인 이야기에도 안착하지 않은 채 드라마성(dramaticity)을 만들어낸다.

<도어 게임 윈도우 프레임: 유사 드라마 Door Games Window Frames: Near Drama> (2012) 는 이 세가지 측면에 모두 들어 맞는다. 이 작업은 또한 내가 예전에 만들었던 Door Game (2005, 26분)이라는 작업을 세공한 것인데, Door Game 은 ‘거의 드라마에 가까운 것’을 자세와 파편들로 분산시켜 드라마적 성격이 이미지와 순수 비평의 고립에 의해, 그리고 이미지가 텍스트에 의해 시나브로 삼켜지는 과정이다. <도어 게임 윈도우 프레임: 유사 드라마에서 나는 ‘신’의 역할을 버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하여금 세 개의 윈도우가 만드는 조합 게임으로부터 시각적 음악을 직조하는 단순한 규칙에 근거한 첫 러프 컷을 만들게 했다. 연속성보다는 파편적인 것을 선호하는 편집 방법을 통해, 나의 거의 모든 작업은 개별적인 시각 편린과 그들의 정동적 힘에 주목하는데, 이것은 연속성, 정합성과 전체성처럼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경우가 전혀 아닌 것에 대한 주류 영화의 의존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이다.


As a kid growing up in the 1960s, I was more exposed to Hollywood films than Hong Kong (HK) films. It wasn’t until when I became a critical thinker as a literature major, then a film/cultural historian, that the overt repetitiveness and formulaic behavior in HK oldies in that period caught my attention. These films were fascinating for two reasons. First, I found it rather difficult to write about these films from an artistic point of view, which confirmed my need to rediscover how these melodramas work. I needed a new language to make sense of them. Second, on a more primal level, I feel enchanted by the frequent use of big head shots and speechless facial expression. There’s so much in these head shots that you can’t reproduce the richness in words. You can’t just label them ‘happy’ or ‘sad’, ‘surprised’ or ‘fearful’. That’s the magic of the moving image. Then if you imagine yourself re-editing these films to tighten them up, you want to cut out all the door opening-shutting shots and yet – wait a minute – no, it seems some windows and doors are necessary narrative devices for characters’ discovery, and for the story to proceed. In one of the 11 films, I counted 100 door and window-related shots, in a few others 120 to 150, not to mention a local adaptation of Alfred Hitchcock’s Rear Window. This is how significant – not just my personal obsessions.

The best way to understand what I just said above would be to imagine you were squinting rather than watching these films attentively. By squinting, you may lose the details but you’ll more effectively catch the door-window opening-shutting pattern, frequency of these shots and rhythm they create. You don’t need to really worry about missing the conversation, but every now and then a close shot of a facial would come in like a timely punctuation. You know you should pay attention; a crisis is over or just about to come; you know the drama is now moving on to its next phase, a step closer to the denouement.

In this piece, I have turned door and window movements literally into a propeller of drama. As punctuations as well for emotive shifts, the combinatorial game I play with these clips constructs micro-narratives. The 'near drama' resulting from the combinatorial exercise could be frustrating for not delivering one straightforward story; but my method liberates every segment between the closing and opening of doors and windows to allow them to stand alone to perform its dramatic energy.

This work has 3 chapters -- "Trial & Speculations: spinning the wheel," "Getting Serious" and "Behind the doors, in front of the windows" -- laying out the process of studying door and window devices, at the same time brewing dramaticity without ever arriving at any single stable story.

Door Games Window Frames: Near Drama (2012) fits all three aspects. This work is also an elaboration of an earlier work I did, Door Game (2005, 26 minutes), which is a process of disintegration of ‘near drama’ into postures and fragments, whereby dramaticity is gradually devoured by isolation of image and pure criticism, and images by texts. In Door Games Window Frames (2012), I let go of the role of ‘god’, and allow a computer program to generate the first rough cut based on simple rules that organize visual music from a combinatorial game of 3 windows. With an editing method that favors the fragmentary rather than continuity, almost all my works call attention to the individual visual fragments and their affective power, a conscious statement against mainstream cinema’s dependence on continuity, coherence and wholesomeness, which isn’t really the case of the world we experience.


실험적 장르를 넘어서는 실험 Experimentation over Experimental Genre

실험 영화는 장르도, 종종 아방-가르드라 불리는 역사적 시기의 이름도 아니다. 나는 실험을 연속된 전술적 장려책으로 생각하길 선호하며, 특정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양식을 찾으려는 모든 양심적 영상 예술가들의 필요를 ‘아방 가르드’적이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매체 특정성.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디지털 비디오의 경우 내가 유능한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는한, 그 방향으로 갈 수 없다. 동시에 나는 한 매체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취한다. 나는 매체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 보다 관여되어 있고, 필름과 비디오의 경우, 영화제작과 비디오그래피를 정의 내리고 한정지었던 모든 규약들을 생각하며, 무빙 이미지들의 전제된 맥락과 용례들을 생각하고, 새로운 사용법과 맥락들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영사된 이미지의 물리적 성질에 대해, 그리고 그것의 물질적 조건이 어떻게 우리의 제작과 사용에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인터미디아.  나는 다양한 예술적 매체의 형식 언어와 규범들이 어떻게 서로 섞이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제3의 것’, 즉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을 만드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예를 들어 ‘‘Door Games Window Frames’에서, 나는 무엇이 음악에서 리듬으로, 그리고 음렬주의와 같은 열린 작곡 방법으로 귀결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이미지 시퀀싱에서 음악이 나의 ‘작곡’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음악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또한, 둘다 다소 재현적이면서 생략적이고 파편적이기에, 동등한 지위를 갖는 청각이미지와 영상 이미지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간학제성. 나는 내가 만들어온 수많은 실험들이 다른 분과학문의 원천에 기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나, 혹은 둘 이상의 작품에서 나는 영상 제작자의 활동을 통해 역사가, 문화비평가, 시각 민속지학자, 그리고 시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 결과, 나는 ‘분석’이 자의식적인 편집 이론을 요구하는 파편적인 스타일의 방향으로 나를 밀고 가는 몽타주에 기반한 영상 제작자가 된다.

한 층 풍부해진 지각과 확장된 인식. 개인적으로 실험적 무빙 이미지는, 그것이 세계를 다르게 경험하게 해주거나, 더 많이 (혹은 적게), 더 잘, 그리고 다르게 보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이미지로 넘쳐나는 이 세계에서 정당한 작업일 수가 없다. 수많은 영화이론가들을 따라, 나는 무빙 이미지만이 줄 수있는 세계에 대한 사유 방식을 제공하는 실험 영화에 대한 접근을 지지한다.

실험을 주된 입장으로 삼는 나의 비디오 작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일관된다. (1) 미시/메타-서사 게임을 매개로 서사 시간, 스크린 시간과 개념적 시간과 유희함으로써, 필름-비디오의 시간적 측면을 탐색한다. (2) 주류 영화건 개인적 일기건, 혹은 파운드 뉴스릴이건, 파운드 푸티지로 작업한다. (3) 실험 비디오를 시각 민속지의 한 형식으로, 즉 시각 연구와 이미지 제작을 예술 실천과 일상 문화 및 역사의 성격을 탐색하는데 사용한다.


Experimental film is not a genre, nor the name of a historical moment often called the Avant-garde. I prefer to think about experimentation as a continuous, tactical incentive, and the necessity of all conscientious image-artist to find his/her own mode to be ‘avant-garde’ in specific circumstances.

Medium specificity. In a sense, I don’t think I belong to this group. I cannot go in that direction unless I become a competent programmer, in the case of digital video. At the same time, I am definitely for a more open view on what a medium is and how to define it. I am more engaged with the social, cultural dimension of a medium: with film and video, I think of all the conventions that have defined and delimited filmmaking and videography, I think of the assumed contexts and usages of moving images and wonder whether there are new usages and new contexts. I think a lot about the physicality of the screened image, and how its material condition affects our making and usage.

Intermedia. I do think a lot about how the formal language and norms of practices of different artistic media may crossbreed and inform one another to create something ‘third’, that is, something in between. For example, in ‘Door Games Window Frames’, I think of what amounts to rhythm in music and methods of open-end composition such as serialism. I asked questions on music to see how it affects my ‘composition’ in image sequencing. I also created a work in which sound and image are of equal status as they are both somewhat representational and yet elliptical and fragmentary.

Interdisciplinarity. I believe a lot of the experiments I have set up are possible because I rely on resources of other discipline. In more than one or two works, I play the role of a historian, a cultural critic, a visual ethnographer and a poet in the very activities of image maker. A result of this is that I become a very montage-based image-maker, by which ‘analysis’ pushes me in the direction of a fragmentary style demanding a self-conscious theory of editing.

Enriched perception and stretched cognition. Personally, in a world flooded with images, no experimental moving image work is justifiable work unless it makes us experience the world differently, makes us see more (or less), see better, and see differently. After many film theorists, I support an approach to experimental cinema that provides us with a way of thinking about the world that is only affordable by the moving image.

Taking experimentation as my prime position, my video works have been consistent in three aspects: (1) exploring the temporal aspect of film-video, by playing with narrative time, screen time and conceptual time via micro-/meta-narrative games; (2) to work with found footage, be it mainstream cinema works, personal diaries or found newsreels; and (3) treating experimental video as a form of visual ethnography, i.e. to use visual research and image-making to explore the nature of art practices, everyday culture and history.

HANGJU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