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 실천으로서 비디오 Video as Architectural Practice

두칭춘 杜慶春(베이징 필름 아카데미 교수)과 리쥐촨 李巨川의 대화 

제가 보기에, 당신은 독특한 언어적 의식을 작품 속에서 드러내 왔는데요, 이점은 건축의 출현에 대한 당신의 논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공간, 시간, 엿보기, 사운드와 이미지가 뒤섞인 다층적 상황에서 의미를 이끌어내는 당신의 작품은 서로 다른 이미지(영화와 건축적 상황)를 참조하고 추동하면서 독특한 형태의 반영성과 응시를 이끌어 냅니다. 예를 들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남자의 걸음걸이에 대한 기록은 공간적 문제를 시간적 태도로 재현합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문화혁명에 대한 참조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제가 보기에 당신의 작품은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기보다는, 수많은 영화의 근본적 개념을 문제시한다고 봅니다. 아마도 당신이 가진 미니멀리즘적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보는데요, 언어적 의식의 문제는 당신의 작품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제 작품은 두 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실험적 영화제작"이라 이름 붙일 수도 있는 영화 관람객으로서 제 욕구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퍼포먼스와 제 생각에 어떤 건축적 실천으로 드러나는 퍼포먼스와 비디오가 결합한 형태의 제작 형태입니다. 이 두 범주는 이미지-생산에 있어 유사성을 가지는데요, 단 하나의 장면으로 모두 촬영된다거나 개별 작품들이 완전한 과정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영화 언어의 측면에서는 이 두 범주는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험영화 속에서 모든 제 관심은 아마도 당신이 영화의 근본적 개념이라 명명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들을 영화의 실체라 간주하고, 바로 이것으로부터 영화적인 것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영화가 최소한의 개념적 조건으로 환원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영화라 규정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제 영화는 아주 넓은 의미에서 영화 언어의 게임이면서 한편으로는 영화 연구로 간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범주에 해당하는 제 작품은 다소 제한적입니다. 

제 작품의 대부분은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비디오 매체에 대한 저만의 사고방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필름과 비디오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우리의 신체와 비디오 사이의 친밀한 접속에 있습니다. 이런 인식 아래 “카메라로 내가 무엇을 촬영해야 하는가?”가 아닌 “카메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제겐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저는 제 신체와 제가 살고 있는 세상 사이를 카메라로 구축했습니다. 영화 언어는 그것이 가진 의미를 잃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미지의 개입이 이 둘 사이의 관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그런 관계가 남긴 흔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은 공간 속에 대상이나 신체 기관으로서의 카메라를 위치 지으려는 제 숙고를 통해, 다시 한 번 영화 언어의 출발점에 서게 한다는 것입니다. 카메라의 위치와 카메라와 대상 사이의 관계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장소, 움직임의 지속을 드러내고 이 모든 것은 정확히 영화 언어의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공간적 관계를 형성하려는 것은 확실히 새로운 영화 언어의 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중요한 문제는 이런 새로운 시도가 제가 가고자 하는 종착점이 아닌, 유사 영화적-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당신 세대의 청년기에 영화 관객으로서의 경험이 확장되어 갈 때 스크린에 투영된 욕망과 이미지의 유입을 마주하면서, 어떻게 당신은 우리의 신체/육체와 외부 사이의 상호관계에 강하게 체화된 압도적이며 이미지의 욕망이 담고 있는 것을 받아들였는지요? 당신 작품에서 신체/육체의 매체적 기능 혹은 이미지의 신체/육체적 욕망은 극단적으로 강렬하고 직접적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어떤 놀라운 지점은 당신의 카메라에 담긴 신체/육체는 순수하게 이미지로 담겨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시공간뿐만 아니라 감정과 사유의 토대를 획득하지 못한 채 심지어 어떠한 사회적 문제도 표현되지 않는 상태로 이미지 속에 신체/육체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전 고전 영화의 마지막 시기에 영화와 당신 작품 사이의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서사와 드라마가 거세된 지점에서 우리는 이미지와 인간의 신체 사이에 과연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당신이 앞서 분석한 것처럼, 제 작품은 영화의 장소에서 어떤 중요한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중요한 작품은 영화적 맥락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 관객으로서의 경험이 제 창작 활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중요한 원천이 되었지만 제 관심은 영화와 관련된 문제와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제 퍼포먼스 비디오는 건축적 실천으로 간주됩니다. 신체에 대한 제 관심은, 건축적 본질에 관한 제 사유를 드러내는 것으로 제가 생각하기에 건축은 우리의 신체와 세계 사이에 놓인 것으로 시간적 형식으로 비디오는 신체와의 직접적 연결을 다루며 그러한 관계를 신체가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제 접근 방식은 이를 반대의 시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 카메라를 매개로 하여 신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며, 이미지는 종착점이 아닙니다. 저는 제 신체를 수단으로 하여 시간적 형식으로 존재하는 개인적 공간을 생성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공간이 남긴 흔적의 존재가 되는 것은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기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지점에서 “카메라로 우리의 신체가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 전문은 2010년 베이징, 뉴스타 출판사에서 발행한 영화를 통해 바라보기: 시네마의 흔적과 동시대 미술에서 자아-구성에 수록되어 있다.
원문의 대화 제목은 “Films are Just the Remains of Conducts / 一席之言:影像只是行為留下的痕跡” 이었으며, 작가의 의도에 따라 발췌본의 제목은 수정되었다.
Excerpt from a conversation between Du Qingchun (杜慶春)(Professor at Beijing Film Academy) and Li Juchuan.
Originally published in Looking through Film: Traces of Cinema and Self-Constructs in Contemporary Art 從電影看:當代藝術的電影痕跡與自我建構
under the tile of Films Are Just the Remains of Conducts, (Beijing: New Star Press, 2010)

제게 있어 원테이크 촬영은 하나의 작업 방식이 아닌, 작품 전체를 구성하는 일관된 작업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원테이크를 사용하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우선 ‘카메라’라는 대상을 접촉하면서 비디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영화 애호가였고 영화 보는 것을 즐겼습니다. 현재는 쉽게 실험영화나 아방가르드 영화를 접할 수 있지만, 당시 제 세대는 외국영화를 쉽게 접하기도 힘들었고, 대부분 책을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대부분의 영화에 대한 경험은 책에서 비롯되었으며, 책을 통해 영화를 보게 되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앤디 워홀의 <엠파이어> 역시 8시간 동안 원테이크로 촬영되었습니다. 저는 아마 이런 영화 촬영 방식에 대해 선천적인 관심을 보인 것 같습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예술 형태를 무척 좋아해서 처음부터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 중 마이클 스노우를 비롯한 구조영화라 불리는 경향의 작가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물론 앤디 워홀의 경우는 가장 극단적이고 다른 사례이긴 합니다. 단 하나의 광경을 그렇게 오랫동안 카메라로 바라본 경우는 일반적이지는 않죠. 저는 앤디 워홀의 이런 촬영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처음 카메라를 들었을 때 원테이크로 작품을 완성하는 촬영 방식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 작품에는 또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비디오와 영화의 큰 차이점에 대한 저 자신만의 관점이 그것입니다. 소형카메라가 출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의 개인 창작이 가능해졌으며, 우리는 영화산업의 밖에서도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창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바로 이러한 물질적 토대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다른 중요한 지점은 (비디오) 카메라가 우리의 신체와 일종의 관계를 구축하였다는 점이며 이것은 영화 카메라로는 가능하지 못 했던 것입니다. (비디오) 카메라는 우리가 본 것을 기록함과 동시에 우리의 신체적 움직임과 호흡, 떨림 등의 미세한 신체적인 모든 것을 기록 가능하기 때문에 영화 카메라와 다르게 신체 행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제가 비디오카메라를 선택하여 저 자신만의 건축적 실천을 진행하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제가 건축적 실천을 위해 비디오를 도구로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에 기반을 둔 매체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체와의 관계입니다. 시간적인 면에서는 영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신체적인 측면은 비디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입니다. 비록 이 두 부분은 서구의 건축학에서 배제되었던 부분이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건축적 실천은 바로 이 두 부분을 재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신체도 시간적인 것이고 신체는 시간적인 형식으로 존재합니다. 제게 있어 건축은 저의 신체와 신체가 처한 환경 사이에 일종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고, 이 관계 역시 시간적인 것이기에 비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이러한 관계를 구축할 때에는 촬영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단절되지 않은 영화의 구성단위로서 쇼트만이 바로 이 과정을 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고, 시간적인 형식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비디오로 건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건축적 실천입니다. 다시 말해 전 (비디오) 카메라로 건축을 실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영화 애호가의 입장에서 보면 제가 원테이크 촬영 방식을 선호한다 말할 수 있지만, 저만의 건축적 실천에서 보면 원테이크는 필연적 당위성을 갖게 됩니다. (리쥐촨, 2016)


리쥐촨 李巨川은 1964년 중국 후베이성 샤시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우한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86년 우한 도시건축대학에서 도시계획(후에 화중과학기술대학으로 이름 변경)을 공부했다. 무한기술대학 건축학과(1995년~2004년), 난징대학 건축학과(2005~2007)에서 부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후베이미술학원 湖北美术学院 Hubei Institute of Fine Arts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그는 1990년대부터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 장소 특정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건축적 실천을 해오고 있다. 또 여러 전시 및 비엔날레 등에 참가하였으며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면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주요 참여 전시로는 The Bi-City Biennale of Urbanism & Architecture(심천, 2013), 중국의 무빙 이미지 Moving Image in China 1988-2011(민생미술관, 상하이, 2011), 중국의 퍼포먼스 예술 기록전 1985-2010 The Document Exhibition of Chinese Performance Art 1985-2010(송주앙 아트센터, 베이징, 2010), 중국의 동시대: 건축, 예술과 시각문화 China Contemporary: Architecture, Art and Visual Culture(네덜란드 건축 협회, 로테르담, 2006), 말할 수 없는 행복, 중국 동시대 미술전 Unspeakable Happiness, A selection of Contemporary Art from China(타마요 뮤지엄, 멕시코, 2005), 디스턴스 Distance(광동미술관, 광저우, 2003), 제1회 량시성 건축 비엔날레 The 1st Liang Sicheng Architecture Biennial(중국 국립현대미술관, 베이징, 2001), 1997 중국 비디오 전시 Demonstration of video art’97 China(중앙미술학원 갤러리, 베이징, 199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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