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방가르드영화와 현대미술

권중운 (한국실험영화연구소 연구원)

짧은 길이의 무성영화로 주로 제작된 아방가르드 계열의 영화들은 추상적, 초현실주의적 회화에 가까운 영상시(詩)로서 꿈들로 이루어진 환상의 세계를 영화화 한다. 공간 속에서 시간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매체인 아방가르드 영화는 많은 화가들을 매혹시켜 영화작업에 이들을 참여시켰는데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아네믹 시네마 Anemic Cinema>(1926)등은 아방가르드의 추상적이고 비객관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영화는 1930년대에 이르러 종말을 고했으나 그 제작방식과 정신은 독립영화와 실험연구의 선구가 되어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다. <편집자>

영화는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무용 같은 제반 예술 장르를 포괄하는 종합예술로 평가받는 장르이다. 그러나 영화는 다른 어떤 장르 보다 미술 장르와 더 깊은 연관을 맺어 온 장르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영화가 초창기 시각예술로 출발했고 지금껏 시각예술로서 영화의 본질적 특성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별장르로서 영화와 미술은 집단적 제작방식과 개인적 작업, 대중예술의 통속성과 순수예술성, 서사적 이야기와 비서사성, 카메라 같은 기계적 산물과 개인의 창조적 재능, 시공간예술과 공간예술 등에서 대립되는 변별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시각 예술의 차원에서 영화는 미술과 마찬가지로 시각적 요소들의 형상화를 통한 세계를 바라 보는 방식을 제시하는 데 그 본질적 특성이 있다. 달리 말해 영화의 기본단위인 한 쇼트의 구성은 색, 형태, 선, 구도, 회화적 양식의 세팅, 거리, 위치, 앵글, 화면의 질감 같은 시각적 요소들로 디자인 된다는 것이다.

양 장르는 이와 같은 기본적인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런 이유로 영화기구가 발명된 후 독자적인 예술매체로서 영화의 위상을 설정하고 그 양식을 정립하고자 했을 때 그 문제는 당대 미술을 지배한 미학적 이념에 의해 모색되었다.

특히 1920년대를 전후한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전개된 현대미술의 미학적 이념이 영화양식의 문법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당시 파리는 세계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로서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장 꼭도Jean Cocteau 같은 아방가르드 연극인, 음악가, 시인들 뿐만 아니라 피카소Pablo Picasso,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만 레이Man Ray,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모여든 도시였다. 이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새로운 매체로서 부상된 영화에서 그들 예술의 미학적 이념을 확대하고 실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꾸었다. 실제로 그들은 영화제작에 직접 참여하였고 그들이 실험했던 영화양식은 오늘날 영화양식의 기본적인 문법의 모태가 되었다.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란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영화작업을 했던 시기의 영화를 말한다. 영화사적 견지에서 이 시기만큼 영화와 현대미술이, 영화감독과 현대화가들이 행복한 결합을 경험했던 시기는 없었다.

영화는 이처럼 현대화가들이 영화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영화양식의 문법이 정초되어졌지만 현대화가들의 영화제작 참여는 당대사회의 어떠한 문화적 배경에서 이루어졌을까?

1910년대 까지만 해도 영화는 프랑스에 있어 서커스나, 대중음악, 무도회, 희가극 같은 대중오락물의 일종이었다. 현대화가들이 새로운 표현매체로써 영화에 매혹된 이유는 미학적 이념의 실험 이상으로 영화라는 매체에 내재된 대중성 때문이었다. 그들은 부르주아 이념을 타파하려는 그들의 미학적 이념을 노동자계층으로 대표되는 대중적 기반 위에서 실현시키려고 했다. 즉 그들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마르크시즘적 유토피아를 꿈꾸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프랑스 영화계는 현대화가들의 미학적 실험이 결합된 시각예술로서 영화의 특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예술영화로 분류했다. 예술영화를 자국영화의 독자성으로 삼고 프랑스 영화인들은 헐리우드 오락영화에 의해 점령당한 영화시장을 되찾으려고 시도했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는 사회문화운동으로서 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의 중심인물로 ‘제7의 예술’로서 영화를 규정했던 리치오토 카누도Ricciotto Canudo와 그의 후계자로서 <시네마Cinema>라는 잡지와 <시네클럽Ciné-club>을 조직하여 아방가르드 영화를 위한 특수한 관객층을 형성하고자 했던 루이 델뤽Louis Delluc, 그리고 장 엡스탱JeanEpstein, 르네 클레르René Clair, 아벨 강스Abel Gance 등이 있었다.

이들이 주도했던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의 미학적 이념이 현대미술의 미학이념 이라 했을 때 현대미술의 미학적 이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통칭 모더니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의 미학적 이념은 이와 대척 관계에 있는 부르주아 이념과의 관계 하에서 간략히 파악해 보고자 한다. 모더니즘 미학이념과 대척관계에 있는 부르주아사회는 좁은 의미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즉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서부 유럽 사회를 지칭한다. 이 시기의 부르주아 사회이념은 세계를 합리적 이성의 힘에 의해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관점이었다. 이것은 근대적 산업화의 효율성에 그 목적을 둔 기계론적 세계관의 소산이기도 했다.

미술영역에서 부르주아 이념이 전형적으로 구현된 시각양식은 원근법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사회의 사실주의적 작품세계는 원근법이라는 특정한 시대의 이념에 의한 시각양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현실을 재현한 것이 아닌 일종의 환영의 세계인 것이다. 모더니스트 현대화가들은 이러한 환영의 세계를 파괴하거나 부르주아 사회현실로부터 고립하여 자율적 예술 세계를 주장하거나 내면의 주관적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이들이 부르주아 사회에 대해 취한 태도에 따라 다양한 모더니즘 유파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다이즘은 부르주아 사회의 규범과 가치관을 풍자, 조롱하고 파괴함으로써 전후의 허무감을 표현한 반예술운동이었다. 다다이즘의 화가인 마르셸 뒤샹, 만 레이 등이 영화감독 르네 클레르와 함께 만들었던 작품 <막간 Entra՛cte> (1924)의 주제는 다다이즘의 이념을 영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 작품이다.

표현주의와 추상주의는 모더니즘의 또 다른 주요한 경향들이지만 이것들은 프랑스 보다는 독일에서 주도적으로 전개된 예술 운동이었다.

표현주의 역시 부르주아 사회의 불안정한 사회상을 반영한 입장인데 그것은 불안감, 무절제, 폭력성, 강렬한 감정의 세계를 표현했다. 그러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시각적 양식으로서는 날카로운 대청각, 대담한 대각선, 강하고 대비적인 조명과 그림자, 과도한 분장, 인공적 세트의 사용, 전설적이고 통속적인 소재 등을 선호했다. 작품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19)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추상주의는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거부와 무관심 그리고 단절을 통해 예술을 삶과 분리시킨다. 따라서 추상주의 예술은 자기 충족적인 미를 추구함으로써 자율적 예술을 주장한다. 추상미술과 마찬가지로 추상영화는 현실적 삶에서 소재를 가져오지 않고 선, 색, 형태 같은 시각적 요소 그 자체의 유희적 세계를 통한 음악성을 추구한다. 추상영화가 움직임과 리듬감을 중시함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추상주의 화가인 한스 리히터Hans Richter와 바이킹 에겔링Viking Eggeling의 <리듬21Rhythmus 21> (1921)과 <대각선 심포니Diagonal Symphony> (1921~1924)는 추상주의 영화의 대표작이다. 추상주의의 다른 한 갈래인 큐비즘은 움직임 속에서 대상을 파악하고자 부르주아 시각양식인 단일한 원근법 대신 다면적인 시점을 동시에 시각화했다. 큐비즘은 진정한 실재는 변화하는 움직임 속에서 존재하고 우리는 그 변화를 응시함으로써 실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획득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표적인 큐비즘 화가인 피카소는 큐비즘영화 제작을 계획했었다.

큐비즘과 더불어 미래주의도 근대산업 사회의 과학적 기구물과 산업기계, 자동차와 같은 대상물을 통한 힘과 역동성을 발견하고 움직이는 그림으로서 그러한 특성을 구현한 영화작품을 제작했다.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기계적 발레 Ballet Mecanique> (1924)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1920년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와 관련된 현대미술의 모더니즘 유파를 개괄적으로 살펴 보았지만 진정한 프랑스적 모더니즘 이념은 인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상주의는 모더니즘의 근본적인 미학적 이념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의 중심된 미학적 이념이기도하다. 현대미술사적 견지에서 현대 모더니즘 미술의 출발점이기도 한 프랑스 인상주의는 마네와 모네 그리고 세잔느의 작품들로부터 비롯되는데 추상주의와 큐비즘 그리고 미래주의도 바로 이들 작품으로 부터 유래된 유파에 다름 아니다.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의 전형적인 미학을 인상주의라고 할 때 여기서의 인상주의는 19세기 유럽을 지배했던 예술사조인 낭만주의로부터 유래한다. 과학적 지식의 대상인 가시적 자연의 세계를 넘어선 본질적 세계에 대한 동경, 예술은 예술가의 정서의 표현이라는 관점, 상상력과 작가 개인의 재능에 대한 숭배 등은 낭만 주의 미학에 내재된 기본 내용이자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의 미학인 인상주의의 기본적 이념방향이기도 하다.

낭만주의 전통을 이어 받은 인상주의 역시 부르주아 지각이란 특정한 지각방식에 의해 재현된 세계의 허구성을 하나의 환영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인상주의는 명확한 형태와 대상 자체의 고유한 색상, 뚜렷한 윤곽선과 볼륨등의 배격, 원근법의 파괴를 통해 실재로 간주되어 왔던 대상을 부정한다. 실재적 대상을 재현하고자 하는 대신 인상주의는 감각을 통해 느낀 인상을 순수하게 현시하고자 했고 그것은 대상과 시각 사이의 빛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인상주의자들은 이처럼 시각과 대상과의 관계를 빛으로 연결함으로써 빛의 현상에 감각적으로 민감하다. 그리하여 빛을 통한 직접적 경험은 자연현상에 대한 즉물적인 감각체험을 중시하고 재현대상이나 사실적 소재를 가능한 거세하고 순수 시각의 본성을 탐구하도록 했다.

인상주의의 이러한 미학적 이념에 따라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이론가들은 영화의 본질을 무엇보다도 빛의 예술로서 간주했던 것이다. 빛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미지가 표현하는 세계는 언어나 개념으로 이야기되거나 말해질 수 있는 문학적 세계나 연극적 세계를 넘어선 초자연적인 세계인 것이다. 이 초자연적 세계가 환기시키고 자극하는 감정과 정서의 세계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가 표현하고자 한 세계이다.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는 이러한 미학적 법칙 안에서 불투명하고 애매한 정서적 분위기와 그 리듬을 운동감과 시각적 형식 요소들을 통해 영상화하였다. 이렇게 영상화된 이미지의 세계는 언어화되기 전,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세계이기에 초자연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신비감이 감도는 세계였다. 즉 언어 대신 시각적 이미지로서만 접근할 수 있는 실재의 근원적인 세계이자 신비한 세계인 것이다.


프랑스 아방가르드 이론가들이 필름 다르 운동 (Film d’Arte movement)의 연극적이고 문학적이며 언어적인 것과 다큐멘터리 영화나 스펙타클한 영화 그리고 사실주의적 영화를 배격하는 입장도 이러한 그들 미학의 관점에서 연유된다. 가시적인 자연세계를 넘어서서 초자연적인 신비한 세계로 그리고 그러한 세계를 통한 정서와 감동의 세계 나아가 인간의 영혼에의 접근은 바로 프랑스 아방가르드의 중심된 미학이론인 포토제니론 (Theory of Photogenie)의 기본 입장이다. 포토제니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던 루이 델뤽에 있어 그것은 곧 영화의 법칙이었으며 장 엡스탱에게 있어서는 영화의 순수한 표현을, 르네 클레르에 있어서는 리얼리즘의 모든 사항들을 신비한 영역으로 확대한 초자연적 세계를 의미했다.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이미지는 이처럼 초자연적 신비한 세계와 인간영혼의 세계를 인간의 내적 흐름 속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것이었다. 이 세계를 초월하고 있는 신비하고 측정 불가능한 측면이 결국 영화 이미지를 활성화시키는 힘이 되도록 했다. 따라서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기법은 이러한 입장에서 창출된 것들이었다.

일상적인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과는 다른 지각방식인 아방가르드 기법들은 우리들의 자연적 지각방식을 왜곡시키는 것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이중인화 (Superimposition), 프리즘적이고 만화경 같은 이미지 (prismatic & kaleidoscopic image), 소프트 포커스, 특이한 카메라 앵글, 왜곡된 카메라의 움직임과 노출, 극단적 클로즈 업, 네가티브 이미지, 역회전 장면, 픽실레이션 쇼트 (pixilation shot), 저속·고속 촬영, 깜박 효과 (flicker effect), 타임 랩스 (time laps) 등이다. 이와 더불어 개별적 독립장면의 옵티칼 편집,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운동감, 운동감이 산출한 리듬감은 빛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향악으로서 음악적인 것을 통해 내면세계의 흐름을 포착하도록 해 준다.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를 빛으로 쓰여진 시각적 교향악, 즉 시네포엠 (Cine poem)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포토제니 이론과 더불어 주장된 리듬론과 운동론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이론들이다.

리듬론을 주장한 레옹 무시낙Léon Moussinac은 영화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리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이 리듬은 이미지의 연속중에 존재하는 것으로 쇼트 내 대상들의 연속에 의해 만들어진 리듬보다는 시각적 표현요소의 결합에 의해 만들어진 외적 리듬을 우선시 한다. 영화에 있어 운동의 리듬으로 일어나는 감동만이 근본적인 것이고 내적 세계를 영상화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제르맹 뒬락Germaine Dulac의 운동론의 기본입장 역시 운동의 표현은 리듬에서 야기되고 리듬은 물질적 요소와 감정적 요소에 의해 만들어지는 운동의 전개로 규정된다. 영화의 움직임은 생명이 있지 않으면 안되고 시간에 한정되지 않으면 안되고 초자연과 꿈의 세계로 넓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르네클레르의 순수영화론은 인생과 꿈, 지각되는 것과 지각 되지 못하는 것과의 위대한 융합을 영화라는 매체가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와 같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이론가들의 기본 논점은 움직이는 역동성 (Kinetic Dynamism)을 중요시 하는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의 또 다른 측면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포토제니론이나 운동론, 리듬론, 시각우선주의 등이 20년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 전기에 해당되는 인상주의 입장의 미학이라면 초현실주의 입장은 후반기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를 이끌었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는 부르주아 사회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를 대신에 무의식과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 지배하는 비이성적 세계를 표현대상으로 삼았다. 초현실주의는 이러한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부르주아 사회의 위선과 이념의 허구성을 공격하고 충격을 주기위한 시도를 했다.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던 초현실주의는 자동기술법과 연상주의 기법을 통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를 영상화했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루이 뷔뉘엘 감독이 공동으로 제작한 <안달루시아의 개> (1929) 가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지금껏 살펴 본 대로 20년대 프랑스 영화계는 현대미술과 결합한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으로 화려한 예술영화의 시대를 꽃피웠지만 유성영화시대의 도래로 인한 시각적 표현요소의 쇠퇴, 영화장르가 본격적인 대중오락 상품으로 편입되는 영화계의 변화, 집단제작 방식과 개인예술가의 창조적 작업방식과의 위화감, 아방가르드 영화를 위한 전문관객층의 제한, 재정후원자의 문제 등으로 많은 현대화가들이 영화계를 떠났다. 그러나 이들이 이룩했던 영화미학이론과 시각양식의 창조는 30년대의 시적 리얼리즘영화, 50년대의 작가주의 이론 그리고 미쟝센 스타일을 중시 하는 현대 프랑스 영화의 전통을 확립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글은 미술세계, 1997.3, 80-85 (6pages)에 실린 글이다. 영문표기 오류를 제외하고 게재된 글을 수정하지 않았다. 도판은 웹의 성격에 맞게 온라인에 있는 동영상으로 대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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