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들기를 관두다 / by EXiS

김점선

그림만 그리면 안 되냐? 영화는 안 만들어도 되지 않겠니? 이 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선 채, 바닥에 널브러져 누워있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안돼! 둘 다 해야 해!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나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는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이 장면이 영원처럼 기억되어있다. 이십 대의 김점선이 엄마라는 한 사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사람을 향해 그렇게 소리 질렀다.

나는 교육공학과에 다녔다. 대학진학을 위해서 대학안내를 샅샅이 읽었다. 교과과정을 면밀히 읽고 나서 교육공학과를 택했다. 기본미술이라는 과목과 영화 만들기가 교과과정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러니까 나의 18세에 내린, 내 인생에 대한 선택이었고 결론이었다. 당연히 영화를 공부시간에 많이 보았다. 극장 상영영화가 아니라 특수한 영화를 수업으로 많이 보았다. 그리고 또 당연히 대학 재학 중에도 영화를 만들었다. 수업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거기다 더해서 혼자서 더 깊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도서관에서 영화 관련 이론서는 마니아처럼 읽어댔다. 물론 영화관이나 문화원에서도 영화를 많이 보았다. 특별한 점은 극장에서 쫓아내지 않으면 마지막 상영까지 줄창 본다는 것이다. 첫 상영부터 대사를 거의 외우고… 배경이나 소도구까지를 다 기억하면서… 물론 하루종일 극장 안에서 거의 굶으면서… 혼자서…

나는 여행을 싫어한다. 여행할 시간과 돈이면 영화를 보거나 만들지… 당연히 졸업여행도 안가고 그 시간에 영화를 만들었다. 혼자 놀면서 땅바닥에 딛고 있는 내 발과 운동화 같은 걸 높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양과 병치시키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하루 종일 무비카메라를 들고 교정을 어슬렁거렸다. 어느 새벽 비슷한 이른 아침, 채 아침 안개가 사라지기 전, 본관 앞을 지나 도서관 옆을 걸으면서 무언가를 찍고 있는 데 누군가가 말을 건다. 정말 짜증난다. 정말 귀찮다. 우리학교 의과대학 교수라고 자신을 설명해 대면서 어떤 사람이 그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때는 아무리 선생이어도 나를 방해하는 동물일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하찮았다.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기 생각에 빠져들어서 어슬렁거렸다. 그때는 그랬었다. 영화를 만들고, 내 생각을 심화하기 위해서 스케치하거나 생각하는 일을 방해하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증오했다. 20대의 젊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쓸림의 시간이었다. 그 시절에는 내가 하고픈 일을 할 뿐 그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심했다. 심지어는 집에 간혹 들어가면 동생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들의 서열까지 헷갈릴 만큼 무심했다. 한 번에 한 명이 나타나면 동생이구나 하고 알아채는데 두 명이 나타나면 누가 위인가 하고 머뭇거렸다.

충무로에 가서 필름을 사서 썼다. 선생님이 추천한 가게에 가서 필름을 샀다. 다 찍고는 다시 현상을 맡기러 그곳에 갔다. 필름을 찾으러 갈 때는 맘이 조마조마했다. 어떤 때는 필름 한 통이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다 새까만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누구의 잘못인지가 밝혀지지 않는다. 필름을 살 때 이미 빛이 들어간 걸 샀는지? 찍을 때 내가 잘못했는지? 현상 할 때 오버했는지? 아무튼 새까만 필름 덩어리를 받을 때의 그 허무란! 이것이 영화의 치명적인 맹점이다! 라고 소리치면서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두워지면 기숙사 방 흰 벽에 필름을 쐈다. 그렇게 방안에서 혼자 보면서 편집을 했다. 영화가 만들어지면 열 명도 안 되는 친구들을 불러서 기숙사 방에서 상영했다. 이런 짓이 한 오 년쯤 지속하였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영화 만들기를 관둬버렸다.

처음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필름을 넣었을 때의 기분은 말을 할 수 없이 행복했다. 총알을 가득 장전한 총을 가진 군인이 이처럼 뿌듯할까? 필름 가게를 나서자마자 건너편에 서서 높이 자라고 있는 미루나무를 향해서 필름을 발사한다. 미루나무를 겨누고 쏘아대는 것이다. 찬란한 햇살을 눈부시게 반사하고 있는 수많은 미루나무의 이파리들이 질서정연하게 바람에 움직인다. 그 수많은 매스게임중인 이파리들이 나의 필름 속에서 영원히 팔랑댄다.

어떤 내 영화의 시작이 미루나무의 흔들림으로 시작된다. 필름 가게에서부터 영화를 상영하는 데까지 같이 다닌 나의 남자 친구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도입부를 결정하냐고? 그럴 때 나는 여유 있게 천천히 말한다. 아름다운 건 단번에 감이 와. 찍을까 말까는 일 초도 지나기 전에 결정이 나버려. 나의 직감은 매우 빠르게 작동하는 울트라 거든.. 히히


영화의 개념.. 김점선의

영화는 움직이는 미술이고 시각화된 문학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영화를 미술학교에 집어넣는다. 평면을 다루면서, 물감을 칠하거나 덩어리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필름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들을 다 같은 출발점에서 태어난 것 즉 넓은 의미로 미술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부른다. 김점선도 그런 생각에 동의한다. 그리하여 미술대학엘 진학하고 거기서 평면에 물감 칠하기를 하면서 동시에 필름을 가지고 놀고 싶어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야 마는 나는 곧 필름을 놀이 감으로 구한다.

필름의 종류.. 김점선이 사용한

1. 리드 필름 : 영화를 상영할 때만 필요한 투명한 필름. 릴에 감긴 영화 내용이 앞뒤에 충분히 감겨 있다. 마치 스카치 테잎 같은데, 끈적이지 않는다. 거기다 김점선은 빛이 투과되는 물감으로 온갖 짓을 다 한다. 물감을 겹쳐 칠해서, 움직이는 화면 속에서 색이 섞이는 묘한 아름다움을 즐겼다. 도저히 정지된 그림에서는 맛볼 수 없는 환희를 던지는… 살아서 날뛰는 색 점들!... 이것은 실험 미술이다.

2. 마그네틱 필름 : 영화의 사운드를 입힌 갈색 녹음 테잎이다. 70밀리 영화의 사운드 테잎은 16밀리이다. 그래서 주로 16밀리 실험영화를 만들던 나에게는 딱 들어 맞는 행운의 물체다. 여기다 못이나 핀으로 흠집을 내면 그 흠집만 빛을 통과한다. 그 흠집 자체가 살아있는 동물처럼 화면에 튀어나온다. 간혹 단어를 후벼 파 넣기도 한다. 예를 들면 - 죽은 쥐 - 껍데기 - 노란 설탕 - 이런 무의미한, 전혀 연관성이 없는 엉뚱한 단어들을 갉아 넣는다. 이것은 말 그대로 실험영화다. 보통 영화는 일 초에 열 몇 프레임이 흘러가야 인간들에게 내용이 인지된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그런데 단 한 프레임만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청중이 소리쳐 읽어댄다. - 죽은 쥐 - 껍데기 - 노란 설탕 - 여기서 증명된 것이다. 인간은 사라지는 모든 것에 결사적으로 애정을 퍼붓는다는 것을, 한 프레임짜리 영화를 보면서 그 사라지는 프레임을 소리쳐 부른다. 그리고는 그 순간에 열렬히 자신의 머릿속에 자신의 음성으로 그 한 프레임을 받쳐서 저장해 넣는 것이다. 이것으로서 광고학에서 말하는 숨은 프레임의 법칙을 증명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실험영화에서 실험했다. 상영장소인 독일문화원 강당을 때 아닌 단어들의 합창판으로 변천시키면서…

3. 낡은 광고 필름 : 편집실이나 녹음실 쓰레기통에는 버려진 광고필름이 가득하다. 적당히 집어서 불빛에 비쳐 보고는, 몇 프레임씩을 잘라낸다. 그것을 리드 필름과 마그네틱 필름과 나중에 내가 찍은 정식 필름과 적당한 리듬으로 편집해 끼워 넣는다. 난데없이 나타나는 30년대풍의 정장을 한 미국 할머니가 길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장면 같은 게 나타난다. 완전한 엉뚱이 실현된다. 쓰레기통에는 16밀리 광고 필름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쓰레기통 옆에 나 자신이 존재한 그 자체가 행운이었다. 그런 환경을 베풀어준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4. 정식 필름 : 돈 주고 사서 쓰는 제대로 된 필름. 상표는 대충 후지나 코닥, 아그파였었다. 충무로 가게에 가서 산다. 진짜로 내가 찍어서 다시 충무로로 간다. 거기서 현상된 걸 들고 편집한다. 핸드헬드로 카메라를 들고 뛰거나 걸으면서 최대한 흔들어 대는 걸 좋아했다. 이유? 있지. 길거리나 군중들이 내 맘에 안 들어서! 흐리게 만들려고! 여의도 광장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을, 카메라를 세로로 세워서 찍기도 했었다. 어떤 모르는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수직으로 뻗은 길 위를 달려 하늘로 치닫고 있었다.

 

김점선 영화에서의 음향

영화상영이 끝나고 청중들이 질문한다. 사운드는 누가 했냐고? 나는 머쓱하게 대답한다. 제가 했슴다. 그렇다. 적어도 내 영환데 내 맘대로 하지 뭐! 음향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빗소리나 거리의 소음, 아니면 책상에서 필름 통이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으로 음향을 메웠다.

그런데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 만들기를 왜 관뒀나?

이유1. 광과학자들에게 고함.. 빛을 연구하는 자들을 광과학자라고 내가 감히 부른다. 그들은 빛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빛을 담아내는 기계전문가들과 합심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눈으로 겨우 볼 수 있는 약한 빛도 카메라를 통해서 필름에 담을 수 있도록… 예민한 기계를 만들어 달란 말이다. 특수 조명을 쓰지 않고도 선명하게 찍히는 카메라를 왜 못 만드는가? 고양이는 어두운 밤에도 다 본다. 인간은 못 본다. 카메라나 필름은 인간보다 더 못 본다. 카메라는 고양이 보다 더 잘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해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기계는 이미 쓸모 있는 도구가 아니다. 이것은 현대 문명의 수치다. 어찌하여 우주여행은 꿈꾸면서 고양이 눈만 한 기능을 가진 카메라를 못 만들어내는가? 고양이 눈의 망막 같은 감도의 필름을 못 만드는가? 영화를 만들다 보면 의식을 표현할 수 없는 이런 둔한 물질을 가지고 논다는 데 대해서 절망한다. 나를 둘러싼 문명사회가 이다지도 느리게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한다. 인간의 의식을 따라오지 못하는 문명의 발전속도에 대해서 좌절한다. 그리하여 다시금 사고는 깊어지고! 다시금 언어로 표현해대는 문학의 바다에 깊이 빠져든다. 언어의 그 간편성에 깊이에 매료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매체 중의 하나, 언어! 가장 효율적이며- 언어는 어디든 가져갈 수 있게 가볍다. 영화 카메라의 무게에 비하면- , 생산적이면서- 필름도 안 넣어도, 현상을 안 해도 말은 술술 나온다, 다변적인 - 영어고 독일어고 순식간에 변환되어 술술 나오고 통한다. 표현영역이 거의 무한대인- 죽은 사람을 살려내기도 하고 일 초 만에 만리장성을 쌓기도 하고 부시기도 한다. 부가가치가 최대인 매체-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최소한 한 개의 언어는 내장처럼 몸 속에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들어있다. 그걸 쓰면 된다. 인프라가 이미 갖추어진 상태, 지구는 언어 인프라가 이미 완벽하게 깔려있다. 이런 언어를! 언어의 특성을 다시금 발견한다. 그리하여 김점선은 다시금 그 익숙한 글 읽기! 그리고 글쓰기로 되돌아가 버린다. 예를 들면---검은 벨은… 고양이 털보다 더 부드럽게 빛나고..? 이런 문장을 쓰는 데는 일 초도 안 걸린다. 그런데 이런 화면을 만들어 내려면… 우와 골치 아프다. 정말 토하거나 미쳐버릴 것 같다.

이유 2. 영화판에 대하여, 미술판에서 놀다가 영화판의 일부를 접하게 되다. 미술판이 불결하다고 느끼던 자가 영화판에 들어갔을 때! 놀라다가, 참고 참다가, 혼자 놀다가, 결국은 미련 없이 떠나는 게 곧 행복이라고 느끼다. 말은 거칠고 인생법칙이 배운 바와는 아주 다르다는 걸 매일 체험한다. 결국, 새는 알을 깨고 나가지 못하고 알을 굴려서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 덜 자극적인 곳으로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서는 오래 버티다가는 자살해 버릴 것만 같았다. 견디지 못하고.

이유 3. 엄마를 생각하다. 엄마는 별로 돈이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만드는 영화의 제작비를 엄마가 댔다. 나는 막무가내고 엄마도 그런 나를 막무가내로 밀었다. 만약 엄마가 돈을 아껴가면서 나를 지원했다면 그렇게 일찍 영화를 접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말 그대로 막무가내로 나를 지원했다. 그 점에서 감동해서 더 이상 엄마 돈을 쓰면서 실험을 해댈 수가 없었다. 나중에 나 스스로 돈을 벌면 그때 다시 실험하리라. 그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제작비를 어디서 지원 해 주는 데는 없었나?

있었다. 독일 문화원에서 한번 지원금을 받았다. 그리고 거기서 지원금으로 만든 영화를 상영했다. 돈 말고도 많은 지원을 받았다. 영화 평론가 정영일 씨가 영화를 많이 보여주었다. 신세계 백화점에서 옥상에서 상영회를 열도록 허락해 주었다. 서강대학교에서 편집할 공간과 집회할 장소를 제공했다. 대한극장 안에 있는 녹음실에서 맘껏 작업하도록 허락했다. KBS 남산 사옥 내의 백호빈 PD작업실, 유현목 감독 스튜디오도 우리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광고들이 실린 팜프랫을 봤는데

그렇다, 우리가 만든 영화를 상영할 때, 팸플릿을 만들었다. 그 팸플릿에 광고를 싣고 돈을 받았다. 오란씨나 크라운 맥주, 레스또랑 피카소, 심지어는 미원 같은 데서 광고비를 뜯어서 제작비에 보태 썼다. 광고주를 일일이 찾아다니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그런 활동을 통해서 돈은 세상에 떠 있고 붙잡을 맘만 있으면 붙잡을 수 있겠다 하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런데 할 일이 많아서 돈을 붙잡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머리를 그런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 늙어서 후회하고 자살해 버릴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돈은 많이 쌓아놓고 자살한 시체가 되는 자신이 되기는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오래 산다고 생각했다. 온 영혼과 몸을 다 바쳐서 몰두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그때도 느꼈다. 그래서 매체를 이것저것 실험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니까 영화도 만들어보고 글도 쓰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 무렵에는 어떤 매체가 나에게 가장 적합한 것인지? 무엇이 가장 나를 열광시키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방황했다. 결국은 그림으로 결정했다. 그림 하나만을 선택하고 나서 굶어 죽을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하기 싫은 일은 결코 안 하겠다는 결심으로 그림만을 그려댔다. 벼랑 끝까지 가서 매달렸다가 구조된 셈이다. 그림이 드디어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굶어 죽기 사흘 전쯤에. 마지막 남은 양식이 다 떨어지기 직전에 그림이 팔린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김점선의 영상시대!

TV에서 일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무의식중에 끌려들었을 것이다. 영상 곁으로 저절로 끌려들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 헤매고 다닐 그런 나라! 그것이 영상이다. 인간의 미래는 신비 그 자체다. 내가 어떤 형상으로 변해 나갈지는 지금의 나는 잘 모른다. 거의 무의식의 상태에서 돌아가는 카메라를 쳐다본다. 머릿속에 수많은 영상이 지나가고.. 결국은 이십 분으로 압축되어 목요일마다 상영되고.. 이런 되풀이 속에서 나는 간접 체험 한다. 간접촬영하고 간접편집하고.. 그리고 감상한다. 이것이 새롭게 나타난 나를 위한 영상 교육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영상의 흐름에 아주 익숙한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주도할 의견이 확실하게 떠오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몽골 벌판에 펼쳐진 거의 무한대의 광활한 황무지를 바라보듯이, 그렇게 나 자신의 미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