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문제 A Matter of Life and Death- 피터 체르카스키 <빛과 사운드 장치를 위한 입문 Instructions for a Light and Sound Machine>

크리스토프 후버

 

“대안 영화”라는 절망적인 꼬리표를 달고, 비참하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단편 실험영화 프로그램 말미에 포함되어 상영된, 피터 체르카스키의 17분짜리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영화의 걸작 <빛과 사운드 장치를 위한 입문>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전체 감독 주간의 하이라이트였을뿐 아니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교모한 작품 <폭력의 역사>를 예외로 둔다면) 올해(2005) 칸 영화제를 달구었던 많은 수정주의 웨스턴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앞서 만들어진 시네마스코프 삼부작 - <도착>(1997/8), <외부공간>(1999), <드림 워크>(2001) - 에서와 마찬가지로 체르카스키는 특유의 밀착인화기법(contact printing method) -노출되지 않은 생필름 위에 파운드 푸티지 수작업을 통해 프레임별로 복사하고 몇 차례의 다중노출과정을 고치면 대단히 놀라운 “핸드메이드” 효과가 얻어진다 -을 사용해 지적인 동시에 정서적으로 충격적인 효과를 창출해내고 있으며, 처음으로 공인된 고전 영화를 작품의 원재료로 사용했다. 테렌스 영의 지루하게 긴 합스부르크 멜로드라마 <마이엘링>(1968)을 영화적 스펙터클의 본질에 관한 훌륭한 2분짜리 에세이로 요악하고(<도착>), 시드니 j.퓨리의 컬트 호러물 <엔터티>(1981)을 거장다운 솜씨로 정신분석학적 텍스트로 바꿔놓은 뒤(광란적인 <외부공간>)과 보다 멜랑콜릭한 <드림 위크>, 이 두 편의 영화는 밀착인화기법의 선구자 만 레이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체르카스키는 <...입문>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석양의 무법자>(1966)를(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낭만적 서부극을 그리스 비극으로 변형” 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의 독특한 자기반영적 스타일은 체르카스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이때의 비극의 주인공 역할은 엘리 왈라치의 이미지에 할당되었다. 그러나 이전의 삼부작과 마찬가지로, <... 입문>은 또한 환희에 넘치는 동시에 불길하기도 한, 영화(cinema)에 대한 역설적인 묘비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셀룰로이드 시대의 종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작품들은 오직 필림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효과들로부터 작품의 엄청난 힘을 끌어낸다.(칸 영화제 기자회견 당시, 체르카스키는 가까운 미래에 직장을 잃게될 영사기사 및 여타 영화기술작들에게 그의 작품을 헌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낡아빠진 스크린 테스트 패턴 위로 (체르카스키의 밀착인화 필름이 흑백이라는 사실이 확실히 분위기를 더하는 가운데) 제목의 단어들이 차례차례 떨리며 나타나는 크레딧 시퀀스로 이루어진 오프닝 , 그 뒤 이어지는 <... 입문>의 첫번째 이미지는 유리창이 열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창유리에 반사되었던 바깥 풍경은 곧 방안에서 망원경을 들어올리고 있는 한 사내의 모습으로 이어진다.(이때 더크 새퍼에 의해 구성된 사운드트랙에서는 특유의 지적거리는 소리와 사막의 바람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그 사내는 관객의 대역이 될뿐 아니라(영화가 유리창을 닫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논리적 종착점에 도달할 때까지 규칙적으로 재등장하는데), 어느 정도는 존 포드와 그 자신의 차이에 대해 언급한 레오네의 재미난 금언을 떠올리게 만든다. “포드의 등장인물이 창문을 열 때 그들은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한 지평선 쪽을 바라보곤 한다. 반면 나의 등장인물들이 창문을 열 때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미간에 총탄이 박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입문>의 주인공은 곧 총격전에 휘말리게 될 운명이지만 그는 잠시 그것을 지연시키는데, 이는 죽음보다 더 지독한 그 무언가와 맞닥뜨리기 위해서일 뿐이다.


엘리 왈라치의 이미지가 무대의 중심으로 떠오르기에 앞서, 체르카스키는(언뜻 보기엔 단순한 역숏처럼 여겨지는) 흥미로운 영화적 우화를 감수한다. 마치 망원경을 통해 보여지는 것처럼, 검은 스크린 상의 작은 동그라미들이 강조되는 것이다. 곧 이러한 동그라미들은. 꼭 양립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같은 이미지 내의 다양한 요소들로 늘어난다. 이는 체르카스키의 핸드메이드 영화들에서 나타는 전형적인 효과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여타 작품들과의 명백한 차이들(다양한 수평선들과 충돌운동)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강렬하게 쿠트 크렌의 걸작 <31/75 ASYL>(1975) 및 크렌의 보다 농밀한 영화 <37/78 tree again>(1978) 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상호확산”에 대해 논한 바 있는 체르카스키는 자신의 주인공을 순환운동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정상적인” 상황하에서라면 눈에 보이지 않을 필름 스트립의 영역으로 - 말 그대로 죽음의 공간으로, 시간 밖으로 - 던져넣음으로써 상황을 더욱 강화시킨다.

종종 놀랄만한 유머감각을 보여주곤 하는 체르카스키가 레오네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멋진 시각적 개그 - 광대하고 일견 텅 비어 있는 듯한 평원의 풍경을 파노라마로 보여주다가 갑작스럽게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거대하고 클로즈 업 하는 - 를 인용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었으리란 점은 분명하다. 이처럼 무감각하면서도 지극히 위협적인 (레오네의 서명과도 같은) 클로즈업들 사이로 마을의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왈라치의 모습이 보여지고 일련의 위협적인 눈빛들이 교환된 뒤에 결국 귀를 찢을 듯한 격렬한 총성들이 들려온다. <...입문>에서의 모든 시청각적 폭발 이전에는 언제나 침묵의 순간이 존재하는데, 여기선 왈라치가 총을 재장전하는 순간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다양한 자기반영적 표지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카메라 셔터의 사운드가 기관총이 재장전될 때 나는 소리를 대신한다. 체르카스키는 어마어마한 시각적 광란을 연출해내고 있는데, 이는 수평 분할된 프래임의 사용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는 종종 목판화를 연상시키는 네거티브 이미지를 포함시키곤 하는데,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씬 시티>의 어떤 이미지보다도 훨씬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 여기선 (하나는 왼쪽을 다른 하나는 오른쪽을 겨누고 있는)두 개의 총이 지배적이다.

처음으로 스프로켓 구멍을 비롯한 외부공간의 요소들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왈라치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극도로 강조되긴 하지만, 그는 아직 데드존에까지 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조용히 손가락 사이로 앞을 바라본다. 곧이어 그는 올가미에 매달려 이를 가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이때 릴 카운트다운 화면, 무덤 속의 해골, 내달리는 짐승들 및 날아가는 새등의 영상들이 점점 빠르게 수퍼임포우즈되고 마침 왈라치가 타고 있던 말이 도망치기에 이른다. 화면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나타는 가위의 이미지 - <드림 워크>에서의 만 레이적인 대상들을 연상시키는 - 가 이미 그의 죽음을 알리고 있다. 필름 그 자체를 찢어발김으로써 유발되는 죽음, 이는 영화의 거의 정확히 중간부분에 정적을 유발한다.

그 이후, 아마도 레오네의 바로크적 취향에서 영감을 얻은 듯, 체르카스키는 ‘스토리’와 메타 의미간의 광대하고 압도적인 융합을 창출해낸다. <...입문>의 가장 놀랄만한 이미지 가운데 하나에서, 왈라치의 그림자가 땅에 떨어지고 그는 잠시 후에 레오네 영화의 잊혀지지 않는 피날레의 배경이 된, 끝없는 묘지의 바다 한가운데서 다시 일어선다. (이에 앞서 묘비를 향한 빠른 줌인이 왈라치가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이미 보여진 바 있는데, 이는 이미지의 원래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전도시키는 체르카스크의 특유의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련한 주인공은 보다 더 광대한 지옥의 풍경 위로 떨어지도록 선고받는다. 그는 수퍼임포우즈를 통해 문자 그대로 영화의 언더그라운드에 떨어진다. 묘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왈라치의 절망적인 시도는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의 존재조건과 대면하게끔 한다. 인화지시, 릴 표지, 컬러체크를 위해 붙여진 프리릴(pre-reel), 그리고 약간의 크레딧 등등, 셔터 사운드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이처럼 불가해한 셀룰로이드 묘지, (<도착>에서의 충돌하는 기차를 연상시키는) 증기기관의 운동, 혹은 니켈오데온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광란적인 시도가 이어진다. 이미지 그 자체가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버스비 버클리적인 패턴을 형성할 때, 탈출의 시도는 완전한 혼돈 속에서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셔터사운드가 마침내 사라지자 신비스러운 기호가 스크린을 채운다. 낯선 언어로 씌어진 문자처럼 보였던 이 기호는 “릴”(REEL)이라는 글자 바로 옆의 표식이었음이 곧 밝혀진다. 그리고 “시작”(start), “끝”(end) 등의 지시어들이 오버랩되면서, 영사기로부터 릴이 풀려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 과정이 점차 느려짐에 따라 왈라치의 운동 또한 점점 느려지더니 결국 이중으로 겹쳐진 묘지 - 또 하나의 묘지의 영상이 아래위가 뒤집혀진 채 왈라치의 머리 위로 불쑥 나타난다 - 의 한가운데서 멈추고 만다. 영화의 임박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원히 살아가도록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우린 이제 깨닫게 된다.


HANGJU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