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 제도비판에 대응하는 영화적 실천 -제도비판 1세대와 문자주의/상황주의 영화에서 장소화 개념을 중심으로 (1)

오준호

서론

줄리아나 부르노(Guiliana Bruno)의 저서 『대중적 친밀성: 건축과 시각예술(Public Intimacy: Architecture and the Visual Arts)』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연구 이다.

영화 이론은 전시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예술사적 담론에 완전히 개입해 오지는 않았다. 영화가 전시의 영역에서 여러모로 미술과 조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여전하다. 영화와 전시 공간 그리고 그 둘의 가능한 결합을 고려하면서 여기서 나의 의도는 간학제적 연구를 지속하고 영화와 예술 이론의 접합을 촉진하는 것이다.1)

필자는 부르노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미술에서 제도비판(Institutional Critique)에 대응하는 영화적 실천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제도비판은 “갤러리, 박물관, 출판, 개인 소장품과 같은 제도에 숨겨진 가정과 이데올로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개별 작품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분류나 유통의 프레임워크를 드러내는데”2) 관심을 두는 실천을 의미한다. 연구자에 따라 제도비판 작가로 분류 되는 작가들이 상이하나, 일반적으로 다니엘 뷔랑(Daniel Buren),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한스 하케(Hans Haccke), 마르셀 브로타스(Marcel Broodthaers) 등을 제도비판의 1세대 작가로 분류한다.

미술에서는 제도비판의 의미와 그에 속하는 개별 작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지만, 영화에서는 제도 비판이라는 개념을 통해 특정한 실천 방식을 규정하거나 작가들을 분류해오지 않았다. 짐작컨대 영화에서 제도비판적인 영화나 작가를 떠올려보라고 요청한다면, 대부분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연상이 자연스럽다면, 제도와 비판이라는 용어의 결합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술에서 제도비판의 정치적 성격은 미술에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데서 비롯한다. 따라서 제도비판적 영화를 연상할 때 떠올렸던 정치적 발언의 영화는 미술의 제도비판에 대한 적절한 연관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글은 “장소화(siting)”라는 개념을 통해 미술의 제도비판에 대응하는 영화적 실천이 문자주의와 국제 상황주의 영화에서 본격화 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미니멀리즘에서 제기된 문제를 “상황의 미학”과 “예술과 상품의 문화정치학”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이 두 문제가 제도비판과 문자주의와 국제 상황주의에서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국내에서는 다매체적인 작업을 다원예술 장르로 지칭하다가 최근에는 융합 트렌드를 반영하여 융복합 장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는 개념적으로 불명료할 뿐만 아니라 현상을 단순 기술하는 용어에 머문다는 한계가 있다. 이 글에서는 미술과 영화가 상호 침투하는 현상을 '탈-경계적'이라거나 '상호-매체적'이라 규정짓는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러한 현상이 제도비판적 실천에서부터 비롯 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미술에서 제도비판의 등장과 전개

미니멀리즘에서 제기된 문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미니멀리즘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회고가 이루어져왔다. 여기서는 미니멀리즘을 “상황의 미학(situational aesthetics)”3) 과 “예술과 상품의 문화정치학”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분석하여, 제도비판적인 성격이 미니멀리즘에 내포되어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상황의 미학

미니멀리즘은 일반적으로 시각예술에서 대상의 본질만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경향으로 이해된다. 최소화한다는 의미를 갖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와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를 작품의 기본 단위로 삼는 작가의 태도를 볼 때, 환원이 미니멀리즘의 주요 특징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할 포스터(Hal Foster)4)는 미니멀리즘이 순수한 형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환원적이라거나 논리적 구조를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관념적이라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미니멀리즘은 전시장의 조명이나 벽과 같은 전시 조건과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작품에 대한 지각이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은 관념적 의식으로서의 주체나 실재하는 대상으로서의 객체가 서로 분리된 관계가 아니라 상호주관적인 관계를 맺는 것으로 간주한다.

포스터는 미니멀리즘이 미술을 관례의 측면에서 파악하고 주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이끌었다는 측면에서 평가한다. 미니멀리즘이 상황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지각을 분석함으로써 지각의 조건으로서 전시 환경을 미술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프레임 내부에 국한되었던 미술을 프레임 외부까지 확장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안과 밖, 내부와 외부의 구분을 재규정함으로써 미술관 내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관례가 과연 '합당'한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특정한 시공간에서 작품과 관람객의 신체가 맺는 관계에 주목하여 작품의 주체로 전통적으로 상정되어 온 작가의 지위에 의문을 던진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에서 제기한 상황의 문제는 안과 밖의 문제와 주체의 문제로 세분화된다.5)

그러나 미니멀리즘에서 제기된 세부적 문제는 관람자의 경험이란 측면에서는 여전히 모더니즘의 영역에 남아있다.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작품이 미술관 내에 설치되어 전시장의 건축적 구조를 드러내던 오지인 마파(Mafa)에 설치되던 간에, 그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강렬한 시지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따라서 “강렬성으로 인하여 그 경험은 실제 시간과 공간 밖에 놓이게”6) 되어 화이트큐브라는 보편적이고 추상화된 제도공간의 경험과 다르지 않게 된다. 그리고 관람객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서 작품에 개입하더라도, 저드의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감각을 통해 주체를 투사할 수밖에 없다. “모더니스트들이 말하는 시공을 초월한 전인적 주체가 일시적 공시 조건에 반응하는 ‘잠정 적주체(contingent subject)’로 대치”7)될 뿐인 것이다.

예술과 상품의 문화정치학

포스터는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을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화8) 를 나타내는 지표로 파악한다. 대중문화와 상품생산 방식을 미술의 대상으로 포함시켜 관람객이 소비자본주의의 상품화를 역설적으로 인식하게 하기 때문이다. 팝-아트는 고급 문화로서의 미술과 하위문화의 경계를 지워 미술관으로 대변되는 예술 제도에 대한 비판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미니멀리즘은 사물성(obejcthood)9)을 강조하고, 공장 생산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물화된 사회의 시뮬라크르”10)로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한다. 포스터는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공통점으로 “수열성(seriality)”11)을 지적한다. 수열성은 자연이나 신화와 같은 미술의 전통적인 재현 대상이 더 이상 시대적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따라 미술에 도입되었다. 작품의 의미를 보증하는 세계의 중심적 가치가 와해됨에 따라 작품은 다른 작품과의 관계속에서 파악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개별작품은 “어떤 수열 속의 하나의 불연속항”12)이 되었다.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이나 머이브리지의 연속사진 등이 수열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의 고유한특성으로 수열성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이 둘을 통해서 “비로소 수열적 생산이 미술작품의 기술적 생산과 일관된 통합”13)을 이루기 때문이다.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은 수열성을 통해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 산업화가 진행된다는 것을 지시한다. 그리고 수열성에서 나타나는 반복과 차이의 논리는 현대 소비 사회에서 상품-기호의 차이를 소비하는 것과 일 치한다.14) 미니멀리즘은 예술과 상품이, 문화와 자본이 상호침투해서 더 이상 예술과 문화가 자율적이지 않음을 드러낸다. 상품이 더 이상 사용가치에 의해 생산되고 교환되지 않듯이 기호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의 표현이나 재현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다른 기호와의 차별을 통해서 가 치를 획득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지점을 통해서 미니멀리 즘이 “예술과 상품의 문화정치학”의 문제를 드러낸다고 말 할수있다.

그러나 상품-기호의 논리는 “우리의 생산 및 소비 체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사소통 체계에도 각인되어 있는 지배의 논리”15)임에도 불구하고 미니멀리즘은 지배의 논리까지 드러내지 못한다. 미술이 상품처럼 사용가치가 아닌 기호의 차이에 의해 가치를 발생 시킨다면, 이를 지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고, 코드화되며 수용되는가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미니멀리즘은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채 남겨둔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은 양가적인 의미에서 문제적이다. 미니멀리즘은 전인적 주체와 예술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통해 미술의 구성 변수를 재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멀리즘은 미술관을 이데올로기적인 장치로서 인식하지 못했고 미술의 정치경제적인 논리를 드러내는 지점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이 제도적인 틀과 경제적 논리를 간과했다 하더라도 이를 실천 대상으로 삼는 제도비판의 문제의식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장소에 대한 제도적 인식과 실천

미니멀리즘에서 제기된 문제를 미술관의 안과 밖의 문제와 주체의 문제 그리고 미술의 상품성 문제로 정리했을 때, 여기서는 제도비판 1 세대 작가로 분류되는 다니엘 뷔랑, 마이클 애셔, 한스 하케 그리고 마르셀 브로타스가 이 문제들을 각각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를 고찰해본다.

다니엘 뷔랑 Daniel Buren (1938~)

다니엘 뷔랑이 1970년, 1971년 그리고 1973년에 각각 쓴 『박물관의 기능(Function of the Museum)』,『작업실의 기능(The Function of the Studio)』,『전시의 기능(The Function of the exhibition)』이 세 편의 글에서는 뷔랑의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뷔랑은 박물관이 “미학적”, “경제적”, “신비적”인 역 할을 수행한다고 본다.16) 박물관은 작품의 특성을 식별하여 연대기로 구성하고 이를 통해 작품의 영원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박물관은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을 비교할 수 있도록 전혀 실제적이지 않은 맥락을 구성하거나, 한 작가의 작품이 다양한 차이를 갖고 있음을 강조하여 작품에 문화적이고 상업적인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 또한 관람객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무비판적으로 예술이라고 인식하게 하여 예술은 자기 충족적이라는 이상주의적 태도를 강제한다. 따라서 박물관은 작품의 실제적인 시간성과 장소성을 삭제하여 예술에 대한 이상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인 태도만을 수용하는 예술의 “도피처(refuge)”17)가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술가의 작업실은 박물관의 작동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박물관이 실제 시간과 장소에서 분리된 작 품에 작가 이름을 라벨로 붙여 유통시키는 소비 공간이라면 그 소비를 위해 운반 가능한 작품을 생산하는 개인화된 공간이 작업실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작업실은 어떤 작품 을 실패한 작품이나 진행 중인 작품과 비교해서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뷔랑은 이제 작업실이 큐레이터와 비평가의 선택을 위해 작품을 진열하는 공간이 되었다고 본다.18) 마찬가지로 전시는 작품을 상품으로서 고객에게 진열하고 소개하기 위해 작품의 배치, 관객의 동선, 조명의 효과 등을 통제하여 효과를 극대화하는 제도이다.19) 뷔랑은 제도를 장소의 특성을 소거하여 탈장소적으로 만드는 제작, 수집, 보관, 전시 등의 관례라고 인식한다. 따라서 뷔랑은 제도적 경계로서 미술관을 벗어나 작품에서 실제 장소의 맥락을 복구하는것을 통해 안과 밖의 문제와 상품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뷔랑은 대량 생산된 폭이 8.7 센티미터의 단색 줄무늬 패턴을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해왔다. 이는 미니멀리즘의 공장생산 방식을 떠올리게 하지만 뷔랑의 지향점은 기본 단위의 반복적 배열을 통해 지시성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뷔랑은 특정한 장소와 상황을 참조하여 비예술적 사물과의 관계를 작품의 형식과 내용으로 삼고자 했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을 “현상에서(in situ)”라는 용어로 설명 하였다. 뷔랑은 거리에 설치되거나 샌드위치맨이 달고 있는 광고판 그리고 지하철이나 돛단배와 같은 교통수단과 같은 비예술적인 장소에 반복적인 줄무늬 패턴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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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venir Photo : « Voile/Toile – Toile/Voile », situated work, lac de Grasmere, Grande-Bretagne, 1975-2011   © Daniel Buren / ADAGP, Paris.

Souvenir Photo : « Voile/Toile – Toile/Voile », situated work, lac de Grasmere, Grande-Bretagne, 1975-2011

© Daniel Buren / ADAGP,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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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뷔랑이 1975년에 처음 선 보인 <돛/캔버스, 캔버스/돛(Voile/Toile, Toile/Voile)>의 기록 사진이다. 1975년에 처음 선보인 이후 최근까지 다른 장소에서 반복 적으로 실행된 작업으로서, 두 상태가 시간 순으로 연결된다. 첫 번째 상태는 아홉 척의 배에 서로 다른 색상 줄무늬의 돛을 달고 강이나 호수에서 경주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상태는 이 경주에서 배가 들어온 순서대로 해당 돛을 전시장에 배열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뷔랑이 어떻게 비예술적 장소와 전시 장소의 이분법을 극복하는지를 보여준 다. 뷔랑은 돛이라는 동일한 사물이 어떤 맥락에 노출되는 가에 따라서 그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을 드러낸다. 돛이 배에 부착되어 있을 때에는 그 사용성에 초점이 부여되지만, 배에서 떼어내 전시장 벽에 부착했을 때에는 장식적이고 형태를 가진 캔버스가 된다.20) 따라서 이 작업은 미니멀리즘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캔버스에 형태를 부여한 프랭크 스텔라나 공장 생산 방식을 이용한 미니멀 작가들이 전시장이라는 장소의 제도적 맥락을 간과 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동일한 사물이 맥락에 따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차이를 갖게되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마이클 애셔 Michael Asher (1943-2012)

뷔랑이 전시 관례와 회화적 평면에 주목했다면 마이클 애셔의 경우에는 전시 장소의 공간 구조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애셔가 1973년에 밀라노에 위치한 토셀리(Toselli) 갤러 리에서 한 작업 아래 왼쪽 사진과 이듬해 로스앤젤레스 클레어 코플리(Claire Copley) 갤러리에서 한 작업 아래 가운데 사진이 갤러리의 공간 구조를 대상화하는 애셔의 초기 작업 특성을 잘 드러낸다.

 Michael Asher, Galerie Toselli, Milan, 1973

Michael Asher, Galerie Toselli, Milan,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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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셔는 토셀리 갤러리 작업에서 갤러리 벽면과 바닥 그리 고 천장에 칠해진 흰색 페인트를 벗겨낼 것을 요청하였다. 애셔는 전시장을 날 것 그대로의 표면을 드러내 전시 공간 전체를 대상화한다. 애셔는 전시장 벽면의 페인트를 제거하는 것이 회화에서 이차원 평면에 재료를 가감하는 전통적 과정을 지시하다고 본다. 또한 이차원 평면의 형태나 구조는 갤러리의 건축적 구조와 운영 방식을 함의한다고 간주한다.21) 클레어 코플리 갤러리 작업에서 애셔는 토셀리에서의 작업과 유사한 차감의 방식을 쓰면서 갤러리의 작동 방식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애셔는 전시 공간과 사무 공간을 분리하는 벽을 제거하고 벽에 있는 깨진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서 균질하고 연속적인 공간으로 변형하였다. 이를 통해 전시장에 들어온 관람객이 갤러리 관계자의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하였다. 이 작업은 갤러리가 작품의 진정한 의미와 미적 가치에 준 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 관계자가 미술 사업을 하는 공간이며 미적인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변형하는곳 임을 드러낸다.22)

한스 하케 Hans Haacke (1936~)

애셔가 갤러리 공간의 구조 분석을 통해 갤러리의 상품화 기능을 가시화한다면, 한스 하케는 갤러리에 작용하는 정 치경제적 권력을 전면화한다. 이를테면, 하케는 197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정보(Information)>전(아래 왼쪽 사진)에서 “주지사 록펠러가 닉슨 대통령의 인도 차이나 정책을 비난하지 않은 사실이 당신이 11월 선거에서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이유가 되는가?”23)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1972년과 1973년 존 웨버(John Weber) 갤러리 에서 진행한 <갤러리 관람객의 프로필(Gallery Visitors’ Profile)> <아래 오른쪽 사진>에서 “예술계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사람들의 선호도가 예술가가 만드는 작품의 종류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직접적으로 관람객에게 묻는다. 하케는 <정보> 전에서 12주 동안 진행된 투표의 결과24)를 최종적으로 공개하거나 <갤러리 관람객의 프로필> 전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25)를 도표로 만드는 등의 통계적 방식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미술관이 재정적 후원 이나 정치적 목적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작품의 가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러한 작업들 에서 하케는 관람객을 단순히 작품을 수용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만든 상황에 참여하도록 하며 동시에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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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브로타스 Marcel Broodthaers (1924~1976)

마르셀 브로타스는 허구적 박물관 작업을 통해 미술관이 서로 상이한 오브제들을 하나의 질서로 편입하여 미술사와 문화사라는 허구적 총체성을 구성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브로타스는 1968년 9월 27일에 <현대미술관, 독수리부, 19 세기 섹션(Musée d'Art Moderne, Départment des Aigle, Section XIXème Siècle)><아래 사진>이란 전시를 연 이 래로4년간위치와섹션의명칭만바꾸어서총11개의전 시를 지속했다. <현대미술관, 독수리부, 19세기 섹션> 전시는 유리창에 써 붙인 ‘미술관(Musée)’이란 단어를 통해 서이공간이미술관임을짐작할수있었을뿐,전시의구 성은 일반적인 전시와 달랐다. 전시를 구성하는 오브제들은 벽면에 기대에 놓은 사다리, “깨짐주의(fragile)”, “습기 엄금(keep dry)”과 같은 문자가 찍힌 컨테이너 상자들, 벽 면에 붙인 그림엽서들(루브르 박물관의 19세기 프랑스 회화가 인쇄된 엽서)뿐이었다. 그리고 브로타스는 슬라이더 프로젝터로 19세기 풍자화가 그랑빌(Grandville)의 그림들 이 벽면에 연속적으로 비춰지게 하였고, 미술관 창문 가까이에 작품 운송용 트럭을 주차시켰다.

 Marcel Broodthaers, Museum of Modern Art department of eagles, Section XIX Century , Brussels, 1968/1969

Marcel Broodthaers, Museum of Modern Art department of eagles, Section XIX Century , Brussels, 1968/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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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예술 작품을 규정하는 제도적 조건과 19세기에 대한 매혹이라는 브로타스의 허구적 미술관 작업의 주요한 두 측면을 드러낸다. 브로타스는 이 전시에서 일반적인 미술관의 공식적인 오프닝 구성 요소를 가장하면서도 자신의 집과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삼아,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구분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19세기 예술에 대한 브로타스의 관심은 현대미술이 현실과 유리된 기원이 19세기 예술에 있다고 보는데서 출발한다. 즉, 브로타스는 낭만적 성향, 예술에 대한 이상주의적 태도, 미술관이 부여 하는 작품의 분류 체계가 19세기의 유물이며, 예술 작품의 가치를 과대평가하여 예술을 상품화한다고 인식한다.26)
 

1972년 5월 뒤셀도르프에서 연 <현대미술관, 독수리부, 형 상 섹션(Musée d'Art Moderne, Départment des Aigle, Section des Figures)><위 사진>은 미술관의 작품 분 류 시스템과 어떤 대상을 예술 작품이라고 규정하는 권력 의 문제를 전면화한다. 브로타스는 이 전시를 경이의 방 (Wunderkammer) 혹은 예술의 방(Kunstkammer)27)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전시의 부제는 <올리고세28)부터 지금 까지의 독수리(Der Adler vom Oligözän bis heute)>로 슬 라이드를 제외한 총 266개의 독수리에 관한 품목들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총43곳의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개인 소장자에게 물품을 대여하여 전시하였다. 전시품은  게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에서부터 골동품, 우표, 전문 과학서적 등을 망라하였고 각 물품들 앞에는 “이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다”라는 글귀가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번갈아 적힌 명패가 놓여졌다.

르네상스 시대의 수집가들은 다양한 수집품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는데, 유명 작가가 만든 작품이란 이유로 예술의 방으로 보내지거나 광물이나 동식물 등은 경이의 방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수집품의 희소성이나 금전적 가치에 따라 분류 방식이 종종 바뀌었다.29) 브로타스는 서로 다른 미술관과 개인 소장자가 각자의 분류체계로 식별한 작품과 물품을 한데 뒤섞어 예술과 비예술을 구 분하고, 시간적으로 연속적인 발전인 것처럼 배열하는 체계가 가변적이고 허구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미술에서 장소화의 함의

1세대 제도비판 작가의 실천을 일별해보면, 미니멀리즘에서 제기된 안과 밖의 문제, 주체의 문제, 예술과 상품의 문화정치학의 문제 중에서 주체의 문제가 소홀하게 다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할 포스터는 “주체의 성적-언어적 구성”30)이 미니멀리즘과 제도비판에서 누락되었다고 판단하였고, 주체 구성의 문제가 페미니즘 미술과 같은 실천에 남겨진다고 본다. 포스터의 지적대로 제도비판 작가들이 미술가와 관람자를 성과 무관한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하더라도31) 미술관을 주체 형성의 이데올로기적 기구로 간주함으로써 이상적 관람자라는 계몽적인 관점의 전복을 시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포스터가 1960년대 이래로 비평 이론과 선진 미술 사이에 “기호의 구조, 주체의 구성, 제도의 장소화(the siting of the institution)”32)이라는 탐구 영역이 공통적으로 발견된 다고 볼 때, 장소(site)의 관점으로 제도비판적 실천을 규정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장소는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위치적 개념으로서의 장소(place)가 아니라 권미원이 장소 특정성의 계보로 서술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권미원은 장소(site)가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용어일 뿐만 아니라 예술 제도로 정의된 문화적 프레임워크”33)이며 “지식, 지적 교환 혹은 문화적 토론의 장(field)로서 상술되는, 담론적으로 결정되는 장소”34)라고 본다. 따라서 1세대 제도비판의 실천을 “예술 제도가 대중문화 생산에 직접 개입하는 정치 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의 교차점으로서 문제적인 장임을 드러내는”35) 방식으로 예술 제도를 장소화한다 고 정리할 수 있다.


영화의 장소화(Siting Cinema): 영화에서의 제도비판적 실천

영화에서 제도비판적 실천의 전제 조건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Stand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온라인 판은 “영화의 철학(Philosophy of Film)” 항목에서 영화에 대한 초기의 철학적 질문을 아래 와 같이 서술한다.

영화에 관한 초기 철학적 연구를 지배한 질문은 영화(cinema)-영화들(films)의 생산, 배급, 감상에 내재한 제도적 구조를 강조하는 용어-가 예술 형식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영화가 예술이라는 영광스런 호 칭을 부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영화가 전시되는 초기 맥락이 보드 빌 핍쇼(vaudeville peep show)와 서커스의 사이드쇼(side show)와 같은 장소들을 포함하기 때문이었다. 대중문화 형식으로서 영화는 저속해 보였기 때문에 연극, 회화, 오페라 등과 같은 순수예술과 동급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해보였다. 두 번째 문제는 영화가 다른 예술 형식으로부터 너무 많이 빌려온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에게, 초기 영화는 극장적인 퍼포먼스나 일상생활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36)

미술에서 제도비판적 실천이 미술관을 장소화한다고 할 때 필요한 전제는 미술관이 예술의 성소로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미적 가치를 보존하여 교양인에게 심미적, 교육적 효과를 제공한다는 견고한 믿음이다. 그러나 영화관은 애당초 예술이란 지위를 부여할만한 권능도 없었고, 영화는 생산, 유통 및 소비가 수열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품이었다. 따라서 미술에서 제도비판이 탐색한 안과 밖 그리고 예술의 상품화 문제의 전제 조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도 소위 작가주의나 예술영화라는 분류에 해당하는 작가들과 영화들이 있고, 이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씨네마테크가 운영되지만 이것을 미술의 제도비판적 실 천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미술의 제도비판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예술이라 선언하고 이를 전시하기 위한 별도의 비상업적 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미술의 제도비판적 성격에 맞는 영화를 상상해 본다면, 깐느, 베니스, 베를린과 같은 권위 있는 영화제가 어떻게 특정 영화와 감독에 작품의 가치와 작가라는 칭호를 부여하는가를 분석하는 영화 작품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아는 선에서 이러한 작품은 없으며, 또 만일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제도비판적 실천이 라고 봐야할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미술과 영화는 서로 다 른 방식으로 제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술의 제도비판에 대응하는 영화적 실천을 규정하기 위해서 미술과 영화의 제도 분석을 위한 공통 개념이 필요하다. 이 개념을 앤드류 유로스키(Andrew Uroskie)가 1960년대 확장영화(Expanded Cinema)37)를 미술관이나 영화관의 제도적 관습을 넘어 영상 매체를 재규정하는 미학적, 개념적 시도로 해석하기 위해 제안한 “장소(site)와 장소화됨(sitedness)”38)에서 빌려올 수 있다. 앞서 미술에서 제도비판의 장소화가 예술 제도에 개입하는 이해관계들을 드러냄으로써 예술 제도가 문제적인 장임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영화에서 장소화가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이해한다면 영화의 제도적 측면을 작가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했는지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자주의와 국제 상황주의 영화

유로스키는 문자주의와 상황주의 영화를 1960, 70년대 확장 영화의 기원으로 본다. 문자주의와 상황주의 영화가 영화의 기본적인 규범이라 간주되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영화 매체의 정수로 평가받는 예술영화에 대한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여 필름-설치와 필름-퍼포먼스 등을 포함하는 확장영화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39) 예술영화가 상업영화의 내러티브적 관습을 해체하더라 도, 스크린-관객-영사기의 위상학적 관계에서 스크린과 관 객을 포함하는 괄호만이 유효하다. 예술영화 관람에서 관객과 영사기 혹은 영사기사 사이의 괄호가 유효하다면 그 건 관객이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영사 사고이다. 관객과 다른 관객 사이에 괄호가 쳐진다면 둘 중 누군가는 예술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는 무례한 사람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영화도 상업영화와 같이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제도적인 관습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문자주의와 상황주의 영화는 영화를 상영하는 제도적이고 전시적인 프레임워크를 전면화하고 일반적인 극장 경험에서 무의식중에 형성된 영화의 목적과 본질에 대한 관객의 믿음을 배반 한다.40)

문자주의와 이시도르 이주

문자주의는 이시도르 이주(Isidore Isou), 가브리엘 포메란드(Gabriel Pomerand), 모리스 르메트르(Maurice Lemaître), 길 올만(Gil J. Wolman) 등이 주도하여 1946년 파리를 중심으로 등장한 예술 운동이다. 이 운동이 문자주의로 명명된 것은 시에서 의미론적인 측면을 모두 제거하고, 시를 문자로 환원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문자주의자는 문자의 시각적이고 조형적인 측면에 주목해서 고대 그리스 문자처럼 상징화된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사람이 낼수있는 소리에 주목해 문자를 음성학적 음표로 간주하였다. 시에서 문자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식은 영화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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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도로 이주가 만든 <욕설과 영원에 대한 논고(Traité de bave et d’eternité), 1951><위 사진>(이하 논고)는 이미지, 소리, 동작 등을 내러티브 전달이란 목적 아래 통일시 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요소들을 불일치(discrepant) 하게 만들어 내러티브에 종속된 감각양식(modalities)들을 분리시킨다. <논고>41)의 시작은 일반적인 극장 환경에 익숙한 관객의 기대를 저버린다. 관객은 어두운 극장에 남겨진 채로,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들 릴 뿐인 상황에 4분 정도 놓이게 된다. 이후 영화는 “원리 (The Principle)”, “전개(The Development)”, “증명(The Proof)”이라는 세 개의 장으로 전개된다.

1장은 다니엘이란 인물이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 나서 거리를 배회하는 장면과 도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이미지와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영화의 미학을 주장하는 목소리와 이에 야유를 퍼붓는 목소리들을 교차로 편집한다. 2장은 기존에 만들어진 영상들을 차용하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와 위 사진과 같이 필름의 표면 을 긁어내거나 그림을 그려서 원본 이미지를 변형하는 것 을 특징으로 한다. 3장에서는 위 사진의 오른쪽 이미지와 같이 이미지의 추상성이 강화된다. 빈 벽 앞에 서있는 문자주의 시인을 보여주고 나서 숫자, 문자와 같은 기호와 손으로 그린 추상 이미지가 전개되는데, 이와 함께 문 자주의 시인의 음성 퍼포먼스가 들린다. 이후 영화는 다시 다니엘과 이브라는 여자 사이의 이야기로 돌아가는데, 이 부분에서도 역시 전혀 내레이션과 무관한 이미지가 병치된 다.

따라서 <논고> 각각의 장은 이미지, 소리, 텍스트, 발화 등을 불일치시키는 전략에 따라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장에서는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텍스트를 극장 상영 공간에 제시함으로써 관객이 단지 보는 자가 아니라 읽는 자가 되도록 한다.42) 일반적인 상업 영화에서 소리는 컷의 연결을 부드럽게 하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데 종속되지만, <논고>에서 소리는 이미지와 분리되면서 발화된 텍스트에 집중하도록 한다. 2장에서 이미지의 변형은 삼차원적인 환영을 창출하는 영화적 이미지에 평면성 (flatness)을 가져오면서 공간의 환영을 깨트리고, 영화에서 시각의 지속성이 개별적이고 순간적인 이미지들을 통해서 구성되는 것임을 인지하게 한다.43) 3장에서는 문자주의 시에서 순수한 음성의 미학을 창출하기 위해 의미를 제거를 하는 것처럼, 필름에서 재현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필름 자 체의 물질성에 주목하도록 작가가 필름 표면에 개입한다. 따라서 이시도르 이주의 <논고>는 극장과 관객을 스크린 상에 재현된 이미지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 각양식들이 동시적으로 작동하게 함으로써 관습적인 극장 성과 관객성을 해체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체는 스크린에 은폐된 상영이라는 매개와 영사라는 행위를 주목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모리스 르메트르 Maurice Lemaître (1926~)

모리스 르메트르의 <그 영화는 벌써 시작되었나? (Le film est déjà commencé?), 1951><아래 사진>(이하 영화)는 이시 도르 이주의 <논고>의 전략을 계승하면서, 상영을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다. 르메트르도 아래 이미지처럼 필름 표면을 긁어내거나 손으로 그림을 그렸고, 이미지를 다중인화하거나 검은 프레임과 투명 프레임을 순간적으로 교차시켜 플리커(flicker) 효과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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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르메트르의 영화에 대한 핵심적인 사유는 상영에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상연 (séance de cinéma)”라고 불러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불어로 “séance”는 “앉다”를 의미하는 고어 “seoir”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로, 회의(meeting), 앉음(sitting), 연주회(session), 실행(performance), 법정(court), 심령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회합 등의 뜻을 복합적으로 갖는다. 여기서 상연이라고 번역한 것은 르메트르가 영화의 상영을 동일한 필름 릴을 기계적으로 반복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과 같이 일회적인 사건으로서 행위적이고 실행적인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르메르트에게 영화는 “특정한 시간 동안에 특정한 장소를 점유하는 공연이며, 이러한 확장된 영화적 공간과 행위적, 전시적 프레임에 관객의 주의를 끌 것”44)을 요구 한다. 르메트르의 <영화>는 상연에서 계획한 여러 설정들이 관객의 참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대로 온전히 실현된 적이 없는데, 그 계획은 책으로 출판되었고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관객이 입장했을 때, 상영관은 캄캄할 것이고 좌석을 찾는걸 도와줄 안내원도 없을것이다. 관객들은 말할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움직이는 오브제가 부착된 다수의 채색된 휘장을 추가해서 사각형의 스크린은 해체될 것이다. 관객이 앉아있는 동안 한 서부영화의 결말 장면을 보여주고 상영관의 불이켜질 것이다. 아나운서가 관객에게 상영관을 떠나라고 말할 것이다. 모리스 르메트르는 그의 영화를 옹호하는 장문의 글을 낭독할 것인데, 이 낭독은 관객의 고함에 방해받을 것이다. 필름 뭉치를 손에 들고 영사기사 나타나 감독 옆에서 서서 감독이 원래 아이디어 들과 상반되는 영화를 만들었노라고 비난하고 필름을 산산조각 낼 것이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개입해서 필름을 가능한 많이 보호하려고 할 것이다. 프로듀서는 영사 기사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극장 밖으로 그를 쫒아갈 것이다.45)

1) Giuliana Bruno, 『Public Intimacy: Architecture and the Visual Arts』, The MIT Press, 2007, p.5

2) Ninzan Shaked, 『Institutional Critique』, Grove Art Online, Oxford Art Online,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http://www.oxfordartonline.com/subscriber/article/grove/art/T2086985

3) 빅터 버긴(Victor Burgin)이 『스튜디오 인터내셔널(Studio Internationa l)』에서 처음 사용했던 용어로, 오브제가 지각되는 조건이나 과정에 주목 해서 경험적이면서 일시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관심을 두는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4) 할 포스터는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로 비평가와 예술사가이다. 포스터 의 주요 관심사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아방가르드의 역할이다.

5) Hal Foster (조주연 옮김), 『실재의 귀환』, 경성대학교 출판부, 2012, p.83-94

6) 윤난지, 『특정한 물체의 불특정한 정체: 도널드 저드의 예술-상품』, 미술사학, 제24호, 2005, p.163
7) 윤난지, 위의 글, p.164
8) 물신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노동의 진정한 가치가 상품적 가치로 전도되어 노동이 착취되고 소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9) 대상성, 물체성, 오브제성이라고도 번역된다. 마이클 프리드는 『예술과 사물성(Art and Objecthood)』에서 저드, 모리스, 스미스와 같은 미니멀리즘 작가들을 실재주의자(Literalist)라고 규정하며, 이들이 회화적 인 형태가 아니라 사물 자체의 형태(사물성)을 옹호함으로써 작품을 사물로 전락시켰다고 말한다.

10) 유현주, 『팝아트 이후, 현대미술의 소통가능성: 아도르노와 보드리야르의 시각에서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중심으로』, 현대미술학 논문집 제 15권, 1호, 2011, p.195

11) 연속성이라고도 번역된다. 수열성은 미술의 독창성이나 고유성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앤디워홀의 작품처럼 기계로 동일한 이 미지를 반복적으로 찍어내거나 미니멀 작품처럼 최소 조형단위를 반복 해서 구성하는 특징을 지칭한다.

12) Hal Foster, 앞의 책, p.121
13) Hal Foster, 위의 책, p.121
14) Hal Foster, 위의 책, p.117-128
15) Hal Foster (조주연 옮김), 『미술, 스펙터클, 문화정치』, 경성대학교 출판부, 2012, p.313

16) Daniel Buren, 『The Function of the Museum』, in Alexander Alberro, Blake Stimson (eds.), 『Institutional Critique: An Anthology of Artists’ writings』, MIT Press, 2011, p.102
17) Daniel Buren, 위의 글, p.105
18) Daniel Buren, 『The Function of the Studio』, in Alexander Alberro, Blake Stimson (eds.), 앞의 책, pp.110-117
19) Daniel Buren, 『The Function of an Exhibition』, Studio International, 186, 1973, pp.216-221

20) Anne Rorimer, 『New Art in the 60s and 70s: Redefining Reality』, Thames & Hudson, 2001, pp.249-251

21) Michael Asher, 『september 21-october 12, 1974, claire copley gallery, inc., los angeles, california (1974)』, in Alexander Alberro, Blake Stimson (eds.), 앞의 책, p.153

22) Michael Asher, 위의 글, p.152

23) 주지사 록펠러는 MOMA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재선 운동 당시에도 이사진에 속해 있었다. 넬슨 록펠러는 “내가 예술을 감 상하는 태도는 심미적인 것이다”라고 표명했지만, 미술관을 후원하는 것 의 정치적, 경제적 홍보 효과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24) 이유가 된다는 응답이 총 25,566,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총 11,563이었다.

25) 재정적 후원이 미술관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30%가 매우 영향을 준다고 응답하고 37%가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답했으며, 9%만 이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Haccke, H., 『The Constituenc y』, in Alexander Alberro and Blake Stimson (eds.), 앞의 책, p.157

26) Douglas Grimp, 『This is not a Museum of Art』, in Michael Comptono et al., 『Marcel Broodthaers』, Walker Art Center, 1989, p.79

27) 르네상스 시대에 왕이나 궁전 귀족들은 경이의 방이나 예술의 방이라는 개인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수집품은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물 체들 중에서 진귀한 것들-예를 들면, 미라의 두개골이나 인어의 손, 신 세계에서 온 광물이나 동식물 등-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두갑,『경이 와 호기심, 그리고 자연사 박물관』, 인문예술잡지 F, 9호, 문지문화원 사이, 2013, pp.31-41 참조

28) 올리고세는 점진세라고도 하는데 지질시대 구분 중의 하나이다. 약 3800만 년 전에서 2,500만 년 전까지의 시기로 이 시기에 격심한 융기 로 인해 현재와 같은 산맥이 형성되었고 바다에 서식하는 조개류가 번 식하였으며 독수리의 조상이 되는 원시조류가 등장하였다.

29) Deborah Schultz, 『Marcel Broodthaers: Strategy and Dialogue』, Peter Lang, 2007, pp.165-170

30) Hal Foster (조주연 옮김), 『실재의 귀환』, 경성대학교 출판부, 2012, p.115

31) Hal Foster, 위의 책, p.116

32) Hal Foster, 위의 책, p.19. 이탤릭으로 표기된 부분은 책에서 “장소 선정”이라고 번역한 siting을 장소화로 대체한 것이다. siting에 대한 적절 한 용어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소 선정”이라고 번역한 역자의 고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의 장소 선정”은 제도가 물리적 장소를 선택한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비가시적 제도를 특정 장소의 맥락에서 구체화한다는 의미를 갖기 힘들기 때문에 여기서는 장소화로 대체해서 사용한다.

33) Miwon Kwon, 『One Place After Another』, The MIT Press, 2004, p.13 34) Miwon Kwon, 위의 책, p.26
35) Alexander Alberro, 『Institutions, Critique, and Institutional Critique』, in Alexander Alberro and Blake Stimson (eds.), 앞의 책, p.7

36) http://plato.stanford.edu/entries/film/

37) 진 영블러드는 1970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확장영화(Expanded Cinema), 1970』에서 비디오, 컴퓨터, 홀로그래피와 같은 새로운 미디 어 기술이 불러온 새로운 지각 경험과 인식의 변화에 부합하는 영화를 확장영화라고 본다. 새로운 미디어 기술은 즉각적이고 동시적인 시청 각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현대의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지각적, 인식적 복잡성을 반영할 수 있고 따라서 삶과 예술을 통합할 수 있다 는 것이다. 그러나 확장영화에 대한 진 영블러드의 정의는 시각 예술 에서 매체가 확장되거나 상호매체적인(intermedial) 측면만을 부각하기 때문에, 미디어 기술의 혁신과 예술적인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결여하고 있다. 진 영블러드의 정의는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비판 의 대상이 되었고, 확장영화로 분류되는 작품들을 면밀하게 연구하여 확장영화 내에 존재하는 상충되는 개념들과 실천을 드러내왔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확장영화는 대게 진 영블러드의 정의에 따라 통용된 다. 예를 들면, “1960년대 이후 영화의 개념은 확장돼 환경, 미디어, 기술, 공학, 등의 개념과 융합되는 현상을 보입니다. 예술의 개별 장르는 경계가 없어지고 음악,미술,문학,영화,연극,무용 등 모든 예술이 복합화됐습니다. 확장영화란 그러한 미디어복합 현상을 실험영화계에 서 지칭하던 용어”라는 식이다. 확장영화의 개념과 실천에 대한 면밀한 연구는 추후에 논문으로 정리하여 발표하고자 한다.

38) Andrew Vincent Uroskie, 『Between the Black Box and the White Cube: Warhol, Expanded Cinema, and the Emergence of the Moving Image in American Art, 1963-1965』,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Ann Arbor: ProQuest/UMI, 2005. (Publication No.3275678), p.21

39) Andrew Vincent Uroskie, 『Beyond the Black Box: The Lettrist Cinema of Disjunction』, October 135, Winter 2011, p.48 40) Andrew Vincent Uroskie, 위의 글, p.43

41) 여기서 기술하는 <논고>는 1951년 깐느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120분 버전이 아니라 미국에서 배급할 때 레이몬드 로하우어(Raymond Rohauer)가 재 편집한 77분 버전이다.

42) Andrew Vincent Uroskie, 앞의 글, 2011, p.26 43) Andrew Vincent Uroskie, 위의 글, 2011, p.32
44) Andrew Vincent Uroskie, 위의 글, 2011, p.37

45) Maurice Lemaître, 『Le film est déjà commencé? : séance de cinéma』, in A. Bonne, 『Encyclopédie du cinéma』, Andrew Vincent Uroskie, 위의 글, 2011, p.41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