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혹은 아방가르드의 실질적 현현*

서현석

수행성에 관한 논거를 전통 다큐멘터리가 아닌 아방가르드 예술의 영역을 통해 진행하는 것은 그만큼 다큐멘터리라는 영역이 다원적이고 다차원적인 영향을 통해 발전해 왔고, 두 영역 간의 상관성이 역사적으로 언제나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라는 영역은 다양성과 변화를 포용하는 유기적인 것이지만, 시대와 관점을 관통하는 하나의 본질에 가까운 정체성이 있다면 ‘현실’과의 결연일 것이다. ‘현실’은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이자 최종적인 지향점이다. 다큐멘터리가 수행하는 수사의 기반이자, 윤리의 근원이다. 이로 인해 다큐멘터리는 영상 매체가 연루되는 다른 형태의 창작 행위로부터 명확하게 구분된다. 사진적, 영화적 이미지의 현실에 대한 지시index적인 기능은 기호적 특성을 넘어서는 하나의 묵직한 사명감이 되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주체에 주어졌다. 그 무게로 인해 다큐멘터리는 ‘허구’라는 작위성의 영역과 결별할 뿐 아니라, 허구가 동반하는 담론의 방식과 소통의 장으로부터 멀어졌다.

보다 근원적인 담론에 의한다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능동적 참여는 다큐멘터리가 아방가르드와 공유하는 본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과의 결탁은 오히려 역사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아방가르드로부터 멀어지게 한 단서가 된 것이 사실이다. 두 영역 간의 간극이 멀어진 이유 중에는 20세기에 모더니즘의 문맥에서 아방가르드가 현실에 대한 참여보다는 매체의 특수성에 대한 탐구와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믿음에 치우치게 된 배경이 포함된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1차 대전 이후에 개념적인 성숙을 거쳐 아방가르드가 쇠퇴하고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는 1930-40년대에 정치적,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역사적 ‘현실’에 대한 충실함이 요구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저널리즘의 발달과 시민운동의 확산에 의한 공공성의 확장이 다큐멘터리의 지향점으로 강화되었다. 역사적, 사회적 ‘현실’에 대한 충실함을 통해 다큐멘터리는 미학의 영역으로부터, 예술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모더니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결별이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을 규정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기반으로 작용하였으며, 이로 인해 형성된 시대적 담론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즉, 다큐멘터리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에서 빌 니콜스가 지적했듯, 다큐멘터리는 예술이나 오락보다는 “과학, 경제, 정치, 외교, 교육, 종교, 복지” 등 근대 사회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기능적 체계에 근접한다. 다큐멘터리는 “도구적 권력”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근엄성의 담론discourse of sobriety”으로 이해되어 온 것이다. 근대 시민사회가 부여하는 사명감을 공유함으로써 다큐멘터리가 갖게 된 “근엄한 태도air of sobriety”야말로 그를 규정하는 기반이자 그를 지탱하는 담론적 모체가 되어 왔다.

때문에 다큐멘터리는 그것의 당위성에 대한 척도로서 항상 윤리적 관점을 동반하고 요구하였다. 이러한 속성은 좀 더 ‘미학적’으로 여겨지는 다른 형태의 영상, 이를테면 극영화나 실험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아트 등과 좀처럼 공유되지 않는 특수한 것이다. 극영화만 하더라도, 영화 이미지의 현실에 대한 지시적 기능을 기반으로 발달했음에도, 그것이 일차적으로 ‘지시’하는 ‘현실’을 처리하는 방식은 언제나 창작 주체의 상상적 발상과 창의적 표현력, 혹은 ‘스타일style’의 문제로 귀착되었다. 반면 다큐멘터리의 ‘스타일’은 그것이 지시하는 세계의 현상들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목적에 의해 언제나 가려졌다. 니콜스의 말대로, 극영화의 리얼리즘이 언제나 ‘미학’의 문제였다면, 다큐멘터리는 ‘윤리학’에 귀속된다. 미적 체험보다는 지식의 추구가, 정서보다는 이성과 논리가, 그리고 동화와 몰입보다는 냉철한 거리감이, 다큐멘터리의 존재론적 기반으로 우선시되어 온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근본적인 힘은 미학적인 힘이 아니라 사회적인 힘”이라는 그리어슨의 1939년의 제언은 일찌감치 다큐멘터리가 동반하는 정서를 함축, 예견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술의 영역과 다큐멘터리의 영역은 서로 공유되지 않는 지각과 소통에 관한 문제의식의 차이에 의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 그래 왔다. ‘미학’은 오랫동안 다큐멘터리에서 유지되어 온 금기이자 타자성이며, 이러한 금기는 ‘윤리’라고 하는 오랜 초자아적 권위에 의해 지속되었다. 다큐멘터리를 예술의 한 영역으로 규정하는 관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국지적이었다.

 

사회적 현실에 대한 열정: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의 공통적 유전자

이와 같이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 간의 개념적인 간극은 넓은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지만, 두 영역의 역사와 개념적 근원을 추적한다면, 그 동질성은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현실’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나 ‘실천’적 과정을 지향한다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 이는 시대적으로 형성된 이념적 동질성이었다. 심지어 다큐멘터리의 기원에는 아방가르드의 이상이 짙게 깔려 있다. 다큐멘터리가 초기에 지향한 바는 아방가르드의 근원적 목적의식의 또 다른 형태였던 것이다.

‘아방가르드’의 실천적 의미는 그 어원에도 내재되어 있다. ‘척후병’을 뜻하는 군사용어로서의 본래 의미가 정치적인 은유로 사용된 계기는 프랑스 혁명으로, 앙리 드 생시몽Henri de Saint-Simon과 그의 제자인 올린데 로드리게스Olinde Rodrigues는 예술가의 역할을 표현하기 위해 이를 활용한 가장 선구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1825년 “예술가, 과학자, 그리고 생산자L’artiste, le servant et l’industriel”라는 글을 통해 예술이야말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즉각적이고 빠른 “대중의 아방가르드”라 표현했던 것이다. 그 후 19세기에 걸쳐 ‘아방가르드’는 언제나 급진적인 정치적 목적과 연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1878년 미하일 바쿠닌Mikhail Bakunin이 스위스에서 『아방가르드L’Avant-Garde』 라는 제목으로 저널을 발행하면서 이 용어는 구체적으로 예술에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바쿠닌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구체화된 아방가르드 예술의 정신은 “현대 문명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적대감”이다. 부르주아 미학의 물질주의적 기반과 미적 가치 및 사회 조직과 위계질서에 대한 허무주의적 비판의식은 이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대안의 추구와 맞물려 나타났다. 통합적 사회 논리에 대항하는 대안적 전형으로 바쿠닌의 제안한 지향점은 문명 이전의 원시성, 혹은 문화적 ‘이타성alterity’이었다. 이른바 ‘원시주의primitivism’로 일컬어진 타 문화에 대한 낭만주의적 관심은 권력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을 위한 공동체적이고 제식적인 행위를 모델로 삼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성품보다는 과정으로부터 창조적 가치를 찾으려 하는 태도 역시 바쿠닌의 원시주의로부터 파생되었다.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목적성이 다큐멘터리의 기원에 녹아 있는 것은 직접적인 영향에 의한 것이다. 영어권 문화에서 ‘다큐멘터리’라는 개념의 근원으로 인정되는 존 그리어슨의 글, 즉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 감독의 <모아나Moana>(1926)에 대한 평론이 발표된 때가 영화의 제작 방식과 미학적 근원에 대한 성찰이 고조에 이른 시기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즉, 1차 대전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의 파장이 영화에까지 미침으로 인해, 지난 20여년에 걸쳐 산업화되어 온 영화의 미학적인 경직성에 대한 반향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던 바로 그 무렵 다큐멘터리의 태동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1920년대에 걸쳐서 유럽에서는 영화의 미학에 대한 실험적 대안의 다양성이 폭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추상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영화 이미지의 즉각적인 지시적 기능을 배제한 발터 루트만Walter Ruttmann, 바이킹 에겔링Viking Eggeling, 한스 리히터Hans Richter절대영화absolute film로부터, 다다Dada의 역동성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만 레이Man Ray,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루이 브뉘엘Luis Buñuel,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등의 초현실주의적 도발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은 기존의 산업화된 극영화에 대한 반향적 파장을 이루었다.

Dziga Vertov, <Chelovek s kino-apparatom>(1929)

Dziga Vertov, <Chelovek s kino-apparatom>(1929)

이들이 추구한 태도와 형식은 각자 달랐지만,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한 가지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었다면, 영화의 미학이 지나치게 문학과 연극에 의존하고 있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었다.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카메라를 든 사람Chelovek s kino-apparatom>(1929)의 도입부에 나타나는 친절하고도 도발적인 안내, 그러니까 “이 영화는 자막 없이, 시나리오 없이, 연극적 보조 장치 없이 만들어졌다”는 선언은 영화의 미학적 ‘독립’을 위한 열정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인물, 성격, 사건 등과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서사적 형식을 배제할 뿐 아니라, 산업화된 영화가 구축했던 환영적illusionist 기반, 즉 영화에서 묘사되는 상황이 작위적으로 연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지시적인 기능의 강력한 자력으로 인해 허구성을 망각하게 되는 현상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중요한 사명의식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이를 위해 내러티브 영화의 기반인 문학이나 연극 대신 음악이나 시, 미술 등 현실에 대한 지시적 기능에 의존하지 않는 기존의 예술 영역을 새로운 모델로 수용하는가 하면, 영화만이 가진 고유의 광학적, 기술적, 미학적 잠재력을 탐구하기도 했다. 정지된 그림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인위적으로 움직임을 연출하는 영화 장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로부터,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앞서 이미지와 이미지가 맞물릴 때 발생하는 언어적 작용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기본적 속성에 대한 사유는 새삼 창의적 발상의 신선한 원천이 되었다.

관습적인 영화 제작 방식과 그것이 의존하는 문학적 연극적 기반에 대한 반향을 구체화하는 여러 방법론 중에는 카메라의 지시적 기능에 오히려 보다 직접적으로 회귀하려는 방향성이 포함되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들이나 초기의 ‘사실영화actuality film’들이 내포했던 이동성과 기록적 기능을 포함하는 영화만의 기호적 기능이다. 말하자면, 스튜디오의 제한된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의 거친 질감을 즉각적으로 포착하는 행동주의적인 시도들이었고, 이것들이야말로 경직된 영화에 대한 과감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그리어슨이 ‘다큐멘터리적’이라 일컬은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플래허티의 <모아나>에 대한 평에서 그리어슨이 “다큐멘터리적 가치”가 있다고 경탄한 것은 바로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영화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여행록travel log’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단어를 전용하면서 그리어슨이 동조한 플래허티의 태도는 제도적 절차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의 존재론적인 역동성을 ‘몸소’ 수행하는 탐험정신이었다. <북극의 나눅Nanook of the Morth>(1922)부터 인간이 거친 자연 속에서 어떻게 생존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인 플래허티는 단지 영화의 내용만으로 이 주제의식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영화 제작을 감행함으로써 내용에 나타나는 주제의식을 체현한 것이다.

플래허티는 다큐멘터리를 개척한 선구적인 인물로 오늘날 평가되지만, 중요한 점은 그가 ‘다큐멘터리’라는 개념과 그것에 부여되는 여러 기능적 요소들을 좇아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현실 속의 실제 상황 및 실제 인물들과 교류하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도전은 곧 타성으로부터의 이탈이기도 했던 것이다. 카메라를 통해 “인간의 부동성으로부터 자신을 영원히 해방시킨다”는 베르토프의 이상은 플래허티의 실천 철학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리어슨이 다큐멘터리라는 개념을 통해 기대한 영화의 새로운 미래는 곧 플래허티가 보여준 바와 같은, 타성과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지 7여 년 만에 발표한 “다큐멘터리의 일차적 원칙들First Principles of Documentary”이라는 기념비적인 글에서 영화의 진부함으로부터 벗어나야하는 필요성과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인위적인 배경에서 연출된 이야기를 촬영”하는 “스튜디오 영화”는 영화가 가진 원형적인 능력을 망각하며, 그리어슨에게 있어서 영화만의 특별한 능력이란 “자유롭게 이동하며 삶을 관찰하고 선별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특징을 복원함으로써 영화가 상실했던 활력을 새롭게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스튜디오와 그것이 의존하는 기계적인 과정으로부터 걸어 나가 거친 삶의 현장 속에서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얻어낼 때 화면은 “특별한 가치”를 품게 된다. 실존 인물과 실재적 환경이야말로 스튜디오 영화가 얻지 못하는, 단순하고도 역동적인 영화 특유의 예술적 재료들이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변혁적 가능성은 바로 기존 산업 영화의 경직된 미학으로부터의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탈피에 있었다. 이 지점이 바로 아방가르드와 다큐멘터리가 1920년대에 공유했던 철학이자 ‘실천’이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서구의 산업화된 영화가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적인 내용을 환영(illusion)적으로 재현하고 있음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기반으로 할 때 현실을 직시하는 단순한 행위는 이미 아방가르드적 목적의식을 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방가르드가 원시주의적 정서를 안고 의존했던 이타성은 다큐멘터리 역시 타성의 극복을 위해 필요로 했던 매개이다. 다큐멘터리가 기존의 관습을 벗어던지기 위해 허물어버린 관습이라는 벽의 이면에는 문화적 타자라는 낭만적 이상이 존재했던 것이다.

오늘날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의 망각된 동질성을 재고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물론 존재론적인 근원의 담론을 복원하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담론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유동적이었는가를 인지하고, 이러한 담론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행적 다큐멘터리의 중요성은 바로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을 아방가르드와의 접점에서 다시 인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담론적 다양성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환기시킴에 있다.

 


*이 글은 EXiS2011에서 진행되었던 "대안영화 배급과 아카이브를 향한 제안" 포럼의 일환으로 발제된 것이다. 당시 발제와 토론에는 서현석, 김태연(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아카이브), 심보미(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관 운영팀 아카이비스트)와 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 캐롤라인 키, 파블리나 므라데노바가 참여했다. 단체로는 시네마 달,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씨앗',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MIA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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