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일기 영화: <월든>의 실천과 결과물 (1)

데이비드 E. 제임스 David E. James

아마추어는 이미 반부르주아 예술가이거나 반부르주아 예술가가 될 것이다.
-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바르트가 쓴 바르트Roland Barthes par Roland Barthes>(1975)
카메라를 설치하고, 태양이 사람들을 색칠할 때까지 기다리자.
-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시간 강의록> 

P. 아담스 시트니P. Adams Sitney는 자신의 선구적인 작업인 <시각영화Visionary Film>(1974)에서 미국 영화의 중요한 미학적 원동력이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있음을 밝혀내었다. 낭만주의 시인의 영향은 직접적이거나 문학적 초월주의의 전통을 경유하여 간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대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로써의 ‘예술가’라는 원형적인 상황과 예술적 실천의 범주들이 바로 이러한 전통으로부터 계승되었다. 이는 형식적으로 자주적이고 예술가 무리나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탈신화화된 근대성, 구체적으로 말해서 산업 문화가 낳는 소외 현상에 대한 완화 역할로써 제안된 유기적 통합체로써의 예술작품의 개념을 창조했다. 약 200여년간, 상업에 대한 예술의 적대적인 양상은 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들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으며, 그 둘이 상호보완적으로 인식될 때에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분열이 나타내는 문화적 탈구 현상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왔는데, 하나는 소외 현상이 대상화되는 미학적으로 독립적인 예술작품의 창조를 통해, 다른 하나는 미학의 독립성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포박된 예술의 범주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였다. 낭만주의와 다른 반-계몽주의 사상들을 이야기 해보자. 낭만주의가 본격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운동을 촉발시켰다면, 후자의 경우는 반-모더니즘 아방가르드로 이해될 수 있는데, 다다 운동이 바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았을 때 그 두 기획은 상호 양립 불가능하다. 각각의 공격 대상이 서로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 둘은 자주 겹쳤으며, 다다 운동에서조차 예술을 삶의 실천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정반대의 결과, 즉 새롭게 정의된 아름다움의 창조를 낳았던 것이다.

영화의 산업적, 자본주의적 이용의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고려해볼 때, 영화 매체를 자주적인 예술로써 창조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제작 과정의 합리화, 발전된 기술에 대한 영화의 의존, 다른 생산 형태와의 통합은 삶으로의 귀환을 어렵게 만들었다. 진정으로 대중적인 실천을 알렸다고 여겨졌던 방법들 조차도 삶의 전면에 스며든 상품 문화의 영향권 속에 자주 산업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체화된 것들로 드러나곤 한다. 예를 들어 ‘홈 무비’의 경우 광고나 사용 설명서 등 상업 영화의 코드들로 영화를 포박시키려는 것들에 의해 둘러싸여져 있다. 아마추어적인 것을 산업적인 것 안으로 견제하는 이러한 방식은 위에서 인용된 바르트의 언급에서 드러난 머뭇거림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이상주의를 폭로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상적인 영화에 대한 갖가지 개념들은 모두 상업적 관계의 밖에서의 영화 제작의 가능성으로부터 출발하는 동시에, 모든 실제적인 반-부르주아적인 실천은 산업과 아마추어, '노동과 여가'라는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구분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의 농촌에서 2차 대전을 맞이하여 뉴욕으로 이민을 간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의 일생은 그러한 이상적인 영화의 개념을 제안한다. 영화에 대한 그의 태도는 여러 개의 중복되고 상호적으로 굴절된 도식들−그가 모더니즘의 주요 서사를 살아온 방식, 시골이 도시에 의해 대체된 망명의 역사, 미국과 소련 제국주의의 대결의 틀 속에서 정체성을 구조하려는 시도, 글쓰기와 영화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 그의 족적, 대중적인 영화에 대해 그가 가졌던 헌신−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그의 참여는 그것들이 구현한 역사적 긴장관계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촉진하는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완벽했다. 그의 현실 참여는 “일기 영화” 시리즈에서 절정을 이루며, 그 영화들의 거대한 이론적 중요성은 그 영화들의 제작 동기가 되었던 메카스의 완고한 야심으로부터만 보여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예술작품에 압축된 사안들의 복잡성을 고려했을 때, 어떤 단어도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현재의 발견적 해결방법은 그것을 이중의 몸짓으로 나누어 영화 일기일기 영화라는 각기 다른 함축성으로 구분하고 있다.

“영화”를 활동의 매체 혹은 완성된 인공품으로 지명하는 말장난을 통해 이루어진 메카스의 영화 일기가 일기 영화로 변화되는 과정은 바로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반-부르주아 문화적 실천이 자신의 맥락을 협상하는 조건들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영화로 만들어진 일기는 쓰여진 일기만큼이나 저자와 일기 작성의 과정 및 순간, 이질적인 부분들의 비유기적인 조합을 특권화하며 미학적 총체성을 덜 중요시 여긴다. 그것은 마치 암호화된 일기처럼 사적인 이벤트로, 그것의 소비-특히 타인들에 의한 소비-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일기 영화는 영화들의 경제, 즉 완성된 인공품, 상영의 순간, 관객과 다양한 형태의 교환 가치를 특권화하는 경제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메카스가 자신이 전자에서 이루었던 혁신을 후자로 선회함에 따라 그의 반-모더니즘적 기획은 모더니스트 아방가르드 영화의 사회적 조건 속에서 생겨났다. 그의 영화 일기들과 그것들을 재편집하여 만들어진 일기 영화들 사이의 긴장은 그의 영화 인생 전부를 아우른다. 영화 일기는 산업적이거나 반대로 교조적으로 아방가르드 양식에 맞추어 사용하는 것을 거절하며 영화 매체의 헤게모니적 형태에 도전하는 새로운 (무)장르의 낭비와 결핍, 모순의 시작을 알렸다. 반면에 일기 영화는 타협을 수반하는 동시에 때때로 새로운 가능성들을 암시하는 공적인 맥락으로 귀환했다.

    메카스의 영화들 중 <월든 Walden (Diaries, Notes, and Sketches)>(1969)은 그의 완숙기 초반에 제작된 작품들 중 영화 일기가 일기 영화로 편집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거래의 조건들은 우리로 하여금 영화 제목의 무게에 반응하여 그 제목이 미국 내의 저항역사의 고전적인 순간에 대한 매우 세부적인 언급으로 이야기될 수 있도록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호출은 사적 문화와 공적 문화 사이의 긴장이 처음으로 기술되었던 시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썼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했던 소로의 일기와 월든이라는 제목으로 일부가 취사선택되어 출판된 형태 사이의 관계는 메카스의 영화 일기와 역시 <월든>으로 불리는 일기 영화 사이의 관계와 유사성을 띄고 있다.


Ⅰ 영화 일기

“일기, 당신의 모든 즐거움과 환희를 간직한 한 권의 책”
-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저널Journal>, 1852년 7월 13일

메카스의 <월든>과 소로의 원작인 월든은 복합적이고 복잡하지만, 그것들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자서전의 우선권에 대한 그들의 일반적인 확언이라 할 수 있다. 작가들이 자서전을 쓸 때 “단순히 다른 이들의 삶에서 들은 것을 쓰는 대신 자신의 삶을 단순하고 성실하게 구술할 것을” 요청했던 소로의 언급은 문학사에 존재하는 자서전의 방대한 양을 반증하는 한편, 영화 매체의 역사에서 자서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메카스는 여러 번 이러한 역사로부터의 탈피의 과정을 묘사했으며, 당시에 새로운 영화 형식이었던 것에 대한 그의 집착을 드러내었다. 1964년에 <군함의 영창>을 완성한 뒤, 그는 다른 영화인들과 필름 컬쳐Film Culture에서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Anthology Film Archive에 이르는 대안적인 미국 영화 기관들에 의한 노력으로 자신의 독립 장편영화를 만들려는 시도로부터 멀어진다. 이 시기에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1949년 뉴욕에 도착했을 때부터 형성된 일상의 편린들을 촬영하는 습관을 계속하였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오직 준비로만 이해했었고, 적절한 작품을 만들 시기가 오기까지 영화 매체에 대한 친숙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만 생각했었다.

당시엔 시나리오를 준비하거나 촬영과 편집을 할 수 있는 몇 달 간의 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그때 시간이 있을 때마다 짧게 촬영을 하곤 했습니다. 저의 모든 개인적인 작업은 노트처럼 되어갔습니다. 매일 매일 오늘 할 수 있을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몇 주 동안 시간을 내기 힘들 수도 있었으니까요. 10초 동안 촬영할 수 있다면 딱 10초 동안 찍었어요. 절실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 했던 거죠. 하지만 오란 시간 동안 그렇게 찍어온 영상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해왔던 것들이 연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진짜” 영화를 찍을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준비를 하고 카메라에 대한 감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죠.
<아방가르드 영화:  이론과 비평 독본The Avant-garde Film: A Reader of Theory and Critism>, 190쪽

 

화재가 이전 5년간의 작업들을 모두 파괴해버린 뒤, 메카스는 <월든>이라고도 알려진 <일기, 노트, 그리고 스케치>의 “초고” 전시를 준비한 1969년에 이르러, 이 작업 영상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변화하였다. 이전에 그가 사적이고 일시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이제 그 자신의 정당함과 목적성과 함께 인정받았고, 이전에 계속적인 연기의 잔여물이었던 것이 이제는 그 자체로써 초점 안으로 들어왔다. 이전에 메카스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장편영화를 만들기 이전까지는 오직 준비 중의 상태라고만 여겼으나, 이제 그는 자신의 일상을 촬영하는 것이 자신의 영화적 실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발견들은 60년대의 문화의 모든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예술과 삶 사이의 간극에 대한 로버트 라우젠버그Robert Rauschenberg의 작업은 추상 표현주의의 미학적 독주의 붕괴를 알린 동시에 이후 10년 간 자연의 움직임을 무용에 반영하거나 배우들의 개인적인 상호 작용으로부터 형성된 연극과 같은 다양한 기획의 등장을 예고했다. 문학과 작가의 경험 사이의 관계를 재고하는 움직임들 역시 다방면에서 등장하였다. 논픽션 소설에서 작가는 비트 세대의 자서전 소설들 이상으로 더 적극적으로 주인공이 되었고, 다양한 종류의 고백적인 시와 새로운 형태의 시인의 일기장(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의 미국의 몰락,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의 노트북 1967-68)에서부터 1972년의 로버트 크릴리Robert Creeley와 에드 돈에 의해 출판된 수첩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문화에 있어서의 일기가 띄게 된 새로운 중요성을 반증한다. 일기에 대한 변화된 태도는 W. H. 오든W. H. Auden의 시 "크롬웰의 귀한"의 일부로 요약될 수 있다: “대부분은 / 당신의 친구와 개를 제외하곤 / 누구에게도 기억할 만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60년대 후반 이후 일기는 점점 자기 발견과 자기 계발의 문학적 실천으로 확립되었고 자아가 구성될 수 있는 장소로까지 여겨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기”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한 부풀려진 주장들의 정치적 모호성은 실제적이고, 계몽적 주관성의 기능으로써의 장르의 전체 역사에서도 함축적인 성격을 띈다. 그러나 현대 일기가 필연적으로 유아론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은 자아에 대한 탐구와 인식이 집단 역사 회복에의 참여행위로 받아들여졌던 70년대 당시의 여성들의 일기쓰기에 의해 증명되었다. 일기의 정치학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에 의해 형성되었고, 일기의 무제한적, 무체계적, 비영속적인 형태는 남성적인 자서전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여성주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영화에서 장르의 “여성성”은 남성감독들이 연출하였으며 다소 심란한 상태의 일기를 쓰는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장편 극영화의 전통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그 예로 <버림받은 자의 일기Diary of a Lost Girl >(G. W. Pabst, 1929), <어느 하녀의 일기Diary of a Chambermaid >(Jean Renoir, 1946; Luis Bunuel, 1965), <미친 주부의 일기Diary of a Mad Housewife> (Frank Perry, 1970) 등이 있다. 실제로 70년대 초부터 여성 감독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마리 멘켄Marie Menken에 의해 발명되었던 영화 일기의 특정 형태는 다양한 여성 감독들-샹탈 애커만Chantal Ackerman, 스톰 드 히르쉬Storm de Hirsch, 수 프리드리히Sue Friedrich, 마조리 켈러Marjorie Keller, 이본느 라이너Yvonne Rainer, 아말리 로스차일드Amalie Rothschild, 캐롤리 쉬네만Carolee Schneemann, 그리고 클라우디아 베일Claudia Weill-에게 유용하게 쓰였다. 60년대에 발전했던 아방가르드 양식이 쇠태할 즈음의 70년대에 영화 일기는 남성들에게도 모범적인 실천도구를 제공했으며 앤드류 노렌Andrew Noren, 로버트 휴엇Robert Huot, 하워드 거텐플랜Howard Guttenplan, 에드 핀커스Ed Pincus, 그리고 요나스 메카스와 같은 영화인들의 작품에 녹아나 있다. 이러한 개화는 60년대 독립영화의 유토피아 정치학의 축소판이자 반-산업, 반-미학주의 영화의 현재진행중인 확언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저항적인 반문화와 그들이 지탱했던 지하영화들이 모두 붕괴됨과 동시에 그것은 -오직 여성주의만이 공적 기획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사회적 열망의 내재화를 반영했고, 구조영화의 비개인적 합리성과 인종적, 성적 소수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집착 사이에 좌초된 주관성을 결집할 방법을 제공했다.


영화 일기의 원형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에 있어서 본질적이었다. 메카스가 주장하는 대로 “60년대 이전엔 어떤 영화인도 자신의 삶을 찍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60년대 중반에 이르렀을 때 홈 무비와 영화 일기와 같은 사적이거나 가정적인 영화만들기의 방식은 양식의 모델로써, 형식적 실험을 위한 원재료로써, 혹은 테일러 미드Taylor Mead의 <나의 홈 무비>에서처럼 홈 무비로써 새로운 영화적 실천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켄 제이콥스Ken Jacobs워렌 좀바르트Warren Sonbert의 각기 다른 작품세계는 동일한 광맥으로부터 발굴될 수 있는 것들의 풍요로움을 제시한다. 70년대로 접어들어 일상적으로 수집되었고 -영화와는 다른 것이 아닌 영화 그 자체로써- 재현된 영상들은 새로운 권력을 성취하였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잘 확립된 경향들은 메카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리투아니아를 떠날 때부터 그는 일기를 써왔는데, 그의 시 대다수는 일기체적, 기록적인 양식으로 작성되었고, 그는 이미 그 장르를 수 년 동안의 그의 가장 가시적인 영화 작업인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 의 “영화 일기” 컬럼을 위한 은유로써 전유하였다. 1955년 도입부 소개란의 “영화 일기”에서 시작된 메카스의 컬럼은 때때로 그의 “테이프 기록 일기”로부터 재생산된 것이었다. “영화 일기”는 그가 항상 조롱했었던 관습적인 방식의 비평이 아닌, 독립 영화계에서의 그의 개인적 생각들과 활동을 논쟁적, 열정적으로 기록한 글이었다. 그 글은 자신의 영화제작의 변과 여타 아방가르드 영화들의 소개의 장이기도 했다. 1958년부터 1976년까지 약 20년 간 메카스는 영화에 대한(about) 영화 일기와 영화 속의(in) 영화 일기를 나란히 추구하였다. 전자에서 표현된 가치들이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도 후자에서 더 명백하게 드러났다면, 그가 영화제작에서 일구어낸 발견들이 그의 글 속에 드러난 기준들을 확립시켰다고 볼 수 있다.

개개인 마다의 일기는 실질적으로 독특하다. 우리는 “일기란 그것을 작성하는 사람이 ‘나는 일기를 쓰고 있어’라고 말할 때 그가 작성하는 것이다”라는 정의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내 일기를 쓰는 행위”는 문학적 생산의 양식으로서 보다 특징적이다. 그것은 단수의 작가, 연쇄적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자발적이고 주기적인 작성행위, 작가와 화자와 주인공의 정체성, 텍스트와 역사 간의 관계에 있어서 특권화된 현실성을 가능케 하는 독자의 정체성, 그리고 대부분의 글쓰기 형태의 상업적 관계망 바깥에 -최소한 초기에는- 존재하는 성격까지를 모두 함축한다. 글쓰기와 영화 매체의 물질적인 성질들은 구성의 장과 가능성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매체 속으로 결합시킨다. 이는 영화 일기로 하여금 새로운 기능들과 시간과 주관성에 대한 다른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쓰여진 일기에서 사건들과 그것들의 기록은 일반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영화에서 그것들은 일치한다. 일기장을 항상 갖고 다니며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일기를 썼던 소로는 예외적인 경우로서, 보다 일반적으로 언어적 일기의 시제는 과거 완료형이고 방금 지나간 사건들과 정신 상태의 기억인 것이다. 유일하게 기록 가능한 현재형은 작성 당시의 순간과 글쓰기에 대한 성찰적 주석들일 뿐이다: “이제 오늘 일기를 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미지와 소리의 기록은 현재와 현재 시제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 영화는 오직 사건들이 일어남에 따라 그것들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질적 차이는 다른 내용물을 생산한다. 행동으로부터 독립적인 말은 어떤 종류의 사건이든-그것이 얼마나 기이하건 우발적이건 시기를 놓쳤건 불가능하건 간에- 묘사할 수 있다. 자프루더 푸티지와 계획되지 않은 뉴스 사건들을 기록한 아마추어 영상과 같은 중요한 예외들을 제외하면, 영화 카메라는 평범한 사건들이나 계획된 사회적 의식을 위해 사용되며-상업영화 촬영은 모범적인 예이다- 이 경우에 카메라를 운용하는 자는 일정 거리를 두고 사건들을 촬영하게 된다. 페피스가 자신의 자발적인 성적 모험을 기록한 영상은 사건들을 방해하거나 결정짓지 않는다. 반면에 앤드류 노렌이나 로버트 휴엇이 자신의 성관계를 촬영한 영상이 그들의 영화 일기에서 등장할 때에 그 작가들은 수행과 기록 사이에 나뉜 주체를 탐색하고 있다. 그러한 분열 혹은 이중의 모습은 대다수의 영화 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메카스가 자주 그러하듯 작가가 다른 이들에 의해 촬영된 사진을 포함할 경우에는 작가성의 분열은 더욱더 심해진다. 글쓰기의 산만한 성격 역시 작가적 주관성-감정의 직접적 표현-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록된 사건들에 대한 성찰과 해석을 허용하며 역사histoire를 담론discours로 선회시킨다. 촬영의 주체는 언어적 언명의 “나”보다는 덜 명확하게 구성되기 때문에 작가의 재현과 주관성의 기입을 위한 조건들은 다소 다를 수 밖에 없다. 영화 일기는 작가를 포함하기 위해서는 거울 이미지나 그림자를 촬영하거나 타인이 카메라를 다루게끔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작가성은 양식 속에 기입되어야만 한다.

메카스는 이러한 의무들의 조합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표현한 작가였다. 그는 현재를 향해, 그리고 현재 속에서 즉각적으로 카메라로 반응할 필요와 기록을 주관화할 필요를 영화 일기의 필연적인 조건으로 주장했으며, 그러한 조건들을 이용하고 또한 매우 진지한 방식으로 영화적 관심을 일상으로 되돌린 작가였다.

그는 영화 매체의 독특한 존재론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현상적 세계를 기록하는 동시에 -사실들 이후의- 언어적 산만함과 구성의 행위로 인해 쓰여진 일기에 표현될 수 있었던 주관성을 영화로써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촬영의 행위는 감성적, 기술적, 그리고 무엇보다 시각적인 학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 (카메라) 일기를 쓰는 행위는 (당신의 카메라로) 지금 이 순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그것을 포착하던가 전혀 포착하지 못하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다시 돌아가 나중에 촬영한다는 것은 그것이 사건이던 감정이던 간에 재공연을 의미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포착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기술(이 경우에는 볼렉스Bolex 카메라)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내가 반응하는 현실을 입력해야만 하고 나 자신이 반응함에 따라 경험하는 감정들과 모든 기억들을 입력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또한 촬영 당시의 그 곳에서 모든 구조화(편집)을 완성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기들에서 관객들이 보게될 모든 영상들은 카메라에서 나온 그대로입니다.

- <영화작가조합 카탈로그 제 7권Film makers' Cooperative Catalogue No. 7>, 362쪽

 

 편집된 일기들이 자발적인 구성만을 보존한다는 주장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월든 조차도 작품이 담고 있는 시기 동안에 촬영된 수많은 영상들을 누락하고 있다. 반면 <사막 위에 서 있다He Stands in a Desert Counting the Seconds of His Life>(1969/1985)와 같은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연대기적 배열을 직접적이고 포괄적으로 수정되었으며, 모든 영화들은 삽입된 제목을 포함하고 있다. 편집에 대한 거부가 오직 시퀀스간의 편집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추가된 음악과 보이스오버는 영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일기 영화들을 정의하는 이러한 경고들에도 불구하고 영화 일기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중요한 것이 촬영 순간이라는 사실은 매우 명확하다.

자기목적적인 행위로써의 촬영의 재 개념화는 이미 쓰인 시나리오나 이후의 조작을 위한 영상을 담아내는 것으로써의 촬영의 기능적인 면에 저항한다. 대신에 그것은 일상에 대한 명상적인 관심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메카스의 기획은 영화를 낭만주의적 모더니즘 회화, 즉 인상주의로 돌아가게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경우에서 일견glance으로 요약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시각의 재현은 현대적 삶을 재현하려는 시도와 맞물리며, 이후에 드러나듯 평행적인 모순들이 뒤따르게 된다. 처음에는 정교하게 보여지고 살아진 삶의 기록이었던 영화 일기는 정교한 봄와 삶의 행위의 매개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촬영의 삶-실천은 삶을 구원하는 방식으로써 초월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는 월든의 첫 보이스오버 중 하나에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의 패러디로써 명시된다: “나는 홈 무비를 만든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홈 무비를 만든다.” 카프카Franz Kafka의 일기에서 인용한 <사막 위에 서 있다>의 제목에서, 기도는 적절한 유사물로 제시된다: “기도 형식의 글쓰기Schreiben als form des gebetes.” “영화 일기”에서의 이러한 미학의 출현과 월든에 남아있는 일기 영상에서 그것이 취하는 형식은 그것의 필연적인 모순과 함께 간결하게 스케치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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