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장에서 훔치지: 꼴라쥬, 몽타쥬, 할리우드와 아방가르드

할리우드와 아방가르드의 필름은 일반적으로 반대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 대규모, 산업적 생산 대 소규모, 예술적 공정; 많은 예산 대 최소한의 예산; 35미리 혹은 70미리 대 8미리, 슈퍼 8미리, 16미리;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 대규모의 배급 대 예술가의 커뮤니티를 중은 심으로 한 네트워크 혹은 영화제, 대안 공간, 미술관, 대학을 중심으로 한 배급; 상업 대 예술. 몇몇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러한 대조는 확실하지만 콜라주의 방식으로 침투되는 상업적 부분에서, 할리우드의 이미지들은 파운드 푸티지 방식에 의해 아방가르드 속으로 들어온다. 할리우드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관계는 할리우드를 필름메이커들이 전유하고 할리우드의 상업성을 재활용할 때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다. 

만약 필름이 상품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너무나 많은 스타들이 있고, 그러나 스타들은 특정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들의 미미한 상품화를 초월하는 징후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몇몇의 아방가르드 필름메이커들은 할리우드 도상에 대한 조작을 통해 그들의 아우라를 탐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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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JUN LEE
리튼 피어스Leighton Pierce 강연 : 사운드와 이미지의 간극

나는 원래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음악작곡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비디 오를 입히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주로 자연적인 소리들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구체음악이라 불리는 장르의 음악을 시작할 때에 나는 전자음악을 주 로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의 세계를 사운드로 변화시키는 것은 사운 드를 통해 세상을 만들고 그 위에 이미지를 씌우는 것이다. 사운드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이미지를 입히다 보니 이미지랑 사운드가 결합되지 않을 때 도 있고 우연하게 굉장히 잘 맞을 때도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통합적 사운드Diajetic Sound는 관객들이 영화 속 상상에 존재한다고 믿는 이미지의 스토리나 화면에 종속된 사운드이다. 이미지 안에 존재한다고 상 상하는 것들, 예를 들어 영화적인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는 대화나 주변 공 간, 문을 열고 닫는 효과음 들은 모두 통합적 사운드이다. 화면 속에 직접 보이는 사운드가 아니더라도 내가 문을 열 때 누가 나를 부르는 경우에는 그 사람의 얼굴이 화면에 보이지 않더라도 영화적 공간속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통합적 사운드라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비 통합적non-diajetic 사운드, 통합적 사운드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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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JUN LEE
리튼 피어스: 마스터 미니어쳐리스트 Leighton Pierce: Master Miniaturist

나는 리튼이 지각 수용능력의 극단까지 밀고가 발휘하는 섬세함과 그가 영상매체를 다루는 능력, 그리고 매체의 특성과 대조되는 모든 것-순수함, 모든 사물을 경이로운 감정으로 흡수하는 유아기와 유아기 아이들의 개방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구현하는 능력간의 내적인 긴장이 그가 의도한 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생동감 있는 재현이 가능해지도록,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이루어 질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적 긴장안에 바로 피어스의 저력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내적 충돌이 필름(이제는 디지털) 매체의 성격에 대한 고심 끝에 얻게 된 그 매체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감성을 추동하고,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경이의 감각을 회복하도록 일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어스의 이러한 재현방식이 예술적인 조직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영상은 아이가 보고 배우는 과정 그 자체는 결코 아니다. 차라리 각별한 재능과 절제력을 지닌 예술가의 방식으로 아이가 보는 행위를 통해 접하고 배우는 것들을 모방하고 제시한 것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한 말일게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작가의 경험과 기술 그리고 고집스런 자기 부정 덕분에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순수한 재현을 성취해낸다. 그리하여 나는 기술적인 요소와 이해력을 조합해 내는 피어스의 작품이 가장 높은 차원의 예술로 비약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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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JUN LEE
확장된 영화,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 사이에서

아티스트 필름의 전개를 관찰해 보면 이 영화의 확장된 영역은 그 '제반 분과를 가로지르는(transdisciplinary)' 성격에 의해서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영화들은 시나리오가 없는 대신 시와 소설과 같은 문학 장르들과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며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차원을 자유롭게 넘나든다(아이작 줄리언, 로드니 그레이엄). 사진은 단순히 촬영과정을 기록하는 '메이킹' 사진이  아니라 촬영의 개별 샷(shot)이 독자적 사진의 위상을 획득하기도 한다. 때로는 하나의 롱테이크로 이루어진 영화를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동영상 영화를 만드는 대신 슬라이드 프로젝션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극단적인 사례지만 일종의 아티스트 필름을 위한 '글쓰기의 영도(zero degree of writing)'라고 간주된다(매튜 버킹엄, 마크 루이스). 텔레비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매체인데 스포츠 중계나 리얼리티 쇼에서 제공하는 시청자들의 영상 이미지 지각방식을 해체·재구성하는 차원에서 즐겨 다루어진다(롤랑 그라소, 더글러스 고든/필립 파레노). 퍼포먼스가 빈번히 도입되는 것은 물론이고 촬영장소의 건물이나 건축적 구조물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건축적 언어로 재약호화 되기도 한다(태시타 딘, 사라 모리스, 피에르 위그,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 그 외에도 폐쇄된 종교집단이나 기업인들 또는 군인들을 민족지학자의 시선으로 접근하는 다큐멘터리 방식을 도입하기도 한다(요하임 코에스터, 하룬 파로키). 따라서 아티스트 필름의 창작과정에 수반되는 이러한 다양한 매체들과의 융합은 결과물로서 영화만이 아니라 전시장 안에 책, 조각, 드로잉, 회화, 설치 및 음악과 같은 다양한 매체들의 형태를 갖춘 '부산물'들이 함께 디스플레이 되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티스트 필름의 동영상은 영화라는 매체의 특수성(medium specificity)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매체의 통합성 또는 복수 매체들로 이루어진 구축주의의 산물로 파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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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JUN LEE
비판적 전술로서의 몽타쥬: 파편, 네트워크, 이론 Montage as Critical Strategy: Fragments, Networks, Theory

나는 ‘이론 대 실천’ 이라는 분리와 이분법에 저항해왔다. 이론은 실천/만들기이다. 이론의 실천은 상황적 개입[앙가주망]의 다양한 형태를 띈다. 그가 글을 쓰건 읽건, 혹은 구체적인 생활-세계, 특정한 순간의 장소에 어떤 예술적 매체를 배치하건, 아는 [인식의] 주체는 또한 행동하는 주체이다. 나는 학자, 역사가, 예술가, 작가, 그리고 교육자라는 다양한 주체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각각의 이러한 위치의 영역들은, 각각에 따르는 질문의 양식과 함께 흘러들어, 나의 일상적 실천을 형성한다. 내가 세계와 맺는 관계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론은 내가 무엇을 할지 미리 규정하지 않지만, 내가 예술적 행위의 어떤 특정한 위치와 순간에 다다르도록 이끈다. 이론은 행위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예술적 여정의 끝에 이르러 나는 내가 만드는 이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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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JUN LEE
영화 일기/일기 영화: <월든>의 실천과 결과물 (2)

잃어버린 리투아니아에 대한 보상으로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발견하고 지하영화 속에서,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영화 일기의 부분들의 강박적인 수정을 제안하면서, 이러한 서사는 과거의 부분들과 그것들에 대한 현재의 성찰-구성의 과정에 대한 정보를 주는- 사이의 상호 작용을  알레고리적으로 재규정한다. 삶과 영화를 통합하려는 시도에서의 성공과 실패의 동일한 이야기는 전시와 소비의 과정들을 통해 서술되고, 동시에 시네마-영화는 복수성과 텍스트의 위반을 재생산하는 필름-영화에 의해 함축되고 창조된다. 승인된 일반적인 형식들에 대한 거부-사적인 것을 단순히 사적인 상태로 공적인 영역으로 분리한 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거부-는 수동적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거부를 거의 필연적으로 만든다. 결국 홈 무비의 격리된 가정성도,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경계적 영화들이나 영화 산업의 대중 영화들도 그것들이 수반하는 합리화 과정을 거부하는 영화적 실천을 위한 집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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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S
영화 일기/일기 영화: <월든>의 실천과 결과물 (1)

자기목적적인 행위로써의 촬영의 재 개념화는 이미 쓰인 시나리오나 이후의 조작을 위한 영상을 담아내는 것으로써의 촬영의 기능적인 면에 저항한다. 대신에 그것은 일상에 대한 명상적인 관심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메카스의 기획은 영화를 낭만주의적 모더니즘 회화, 즉 인상주의로 돌아가게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경우에서 일견glance으로 요약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시각의 재현은 현대적 삶을 재현하려는 시도와 맞물리며, 이후에 드러나듯 평행적인 모순들이 뒤따르게 된다. 처음에는 정교하게 보여지고 살아진 삶의 기록이었던 영화 일기는 정교한 봄와 삶의 행위의 매개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촬영의 삶-실천은 삶을 구원하는 방식으로써 초월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는 월든의 첫 보이스오버 중 하나에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의 패러디로써 명시된다: “나는 홈 무비를 만든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홈 무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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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S
건축적 실천으로서 비디오 Video as Architectural Practice

제가 건축적 실천을 위해 비디오를 도구로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에 기반을 둔 매체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체와의 관계입니다. 시간적인 면에서는 영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신체적인 측면은 비디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입니다. 비록 이 두 부분은 서구의 건축학에서 배제되었던 부분이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건축적 실천은 바로 이 두 부분을 재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신체도 시간적인 것이고 신체는 시간적인 형식으로 존재합니다. 제게 있어 건축은 저의 신체와 신체가 처한 환경 사이에 일종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고, 이 관계 역시 시간적인 것이기에 비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이러한 관계를 구축할 때에는 촬영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단절되지 않은 영화의 구성단위로서 쇼트만이 바로 이 과정을 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고, 시간적인 형식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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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