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4일 금요일, EX-Retro 카나이 카츠 Kanai Katsu 金井勝

7월 14일(금) 오후 7시 “EX-Retro”에서는 카나이 카츠 감독의 1971년도 영화 <굿-바이Good-bye>을 상영했고, 이후에는 감독님을 직접 모시고 김지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 필름 & 비디오 아카이브 책임연구원의 통역과 진행 아래 GV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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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책임연구원 김지하입니다. 카나이 카츠 감독님을 직접 모시고 GV를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카나이 카츠 감독님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면 저희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감독이지만 프랑스나 독일을 중심으로 여러 유럽국가에서 회고전이 개최되었고,  몇년 전 오버하우젠Oberhausen 국제단편영화제에서 특별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보신 작품은 남북 분단 이후 한국에서 첫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최초의 일본 감독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과 굉장히 인연이 깊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 많은 장면들이 이미 오래전에 촬영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는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아카이브적으로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만큼 현재 제가 일하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카이브에서 카나이 감독의 필름을 복원하고 수집을 진행했습니다. 그럼 먼저 감독님의 인사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카나이 카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를 촬영한 이후 50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주변에 밭과 숲 밖에 보이지 않았던 장면이 이제는 높은 빌딩과 여러가지 건물로 급격하게 변화된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저는 1936년 요코하마와 도쿄 근처에 있는 가나가와 현의 코잔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곳은 1200~1300년 전에 내전 이후로 고구려인이 많이 이 마을로 이동해 살았던 곳이기도 해서 제가 살았던 마을은 한국과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어느 학자에 따르면 70% 이상의 일본인이 조선반도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를 발표 했던 적이 있었고, 저는 그 자료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60년대 일본에서는 상업영화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던 때였고 이런 대형 프로덕션 외에 작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독립 프로덕션으로 제작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었고 이후 “자주영화自主上映會”라고 들어보셨는 지는 모르겠지만 더 개인적인 영화제작의 실천이 오히려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70년대 일본에서 아트 극장art theatre이라고 하는 곳들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굉장히 유명한 신주쿠 언더그라운드 극장인  “전갈자리 극장”과 같은 곳에서 자주영화가 상영 되었습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저도 영화를 찍을 수 있겠다 싶어 한국에서 촬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전에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한국에서 촬영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기사 감독의 1965년 작품 <윤복이의 일기ユンボギの日記>는 80% 이상을 한국에서 촬영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당시 촬영이 잘 진행되지 않아 현장에서 기록한 사진 자료로 구성해 만든 작품입니다. 그래서 <굿-바이>라는 작품이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대부분을 촬영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인 열도>와 <왕국> 그리고 보신 작품은 <미소짓는 은하계>라는 삼부작에 포함됩니다. 삼부작 중 첫 작품인 <무인열도>는 35mm로 제작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어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작품인 <굿-바이>는 한국에서 대부분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35mm 보다는 방송국에서 주로 사용했던 소형 카메라를 들고 직접 가서 촬영을 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영화들이 성황리에 많이 상영되는 시기었습니다. 그리고 <무인열도>와 <굿-바이>는 상영 됐을 당시에 아사이 신문에서 크게 취재를 하고 개제될 정도로 큰 화재가 되었습니다. <무인열도>는 스위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고 이 3부작도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금 보면 다소 혼잡스러운 느낌이 들수도 있지만 이런 분위기 자체가 당시 60년대, 70년대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저는  완전한 언더그라운드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시대의 언더그라운드 감독은 아무도 찍지 않는, 상업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최대한 드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외국인에게 15일간 체류가 가능한 관광비자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얻은 15일 동안에 모든 영화제작과정을 마무리 해야하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게 작업을 했었고 이후의 후반 작업은 일본에서 진행했습니다. 이 작품이 아까 말했듯이 큰 화제가 되었고, 70년대 한국도 마찬 가지겠지만 대학 영화 동아리가 많이 생겨나서 교토나 동경 대학, 그리고 영화 연구회같은 곳에서 제 작품을 보면서 공부하는 연구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 모임에서 이런 작품이라면 본인들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겠다 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이 작품의 상영비를 모은 덕분에 저는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을 그 비용으로 충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번째 작품인 <왕국>은 <굿-바이>는 땅에 관한 이야기라면 <왕국>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고 상상과 중간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일본이 패전 했었는데, 그 전까지는 신문이나 라디오나 여러 매체에 일본이 전쟁을 치루는 정당성에 관해, 일본이 전쟁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일본은 이길 수 있다라는 이러한 의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줬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성장을 했는 데, 패전과 동시에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오시마 나가시 감독과 같은 이 시대 감독 혹은 젊은이들은 일본의 미디어 자체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깨우치게 되면서 저의 정체성과 국가의 정체성 혹은 정당성, 이런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이 작품에서 조금씩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에 보면 실어증에 걸린 소년이 나오는데 그것은 저의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패전과 동시에 실어증으로 다가온 그 충격을 영화의 주인공이 라면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하던가 티켓을 제대로 사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 떠나 버리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초현실주의 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았기 보다는 저의 경험과 꿈과 현실 사이의 착란이 일어나면서 어떤 것들이 더 진실된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는 차원에서 작품에 임했습니다. 저는 지금 현재 81살인데요, 60살 전까지는 동경조영대학에서 교수로 있었고 지금은 이미지포럼이라고 일본의 실험영화 연구소에서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항상 학생들에게 저는 “항상 잘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왜 이런 장면들을 생각하게 됐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라고 강조 합니다. 최근 베를린 영화제에서 제 제자의 애니메이션이 금곰상을 받았는데, 그런 작품을 보면 제가 항상 강조해 왔던 것들을 후세대가 임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객관적 평가를 받아 굉장히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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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감독님 영화 아주 감명 깊게 봤습니다. 제목이 <굿-바이>라고 되어있는데, 제목을 <굿-바이>로 정한 특별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A 두 개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상업영화와 “굿바이”를 하자는 강력한 의지 그리고 또 하나는 영화 안에서 주인공이 현실의 세계에서 “굿바이”를 하자라는 두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Q 작품을 만드시고 나서 한국계 평론가들이라던지 아니면 다른 한국 관객들한테 보여주셨던 상황이 있으셨는 지 그리고 그에 대한 그때 당시의 반응이 어땠는 지 궁금합니다.
A 거의 한국 평론가나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준 적은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상영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일 대학에서 ‘동아시아의 움직임’이라는 주제의 행사에 초청 받았을 때 이 작품을 상영했습니다. 그때 관객 중 한국 대학원생이 한 분 있었지만 그 분이 어떤 식의 반응이 있었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재일 교포 최양일 감독님께서는 개인적으로 보신 적이 있었습니다. 

Q 굉장히 짧은 15일이라는 시간 동안 촬영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장면 하나 하나에 나오는 골목이나 집, 거리 등의 다양한 장소가 굉장히 인상 깊게 보여서 당시에 촬영장소를 어떻게 찾으셨는 지 궁금합니다. 
A 한국의 장소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는 거의 없었지만, 지도를 통해 고분이나 역사적 성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약간의 사전 정보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아사이 신문에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하는 글을 5회에 거쳐 연재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련의 정보를 취합해 한국에 갔었고, 대부분의 장면은 한국 가서 정한 장소입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보면서 이 장면은 절대로 마지막에 보여줄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굿바이> 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었는데 그 당시에 베를린 영화제에 온 관객 대부분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관해서 거의 아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 안의 내용을 보더라도 어디가 한국이고 일본인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보는 관객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마지막에 바다 바깥에서 일본을 돌아보는 장면에서 유럽 관객이 지금 까지 보았던 장소가 한국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일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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